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변호사 |
연말에 일본 교토 인근의 한 료칸에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왔다. 료칸은 한자어 '여관'의 일본발음으로 나그네의 집이란 뜻이지만 일본에선 전통적인 숙박시설을 가리킨다. 직접 경험해본 료칸은 단순한 숙박시설로 보기엔 억울한 면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적 체험이었다. 온천과 일본의 자연, 음식과 문화가 결합된 일본 전통문화 자체라는 설명이 숙박시설이란 건조한 말보다 더 맞는 말 같았다.
시골 료칸은 입구부터 시작된 정성스러운 환대에서 이미 결정적인 인상을 줬다. 이방인을 처음 맞이해준 것은 환갑이 훌쩍 넘은 직원들의 기품어린 접객이었다. 료칸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숙소 입구부터 시작된 이들의 환대에는 긴장된 마음을 녹이는 자연스러움과 위엄이 있었다.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호텔리어와는 다른 편안함을 준 것이다.
저녁식사로 제공된 코스요리는 료칸여행의 정수라고 한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고 해당 지역문화를 반영한 음식은 료칸 자체의 독특한 음식문화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요리는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이 느껴졌고, 특히 전채코스는 꽃이나 나뭇가지로 엮은 장식들, 음식과 그릇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자체로 화려한 작품이었고 젓가락으로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다미 객실은 일본적인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객실 창 너머로 펼쳐진 일본식 정원은 담장 밖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는데 분재와 이끼가 커다란 나무들과 함께 자연을 본뜬 것처럼 보였다. 다다미방은 어떤 장식적인 가구도 없이 일본식 미니멀리즘 그 자체로 보였고 식사 전에 놓여 있던 좌식 의자와 탁자가 치워진 곳엔 정갈한 침구가 놓여 있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이 말하는 고유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세심한 공간과 서비스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 것을 잊기도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국적인 공기를 느끼는 순간 역시 존재했다. 방안 탁자에 영어로 쓰인 안내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자유'를 말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정원을 음미하다 객실 옆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낮게 깔린 산세를 바라보던 순간은 조금 과장하면 '물아일체'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론 료칸에 머무는 동안 허투루 1분 1초를 보낼 수 없다는 결심이 자꾸만 솟구쳐 나왔다. 자연스럽게 이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제일 좋았겠지만 어떤 긴장된 순간이 찾아오면 모든 시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음미해야만 한다는 결심이 들어 식사로 나오는 반찬 하나도 남기기 어려웠다.
이 공간에 푹 잠겨 시간을 잊은 때와 긴장의 시간을 번갈아 오가다 료칸을 빠져나왔다. 료칸에서 보낸 20시간은 무아와 긴장을 오가며 며칠을 보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불현듯 서울에서 보낸 무수한 시간이 생각났다.
사무실 의자에 구겨 앉아 책상 위 컴퓨터, 서류들과 씨름하며 보낸 시간들과 료칸에서 보낸 한때는 동일한 것인데 나는 왜 이 시간과 공간을 차별적으로 취급한 걸까. 물론 일상과 비일상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타지에서는 여행자답게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서울에서의 1시간을 왜 그렇게 하찮게 취급했는지, 료칸에서 반짝이는 감각을 서울에선 유지할 수 없는 것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교토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느닷없이 휴대폰 단체대화방에서 고등학교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친구의 죽음이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서울로 올라와 이방인으로 안절부절 살았던 30년 세월, 이제야 처음 도착한 친구의 소식은 너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중국 시인 이백의 한 시구를 떠올려본다. '천지는 모든 생명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다/ 세월은 영원한 시간 속을 지나는 나그네와 같다.'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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