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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에서 전략자산으로…오픈소스 변화가 부른 디지털 주권 논쟁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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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에서 전략자산으로…오픈소스 변화가 부른 디지털 주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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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AI와 오픈소스]① 흔들리는 ‘열린 기술’의 질서
오픈소스는 오랫동안 ‘공유와 협력’의 상징으로 소프트웨어 혁신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클라우드 확산과 AI 기술의 전략 자산화, 기술 패권 경쟁이 맞물리며 오픈소스는 더 이상 항상 열려 있는 공공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이 ‘소버린 AI’와 ‘오픈소스 AI’를 동시에 강조하는 지금, 무엇을 어디까지 개방하고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디지털데일리는 이번 기획을 통해 글로벌 오픈소스 질서의 변화와 국내 오픈소스 AI의 실체, 소버린 AI 시대에 한국이 선택해야 할 전략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오픈소스는 오랫동안 ‘누구나 자유롭게 쓰고 고칠 수 있는 기술’의 상징이었다.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혁신을 가속하는 선순환 구조가 오픈소스 생태계를 지탱해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이 전제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이터베이스 기업 ‘레디스’와 인프라 자동화 기업 ‘하시코프’ 라이선스 정책 전환이다. 이들 기업은 기존 개방형 오픈소스 라이선스를 유지하지 않고, SSPL(Server Side Public License)이나 BSL(Business Source License)과 같은 ‘소스 공개’ 라이선스로 이동했다. 소스 코드는 공개하되 상업적 활용에는 제약을 두는 방식이다.

이는 오픈소스를 완전히 닫겠다는 의미보다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오픈소스 기술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커뮤니티에는 충분히 기여하지 않는 구조에 대한 방어적 선택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퍼스케일러가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원 개발사와 유지보수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라이선스 전환이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설계해온 기업과 국가에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핵심 기술이 어느 순간 비용 부담이나 사용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가 ‘항상 열려 있다’는 전제가 구조적으로 깨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리눅스재단 산하 연구조직은 ‘2025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현황보고서’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이미 기업과 기관의 핵심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를 안전하게 관리할 거버넌스와 보안 체계는 대부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거버넌스 공백은 미션 크리티컬 환경에서 상당한 위험 노출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오픈소스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지만 통제 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오픈소스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분야로 넘어오면서 ‘오픈소스’라는 개념은 더욱 느슨하게 소비되고 있다. 일부 가중치만 공개한 모델까지도 ‘오픈소스 AI’로 포장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기술 투명성과 재현 가능성에 대한 기준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픈소스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수정·재배포·상업적 활용이 제한되거나 핵심 학습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기준 혼선은 실제 사업과 정책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클라우드가 발표한 ‘하이퍼클로바X 8B 옴니’ 모델은 일부 구성 요소에 외산 오픈소스 아키텍처를 차용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프롬 스크래치’ 기준과 충돌할 수 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오픈소스 활용과 독자 기술 확보의 경계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 주권의 판단 기준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기술 종속의 위험을 인식한 주요 국가들은 이미 디지털 주권 확보를 위한 정책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은 오픈소스를 도로·전력망과 같은 공공재로 규정하고, 국가가 직접 핵심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유지·보수자를 지원하는 ‘소버린 테크 펀드(STF)’를 운영하고 있다. 특정 기업이 아닌 기술 자체 지속 가능성을 국가가 관리하는 구조다.

중국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국 중심 오픈소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깃허브 서비스 차단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 주도로 자체 코드 저장소 플랫폼 ‘지티(Gitee)’를 국가 표준으로 육성하고, 공공 프로젝트와 주요 AI 모델을 이 플랫폼을 통해 배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AI 기술 자립을 위해 ‘독립적이고 통제 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명문화한 중국은 자국 플랫폼 내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기업에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 배정 등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생태계 자립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역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과 소버린 AI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개발 결과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정책 방향성은 제시된 상태다. 다만 실제로 어떤 기술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라이선스·데이터·운영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단순한 ‘오픈소스 생태계 육성’ 선언을 넘어 전략 기술 보호와 개방 범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가 투자와 기술 설계를 예측 가능하게 가져가기 위해서다.

심호성 한국오픈소스협회 부회장은 “기업들이 국내 오픈소스 기술을 실제 사업과 국방·산업 현장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로드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픈소스가 더 이상 개방성과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부 기술에 대한 의존 방식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국 기술을 얼마나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질 것인가라는 ‘디지털 주권’의 질문으로 수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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