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훈장→국가유공자 인정 절차 취소 가능 여부 검토 중
'무공훈장' 취소 가능성은 작아…공적서 원본 발견 못해
제주시 연동 박진경 대령 추도비에 설치된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 라는 이름의 감옥 조형물이 강제 철거되고 있다 .2022.5.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제주 4·3사건 당시 진압작전 주도 여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고(故)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위 유지 여부가 이르면 1월 중 결론이 날 전망이다.
국가보훈부는 6일 박 대령에게 지급한 국가유공자 증서를 부처 재량으로 발급 취소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최소 올해 연말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유관 기관의 협조 및 법률 자문을 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보훈부 내부에선 올해 1월을 목표 시한으로 두고 관련 규정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부는 박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위가 그가 1950년에 받은 무공훈장에 근거해 자동으로 부여된 점을 감안, 부처 차원에서 이를 취소할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유공자법 4조에 따르면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본인 및 유가족의 신청이 있을 시 자동으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게 된다. 박 대령에게도 1950년 수여된 무공훈장을 근거로 한 유가족의 신청에 따라 지난해 별도 검토 없이 국가유공자 증서가 발급됐다.
이를 두고 유공자 지위 발급과 관련해 위원회 개최 등 인적 검토가 제대로 시행됐을 경우 이같은 '해프닝'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25 전쟁 전후 수여된 일부 훈장의 수훈자 중엔 박 대령처럼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박 대령의 사례처럼 국가유공자 증서 '자동 발급'을 막기 위한 통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 상황이다.
박 대령의 경우 무공훈장의 공적이 적힌 원본 자료를 찾아내 그 내용을 토대로 박 대령이 4·3사건 때 민간인 진압 작전에 깊이 관여한 것이 확인되면 훈장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하지만 국방부가 박 대령의 훈장 공적서 원본을 찾지 못해 이같은 방안 추진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유공자 지위 인정 근거가 국가유공자법에서 규정하는 결격 사유에 해당할 경우에도 유공자 지위 취소가 가능하다. 국가유공자법 9조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 결정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경우나, 국가유공자 요건 사실에 중대한 흠결이 있어 등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 국가유공자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의 4·3 개입 수준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공자 지위를 취소할 경우 여론에 밀려 정부가 섣부른 결정을 했다는 비판과, 이념 논쟁이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보훈부의 판단이다. 때문에 보훈부는 국가유공자 증서 발급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4·3 진압 작전에 투입돼 그해 6월 부하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한 달여간 제주도에서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박 대령을 살해한 부하들은 북한에 동조한 좌익세력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으며, 박 대령은 사망 2년 뒤인 1950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박 대령이 주도한 진압 작전의 적절성 및 잔혹성 여부를 두고 현재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 때 발간된 '4·3 사건 진상 보고서'에는 박 대령이 연대장 취임식 때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선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고 발언했다는 증언이 실려 있다. 또 양민과 폭도의 구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총살하는 등 강경한 진압 작전을 펼쳤다는 증언도 보고서에 담겼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박 대령은 양민을 학살한 게 아니라 죽음에서 구출하려고 했다. 4·3 초기에 경찰이 처리를 잘못해서 많은 주민들이 입산했는데, 박 대령은 폭도들의 토벌보다는 입산한 주민들의 하산에 작전의 중점을 뒀고, 이러한 민간인 보호작전은 인도적이면서 전략적 차원의 행동이다"라는 채명신 당시 소대장(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의 증언도 실려 있다.
아울러 학계를 중심으로 박 대령이 작전에 투입됐던 1948년 5~6월은 그해 겨울 대규모 총살극이 벌어지기 전이라 인명 피해가 적었다는 반론도 나온 상황이다.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소식이 알려진 후 제주 4·3 유족 및 시민사회에선 반발하며 유공자 지정 취소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방법을 잘 찾아보라"며 재검토 지시를 내린 바 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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