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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질주는 스스로 선택한 자유일까…‘보니 앤 클라이드’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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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질주는 스스로 선택한 자유일까…‘보니 앤 클라이드’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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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도망치는 건 내몰린 탓일까, 아니면 스스로 자유를 택한 것일까.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1년 만에 삼연 막을 올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3월2일까지)는 대공황의 잿빛 공기 속에서, 청춘 남녀의 파국을 낭만과 긴장 사이에 걸어둔다. 작품은 1967년 아서 펜 감독의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익숙한 무장 강도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 실화가 바탕이다. 불황의 시대가 사람을 얼마나 손쉽게 ‘이탈자’로 밀어내는지, 그 밀어냄이 어떻게 욕망과 폭력의 형태로 되돌아오는지를 꼬집는다.



사회에서 내몰린 두 청춘 보니(옥주현·이봄소리·홍금비)와 클라이드(조형균·윤현민·배나라)는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을 해야 돈을 버는데 일을 할 수가 없네”라는 실업의 고통이 먼저 삶의 바닥을 드러낸다. 이 가사는 단순한 시대 설명이 아니라, 선택지의 소멸을 증언한다. 그래서 보니가 일탈을 선택하며 “이미 충분히 벌받고 있잖아”라고 말할 때, 그 대사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죄부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음악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장기인 ‘드라마를 끌고 가는 멜로디’로 관객을 단숨에 붙잡는다. ‘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등에서 증명해온 그 멜로디 감각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재즈와 블루스, 컨트리의 시대적 결 위에 솔, 가스펠, 록, 알앤비(R&B)가 다채롭게 섞이며, 듣기 편안한 선율이 장면의 속도와 몰입감을 밀어 올린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다층의 장르를 한국 관객의 호흡에 맞게 정돈한다. ‘맘마미아’ ‘그레이트 코멧’에서 보여준 강점처럼, 대사에서 노래로 넘어가는 순간의 템포를 과장하지 않고 배우의 말과 감정이 음악에 눌리지 않게 균형을 세운다. 음악이 화려하게 떠다니기보다 인물의 숨과 발을 따라가는 느낌이 강한데, 이 점이 오히려 서사의 진정성을 키운다.



무대와 안무는 ‘전설의 아이콘’이 된 커플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세련된 의상과 조명, 군무의 리듬은 이들의 범죄를 한때 ‘힙한 이미지’로 소비했던 시대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고급 자동차와 총, 신문 헤드라인 같은 소품이 왜곡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 위로 끌어오며, 관객을 목격자이자 공범처럼 자리시키는 장치가 된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주변 인물들은 이들의 비극을 ‘사건’으로만 소비하지 않게 붙잡아준다. 현실을 붙들려는 사람, 함께 달리다 뒤늦게 공포를 깨닫는 사람, 그리고 끝까지 질주의 신화를 믿고 싶은 사람이 교차하며, 사랑과 범죄 사이의 단순한 선을 지워버린다. 그 덕분에 두 주인공은 ‘범죄자’로 평면화되지도, ‘영웅’으로 미화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탈출구가 막힌 시대의 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얼굴로 남는다.



다만 이 작품의 위험은 언제나 범죄의 낭만화에 있다. 제작진은 최근 간담회에서 그 우려를 의식하며, 시대가 사람을 몰아세울 수 있어도 결정적 순간의 선택과 책임은 결국 개인에게 돌아간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무대는 완벽한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달리지 않을 수 있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공연 뒤 관객에게 남는 건 ‘영화 같은 삶’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쇼노트 제공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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