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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키우던 영천서 “레드향 농사지어요”…제주 방어는 동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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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키우던 영천서 “레드향 농사지어요”…제주 방어는 동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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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김주형씨가 자신의 농장에서 레드향을 소개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김주형씨가 자신의 농장에서 레드향을 소개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주변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라고 많이 권유했는데, 늦게 시작하는 농사이다 보니 베테랑 선배 농부들에게 경쟁력에서 뒤처질 것 같아 아예 아열대 과일 쪽으로 눈을 돌렸어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2017년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귀농한 김주형(42)씨는 아열대 과일인 레드향과 핑거라임을 재배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찾은 그의 비닐하우스에는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레드향 열매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아열대 과일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짓다가 귀농한 지인을 만나 영천에서도 아열대 작물 비닐하우스 재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 아버지 역시 농부였다. 그는 “어릴 땐 우리 집이 사과 과수원을 했다. 그때만 해도 대구랑 경북 남쪽이 사과 주산지였다. 30여년이 지나서 제가 귀농할 땐 아버지께서 포도랑 복숭아 농사를 짓고 계셨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에 따라 농사 작물을 바꾼 것이다.





강원엔 사과, 경북엔 한라봉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심었던 대구는 사과 주산지 명성을 경북에 빼앗긴 지 오래다. 전국 사과의 60%가량을 생산하는 경북의 사과 생산량도 최근 10년간 23.2%(37만t→28만6천t) 줄었다. 반면 강원의 사과 생산량은 2015년 4만4724t에서 지난해 20만2699t으로 10년간 5배가량 늘었다.



점점 따뜻해지는 기후 탓에 사과·포도·복숭아 등 대표적인 온대 과일 주산지인 경북에서는 아열대작물 재배를 시도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경북의 아열대 과수 재배 면적은 2021년 36.2㏊에서 지난해 56.7㏊로 57% 늘어났다. 한라봉·바나나·망고 등 과일은 물론 오크라·공심채 등 채소를 포함해 모두 29종이 경북에서 재배되고 있다. 경주(16.6㏊)가 재배 면적이 가장 넓고 영천(8.2㏊), 고령(6.2㏊), 포항(6.1㏊) 순으로 넓다.



실제로 경북 포항(1990년)·영덕(2022년) 등 동해안 지역은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연간 8개월 이상 지속되는 아열대 기후로 진입했다. 경북도는 기후 변화에 대응해 사과 등 과수 분야 신품종을 보급하는 등 주산지로서 명성을 지키는 한편, 아열대 작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아열대작물연구소 설립도 추진 중이다.



전국적으로도 아열대 과일 재배 면적은 2017년 109.5㏊에서 2022년 188.8㏊로 1.7배가량 늘었다. 농촌진흥청의 기후 시나리오(SSP5-8.5)에 따른 과수 재배지 변동 예측을 보면, 사과 재배 적지는 1981~2010년 전국 국토의 68.7%였지만 2070년대는 1.1%가량으로 거의 사라진다. 반면 감귤 재배 적지는 1981~2010년 전국 국토의 1.2%이지만 2070년대엔 제주도에서 남해와 동해안 지역으로 16.7%가량 늘어난다.



기후 변화가 아열대 작물 농가의 호재만은 아니다. 봄철 저온 현상 등 예측 불가능한 이상 기후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하루아침에 최저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찍은 날이 있었다. 평균 기온은 높아졌지만 최저 기온이 보완해줘야 한다. 예년처럼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사실 모든 농사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52년차 해녀인 김방진 도두해녀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제주시 도두1동 도두해녀쉼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서보미 기자

52년차 해녀인 김방진 도두해녀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제주시 도두1동 도두해녀쉼터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서보미 기자




제주 바다에서 둘 중 한마리는 아열대성 물고기





“바당에 들어가보믄 잡풀이 하나도 어서. 물속이 히양허여(하얘). 이젠 먹이가 되는 감태도, 몸(모자반)도 안 나부난 해산물이 다 지픈(깊은) 바당으로 가분생이라(가버린 듯해).”



제주도 먼바다에 풍랑 예비특보가 내린 지난달 30일 제주시 도두1동의 도두해녀쉼터. 물질을 포기하고 텅 빈 망사리(해산물을 담는 그물주머니)를 정리하던 김방진(71) 도두해녀회 회장이 “엊그제 소라 15㎏과 해삼 두마리만 잡았다”며 “벌이가 반의반으로 줄어서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52년차 제주 해녀가 목격한 ‘하얀 바다’는 갯녹음이다. 바다의 사막화라고도 불리는 갯녹음은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차가운 물속 암반 지역에 사는 해조류가 녹아 사라지고, 그 자리에 흰색 석회조류가 달라붙는 현상을 뜻한다.



소라와 전복, 해삼, 게 등의 서식지이자 산란처인 해조류를 없애는 갯녹음 현상은 제주 바닷속에서 빠르게 진행됐다. 제주 연안의 전체 암반 면적 중 갯녹음이 발생한 암반 면적 비율은 2019년 33.3%에서 2023년 39%로 높아졌다. 다만 바다숲 조성 사업 등의 영향으로 2025년에는 이 비율이 31.2%로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녀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제주 바다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실제 국립수산과학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제주 바다(중문 기준)의 표층 평균 수온은 20.9도로, 4년 전인 2021년 19.6도보다 1.3도 높아졌다. 해수 온도가 28도에 도달했거나 도달이 예상돼 ‘고수온 특보’가 발효된 날짜 역시 2021년 35일에서 지난해 85일로, 두배 넘게 늘었다.



지난달 30일 바다가 세서 물질을 못 나간 김방진 도두해녀회 회장이 망사리와 테왁을 정리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지난달 30일 바다가 세서 물질을 못 나간 김방진 도두해녀회 회장이 망사리와 테왁을 정리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기후 위기 최전선인 제주의 어장 지도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13년부터 10년간 제주 연안의 정치망(물고기 길목에 설치한 그물)에 걸린 어류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29.4%가 아열대성 어종이었다. 잡힌 두마리 중 한마리가 아열대성 어종인 지점도 있었다. 따뜻한 바다에 서식하는 독가시치, 호박돔, 아홉동가리, 금줄촉수, 사랑놀래기 등이 제주 바다에 출현했고, 일부는 수산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지금도 제주 바다에서 흔히 보이는 자리돔과 방어 등의 서식지는 동해로 확대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대부분 수온 상승에 따라 아열대 어종도 종의 개수, 개체 수 등이 모두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 지속해서 발생한다면 이들의 서식 환경이 유리해지면서 개체 수와 출현 빈도는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30일 전남 화순군 사평면에서 만난 농민 정학철씨가 지난가을 깨씨무늬병이 심각했던 논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달 30일 전남 화순군 사평면에서 만난 농민 정학철씨가 지난가을 깨씨무늬병이 심각했던 논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늘어나는 벼 피해, 줄어드는 쌀 생산





이상 기후는 농작물에 예기치 않은 병충해를 유발한다. 지난달 30일 오후 전남 화순군 사평면에서 만난 정학철(53)씨는 지난가을 깨씨무늬병에 걸린 논을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그는 “벼 잎에 참깨 모양처럼 점이 촘촘하게 찍혀 있다. 절반 이상 점이 찍힌 것만 깨씨무늬병에 걸린 것으로 본다”며 “깨씨무늬병에 걸린 논은 벼가 말라 전체 논 색깔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씨 등 농민들은 지난해 9월3일 사평면에서 벼 깨씨무늬병 피해가 가장 심한 강기원(60)씨의 논 1983㎡(600평)를 갈아엎었다. 정씨는 “지력이 약해져서라고들 하는데, 늦은 장마에 가을장마까지 겹치는 등 일기 탓 같다”며 “벼 깨씨무늬병이 극성을 부려 쌀 생산량이 농가마다 평균 2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벼 깨씨무늬병은 잎과 이삭에 깨씨 모양의 암갈색 반점이 생기는 곰팡이병으로, 미질 저하와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0월 “7~8월 이상 고온과 9월 잦은 강우로 벼 깨씨무늬병이 생겼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집계 결과, 전국 4만9305㏊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2만898㏊로 가장 많았고, 전북이 1만7028㏊로 뒤를 이었다. 피해 농가 수는 전국 3만4145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3일 전남 화순군 사평면에서 벼 깨씨무늬병 피해가 가장 심한 강기원씨의 논 1983㎡(600평)를 갈아엎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실 제공

지난해 9월3일 전남 화순군 사평면에서 벼 깨씨무늬병 피해가 가장 심한 강기원씨의 논 1983㎡(600평)를 갈아엎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실 제공


벼 깨씨무늬병은 지난해 처음 농업재해로 인정됐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10월 농업재해대책심의위원회에서 벼 깨씨무늬병 피해를 농업재해로 확정했다. 피해 농가는 농약대와 대파대, 생계비 등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정씨는 “2024년엔 여름이 너무 뜨거워 벼멸구가 창궐해 벼 줄기를 빨아먹는 바람에 생산량이 30%나 줄었다”며 “봄철 꽃 필 때 추워 과수나무가 착과가 안 되는 등 해마다 기후 위기로 농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 기후로 씻나락(종자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19일 충남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 농민들은 썩거나 무순처럼 비실비실한 모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박종대(71)씨는 “모판을 실패해 새 못자리를 만드는 농민이 적지 않다 보니 씻나락이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당시 충남도는 시군 15곳 가운데 11곳, 모판 9만9050개에서 발아 불량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5월 충남 논산시 은진면 한 농가의 미르찰벼 모판, 볍씨가 썩거나 생육이 불량하다. 송인걸 기자

지난해 5월 충남 논산시 은진면 한 농가의 미르찰벼 모판, 볍씨가 썩거나 생육이 불량하다. 송인걸 기자


씻나락이 자라지 못한 원인은 벼가 익는 등숙기(중만생종 기준, 8월 중순부터 약 40일)에 이상 고온과 강우가 계속되면서 이삭에서 싹이 나는 수발아가 증가하고 전분이 녹아 볍씨의 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만생종 벼를 기준으로 등숙기 평균 온도가 23도일 때 품질이 가장 좋은데 지난해 모판 파동을 빚은 2024년 벼의 등숙기 평균 온도는 25.9~24.9도로 예년에 견줘 1.9~2.9도 높았다.



지난해에도 봄엔 저온 현상, 여름 가뭄, 가을 폭우 등 이상 기후 현상은 계속됐다. 기상청의 기후동향 자료를 보면, 모내기철인 지난해 5월 전국 평균 기온은 약 16.8도로 평년 17.3도보다 0.5도 낮았다. 또 등숙기인 9월의 전국 강수량은 228.8㎜로 평년의 155.1㎜보다 크게 많았다.



이런 이상 기후로 쌀 생산량은 매년 줄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2024년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358만5천톤(10a당 514㎏)으로, 2023년 370만2천톤(10a당 523㎏)보다 3.2% 떨어졌다. 10년 전인 2015년 생산량은 432만7천톤(10a당 542㎏)이었다.



지난해 5월 충남 논산 은진면 한 농가에서 논산시 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사(맨 오른쪽)가 모판 상태를 살피고 있다. 송인걸 기자

지난해 5월 충남 논산 은진면 한 농가에서 논산시 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사(맨 오른쪽)가 모판 상태를 살피고 있다. 송인걸 기자


이상 기후는 국립종자원의 볍씨 수매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립종자원은 수매 기준 가운데 수발아율 허용치를 애초 3% 이하에서 2024년 10% 이하, 2025년 15% 이하로 각각 완화했다. 국립종자원 쪽은 “기후 변화에 따라 수매 기준을 일부 조정했다”고 밝혔다.



새해에도 볍씨 불량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농민들은 자구책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충남 당진 대호간척지 250마지기에서 벼농사를 하는 박응식씨는 “10년 전만 해도 한 필지(약 3천평)에서 톤백으로 10개 이상 수확했는데 지금은 5~6개 정도로 줄었다”며 “우리나라 계절이 여름과 겨울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해마다 벼 수확량이 줄어드는 만큼 정부는 기후 변화에 강한 다수확 품종을 보급해야 쌀 생산량과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대하 송인걸 서보미 김규현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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