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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수 적어도 알차게”…2026 한국 영화계, ‘영점 조정’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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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수 적어도 알차게”…2026 한국 영화계, ‘영점 조정’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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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내 주요 영화 투자배급사 관계자가 말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할 만큼 2025년은 한국 영화계가 맞이한 최악의 해였다.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가까스로 지켜냈지만(1억608만 명), 한국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은 그중 41.1%에 불과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공식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래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30.1%)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한 것이다.

국내 5대 영화 투자배급사 2026년 라인업

국내 5대 영화 투자배급사 2026년 라인업


상수가 된 불황에 국내 5대 투자배급사(CJ ENM·롯데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쇼박스·NEW)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중한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현 시점에서 5개사가 올해 개봉을 예정에 둔 한국 영화는 총 22편이다. 대규모 제작비를 투자한 텐트폴 작품은 각사마다 1편 내외이지만, 장르성이 확실한 중급 영화들로 포트폴리오를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내놓는 작품이 적은 만큼 한 편 한 편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 대작 영화, 2026년에도 있다

영화 <호프> 티저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호프> 티저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6년 최대 기대작은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다. <추격자>, <황해>, <곡성> 등을 연출한 나 감독의 네 번째 미스테리 스릴러로 한국 단일 영화 사상 최다 제작비(500억대 이상)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무장 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사냥꾼 성기(조인성)이 마을에 나타난 미지의 외계 생명체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할리우드 배우 테일러 러셀, 마이클 패스벤더 등이 출연한다. 올해 여름 국내 개봉이 목표다. ‘천만 영화’가 없었던 지난해의 부진을 깨고 <호프>가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 <휴민트>,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NEW, 쇼박스 제공

영화 <휴민트>,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NEW, 쇼박스 제공


설 연휴에는 류승완 감독이 본인의 장기인 첩보 액션으로 돌아온다. 영화 <휴민트>(NEW·2월11일 개봉)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경지역에서 한국 국가정보원의 조과장(조인성)과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의 격돌을 그린다. 조선 왕 단종(박지훈)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를 간 후의 이야기를 그린 <왕과 사는 남자>(쇼박스·2월4일 개봉)는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한국 사극이다. 유해진이 단종이 유배 가는 마을의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았으며,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부산행>, <반도> 등에서 한국형 좀비물을 탐구했던 연상호 감독은 또 다른 좀비물 <군체>(쇼박스)를 선보인다. 배우 전지현은 이 작품으로 <암살> 이후 11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14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의 속편(CJ ENM)과 <타짜> 프랜차이즈의 명맥을 잇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제·CJ ENM)도 올해 촬영을 마칠 예정이다.


■ ‘1억 관객’ 시대, 영점 조정이 필수

지난해 8월 서울 시내 영화관엥 표시된 <좀비딸> 상영 정보.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서울 시내 영화관엥 표시된 <좀비딸> 상영 정보. 연합뉴스


특기할 점은 NEW가 올해 라인업으로 <휴민트> 단 한 편만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인 <좀비딸>로 웃은 NEW의 이런 행보가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NEW 관계자는 “작품 편수가 적어도 자신 있다”며 “2025년 시장에서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1~2개의 작품에 집중해 재원을 잘 모아뒀다가, 좋은 작품에 재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신중한 투자의 배경에는 관객 수의 절대적 감소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연간 누적 관객 수 2억 명대를 상회했던 영화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1억 명대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업계는 ‘관객 수 1억 명 시대’가 뉴노멀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NEW 관계자는 “2억 명 관객 시대에는 다양한 작품을 얼마나 많이 배급했는지가 중요했었다. 각 배급사들이 텐트폴과 중급 영화, 독립예술 영화를 두루 확보하려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전체 파이가 1억 명으로 조정된 시장에서의 투자 결정은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자는 “한 작품에서 최대한의 관객 수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회사 이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영화 <프로젝트 Y>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프로젝트 Y>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각사의 라인업을 보면, 타깃과 장르가 확실한 영화가 많다. 코미디(<하트맨>·<와일드 씽>), 공포(<살목지>), 느와르(<프로젝트 Y>) 등이다. 지난해 코미디 영화 <보스>(243만 관객)와 공포 영화 <노이즈>(170만 관객) 등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만큼, 장르 영화가 ‘알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이는 배치다.

다만 신규 투자·제작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풀기 어려운 숙제다. 팬데믹 때 개봉하지 못하고 쌓인 ‘창고 영화’도 거의 소진된 상황이다. 올해까지는 2019년 크랭크업한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롯데엔터테인먼트)와 2021년 크랭크업한 류승룡, 박해준 주연의 <정가네 목장>(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이 대기하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신규 제작한 작품들로 라인업을 메꿔야 할 상황이다.

연상호 감독이 2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얼굴>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상호 감독이 2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얼굴>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계에서는 연상호 감독이 2억으로 단기간에 영화 <얼굴>을 만들었듯, 영화 제작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제작 모델을 탐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 감독은 올해에도 순제작비 5억으로 신작 <실낙원>(CJ ENM)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 주요 배급사 관계자는 <얼굴> 사례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꼭 수십억, 수백억 들어가야 영화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며 “저예산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때, 새로운 인재들도 ‘나도 해볼 수 있겠다’며 도전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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