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마두로 생포 작전명 ‘확고한 결의’에 숨은 트럼프의 욕망

한겨레
원문보기

마두로 생포 작전명 ‘확고한 결의’에 숨은 트럼프의 욕망

서울맑음 / -3.9 °
트럼프 1년 규탄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국이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축출한 것과 관련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1년 규탄 국제민중행동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국이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축출한 것과 관련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작전명을 짓는 것과, 그 작전의 도덕성을 강요하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그런 단어들을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입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에 반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대학(US Army War College) 학술지 ‘파라미터’(Parameters)에 실린 논문 ‘작전명 짓기의 기술’(The Art of Naming Operations)에서 ‘억지로 떠먹인다’고 비판한 것은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작전명 ‘정의로운 대의’(Just Cause)였다. 당시 미국은 파나마 실권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마약밀매 혐의로 마이애미 연방법원에 기소한 상태였다. 미 마약단속국에 체포된 노리에가는 한때 자신의 후원자였던 미국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수감됐다.



애초 파나마 침공 작전명은 ‘파란 숟가락’(Blue Spoon)이었다고 한다. 작전 시작 전 이를 본 제임스 린지 특수작전사령관이 “자네 손주들이 ‘할아버지는 파란 숟가락 작전에 참여했다’고 말하길 바라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고, 작전명은 ‘정의로운 행동’(Just Action)을 거쳐 ‘정의로운 대의’로 최종 결정됐다는 것이다.



육군 정보장교였던 그레고리 시민스키 중령이 1995년 작성한 ‘작전명 짓기의 기술’은 ‘정의로운 대의’가 미군 작전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단어와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총알과 폭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오늘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부는 대중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문제는 ‘정의로운 대의’처럼 작명 의도가 노골적이어서, 군과 정부의 ‘프로파간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군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끌고 간 작전의 명칭은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였다. 파나마 침공 때처럼 겉으로는 마약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명분을 드러내려는 작명 의도로 보이지만,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 집착과 마초적 힘의 과시, 미국의 서반구 패권 의지를 ‘확고히’ 드러낸 군사작전이었다는 비난이 미국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세계 최강 군사력을 동원해 주권국 영토와 자원을 강탈할 수 있다는 트럼프식 ‘확고한 결의’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과 그레나다 침공(1983) 사례를 들며 베네수엘라 침공 방안을 압박해 참모들을 경악시킨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한국전쟁 때 ‘킬러 작전’…미 본토서 혹평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전쟁사의 후일담이나 흥밋거리 정도였던 작전명이 ‘공보 목적’과 결부되기 시작한 것은 미 전쟁부가 핵폭탄 실험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를 위해 군사기밀인 ‘작전 코드명’ 외에 ‘작전 닉네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군은 1946년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실시한 핵무기 실험에 ‘교차로 작전’(Crossroad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군력, 공군력, 어쩌면 인류가 교차로에 서 있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당시 언론은 작전명과 함께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말로 하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작전의 성패와 무관하게 작전명 자체는 ‘패배’한 사례는 많다. 한국전쟁 때 미군은 장병 사기를 고취하려는 목적의 여러 작전명을 만들어 공개했다. 선더볼트(번개), 킬러(살인자), 커레이저스(용맹), 오데이셔스(대담), 돈틀리스(불굴) 등이다. ‘킬러’ 작전에 대해 미국 본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공화당은 “트루먼 행정부가 한국에서 중국인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고 비판했고, 국무부는 “중공과의 협상 분위기를 망쳐놨다”고 항의했다.



미국 내 반전 여론과도 싸워야 했던 베트남전쟁에서는 작전명 매셔(짓이기는 자)가 논란이 됐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이 작전명이 알려지자, 린든 존슨 대통령은 평화 정착 기조를 반영하지 못한 작전명이라고 분노했다고 한다. 작전명은 ‘화이트 윙’(하얀 날개)으로 변경됐다.



베트남전쟁 이후 미군은 ‘코드명·닉네임·훈련 용어 시스템’(NICKA)을 도입했다. 닉네임을 무작위 생성하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국방부 소속 여러 조직에 알파벳 글자쌍을 배정한 뒤 이에 맞춰 두 단어로 된 작전명을 추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UR’을 사전에 배정받은 미 대서양사령부는 1983년 그레나다 침공 때 ‘UR’로 시작하는 ‘어전트 퓨리’(Urgent Fury, 긴박한 분노)를 작전명으로 추천했다. 이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침공 직후 작전명이 공개되자 ‘뉴욕경찰청도 이길 수 있는 작은 섬나라를 침공하면서 막대한 군사력을 투입했다’는 조롱과 함께 ‘지나치게 호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주권국 불법 침공에 ‘정의’ 딱지…“고도의 속임수”





파나마 침공 작전명은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주권 국가에 대한 명백한 불법 침공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이를 “정의로운 대의 작전”이라고 써야 했기 때문이다. 군사작전에 대한 도덕적, 법적 판단을 군과 정부가 선점해버린 셈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파나마 침공 작전명을 “고도의 속임수”라고 비판했다.



‘정의로운 대의’ 작전 이듬해인 1990년, 이라크 침공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방어하는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 작전과 쿠웨이트 해방을 위한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은 미군 작전명의 이정표를 세웠다. ‘작전명 짓기의 기술’은 “미국의 억제력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침략성을 강조하는 ‘방패’ 은유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폭풍’ 은유는 군사공격을 압도적인 자연의 힘이 분출하는 것과 연관시켰다”고 했다.



예비역 해병대 대령이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고문인 마크 캔시안은 지난해 11월 미국 공영방송 엔피알(NPR) 인터뷰에서 일상적 군사훈련 작전명 지정에는 NICKA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파나마 침공 때 ‘정의로운 대의’ 작전이나 이라크전 작전명인 ‘이라크 자유’(Iraqi Freedom), 아프가니스탄전의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 등 주목받는 작전 명칭은 따로 정한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첫해인 지난해, 미군은 이란 핵시설 공습 작전에 ‘심야의 망치’(Midnight Hammer), 그해 8월 베네수엘라 근처 해역에서의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에는 ‘남쪽의 창’(Southern Spear)이라는 작전명을 붙였다. 마크 캔시안은 “두 작전의 메시지는 살상력”이라고 했다.



‘작전명 짓기의 기술’ 저자는 “작전명은 가장 먼저 발사되는, 어쩌면 결정적인 한 발의 총알이다. 신중하게 만들고 조준하라”고 당부했다. 트럼프식 작전명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힘을 과시한다. 패권적 욕망과 권력에의 의지를 정의와 명분의 이름으로 분식한다.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집필했던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여러 저서에서 작전명 원칙을 이렇게 밝혔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작전을 설명하며 뽐내거나 자신만만해 하는 느낌의 단어를 쓰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절망적 분위기를 불어넣어서도 안 된다.’



※참고자료



Gregory C. Sieminski, The Art of Naming Operations, Parameters 25, no. 1 (1995)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