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미국 워싱턴디시 트럼프-케네디센터에서 연설하며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뺏겠다는 욕심을 연일 드러내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공동성명으로 덴마크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국이 실제로 ‘실력 행사’에 나설 경우 유럽이 이를 제지할 수단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유럽 7개국 공동성명 냈지만…
프랑스 르피가로·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따르면, 덴마크와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 등 유럽 7개 나라 정상들은 6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내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들 것이다.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만이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관한 문제들을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나라의 주권과 영토 보전, 국경의 불가침성은 “보편적인 원칙”이라며, “이런 원칙을 중단 없이 수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베네수엘라를 공습한 뒤 그린란드 병합을 공언한 데 대한 대응이다. 그는 지난 4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국가 안보 관점에서 그렇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그린란드는 온통 러시아와 중국 선박들로 둘러싸여 있다”며 “덴마크는 (안보 수호를)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유럽 정상들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를 비롯한 동맹국들은 (그린란드 등) 극지방을 안전하게 지키고 적대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 자산) 주둔과 활동 및 투자를 늘려왔다”며 “극지 안보는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의 결합을 통해 집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에 견주면 유럽의 어조가 조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1949년 나토 창설 이후 나토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을 침공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비비시는 “성명에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눈에 띄게 빠져있다”며, 나토 32개 회원국 중 덴마크를 빼면 “오직 여섯나라만 공동 성명에 참여했다”고 짚었다.
6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오른쪽),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UPI 연합뉴스 |
미국에 ‘안보 의존’, 제목소리 못내
이는 유럽이 맹방 미국의 ‘급변심’에 대처할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우선 유럽은 스스로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미국에 대거리할 역량이 안된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유럽은 미국 중심 ‘나토 집단방위’ 체제에 기대어, 국방 지출을 대체로 뒷순위에 뒀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쓴 것으로 추산되는 국방비는 8450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영국·프랑스·독일 등 나토 나머지 31개국 국방비 총합은 5590억달러에 그친다. 핵무기는 물론 군사 위성 등을 정보 수집, 작전의 지휘·통제, 공군력 등에서 유럽은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린란드 갈등의 당사자인 덴마크의 경우 전군 병력이 1만3100명으로 미국(130만명)의 1% 뿐이다. 덴마크는 냉전 이후 군축을 단행한 결과 2004년 이후론 지대공 방공망조차 없어, 지난해 9월에야 유럽 국가들로부터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지적했다.
미국 역시 이점을 알고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은 전날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의 미래를 두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싸울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호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 눈치를 봐야 하는 배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022년 이후 4년 가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없이 유럽의 지원만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지키기 어렵다. 장마리 게노 전 유엔 사무차장은 이날 프랑스 르몽드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 정상들에겐) 우크라이나 방어에 필수적인 트럼프의 지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걱정이 유럽인들을 결집시켜야 할 필요성보다 크다”며 “미국의 극단적인 적대 앞에서 유럽은 벌거숭이가 됐다”고 썼다.
지난해 9월17일 그린란드에서 훈련 중인 덴마크군. 로이터 연합뉴스 |
“트럼프가 ‘나토 약화’ 압박하면 유럽 속수무책”
이에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 구도를 만드는 대신, 그린란드 공격은 ‘나토 동맹 해체’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려 한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전날 덴마크 방송 TV2 인터뷰에서 “미국이 다른 나토 회원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며 “여기에는 나토 자체,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제공돼 온 안보까지 포함된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이날 프랑스2 방송에서 “미국이 덴마크 주권을 침해하는 시나리오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유럽의 평화·안보를 위해 우리와 계속 함께할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먹힐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행정부는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패권 재확립을 우선한 채, 유럽 방위가 핵심인 나토에 대한 기여를 늘리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백악관은 지난달 5일 공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나토가 확장 중인 동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고, 그것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할 것”을 과제로 꼽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나토 약화’를 협박해 그린란드를 얻어낼 거라는 경고도 나온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앵포 라디오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려 군 기지도 뒀지만, 너희가 협조적이지 않으면 그것들을 철수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는 덴마크, 그린란드, 그리고 유럽에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유럽이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프랑스군 출신 국제분쟁 분석가 스테판 오드랑은 르피가로에 “트럼프의 압박이 현실화하면 나토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국가 간 이견은 전차 궤도 아래서(군사력으로) 해결되는 일종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냉전 시절 소련 주도의 구 공산권 동맹)처럼 될 것”이라고 짚었다. 비비시도 익명의 유럽연합(EU) 당국자를 인용해 “이 모든 상황은 트럼프에 맞선 유럽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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