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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머니투데이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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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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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재회 주파수'라는 게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나온다. 조회수가 1300만회를 넘은 것도 있다. 재회 주파수란 특정한 파장을 통해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 특히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자극해 내게 연락을 해오게 한다는 음원이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재회 주파수 영상의 댓글창엔 '이걸 들으며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단호하게 돌아섰던 상대로부터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듣자마자 1시간 만에 전남친에게 연락이 와서 재회하게 됐어요' 등의 후기가 가득하다.

그저 일종의 자기암시이자 자기최면일 것이다. 마침 그걸 듣고 있는 동안 상대에게 연락이 왔을 뿐 '텔레파시'가 작동했을 리는 없다. 댓글에 적힌 성공사례들은 재회 주파수를 듣고 있지 않았더라도 도달했을 연락이고 연락이 올 만한 때에 우연히 재회 주파수를 틀어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은 자주 운명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얼마 전 새벽에 나도 호기심이 들어 재회 주파수 영상을 클릭해봤다. 차분한 명상음악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한 지 10분 만에 정말로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우연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왜 사람들이 재회 주파수를 틀어둔 채 잠을 청하는지 알만했다.

간절한 마음은 간절한 행동을 부른다. 이별한 연인과 다시 만나고 싶은 소망이든 소원해진 가족이나 친구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바람이든 그 마음들은 나 자신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의 내 이기적인 모습,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줬던 내 말과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상실의 아픔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진다. 그리고 그 내면의 성숙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말과 행동을 바꾸려 노력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운동으로 건강과 외모를 가꾸고, 직업이나 경제적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산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성실한 삶이 차곡차곡 쌓이면 나는 더이상 초라하고 비참하던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됐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더 단단한 사람이 돼 있다.

그러므로 재회 주파수는 대책 없는 낙관도,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도 아니다. 가깝게는 명상을 통해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마음 다스리기고 멀게는 간절한 희망을 품게 해 삶의 열정과 의지를 발현하게 하는 심리적 자극이기도 하다. 개츠비가 만(灣) 건너편 녹색 불빛이 켜진 데이지의 집을 매일 바라본 것처럼 재회 주파수라는 미신에까지 기대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는 언젠가 그 사람이 나를 꼭 찾아낼 수 있도록 오늘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일 찬란하게 빛날 작은 반딧불이 하나를 품에 꼭 안고 살아간다.

옥타비오 파스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아날로지'(analogy)라고 했다. 우주는 장엄한 음악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교향곡의 화음을 이루는 작은 음들이라는 것이다. 아날로지 세계에서 전쟁이나 혐오 같은 갈등들은 모두 불협화음이다. 그 어긋난 리듬을 다시 조화롭게 하기 위해 옛 주술사들은 주문을 외웠고 현대음악가들은 평화를 노래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 비치발리볼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캐나다 선수들이 언쟁을 벌일 때 에펠탑 아래서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울려퍼졌고 관중의 합창과 함께 선수들은 웃으며 화해했다. 재회 주파수도 나와 너 사이의 불협화음을 협화음으로 바꾸려는 주술적 음악이다.

이 세상은 그런 곳이다.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 끝난 것 같아도 끝이 아니다. 부활의 '네버엔딩스토리' 노랫말이 새해 첫날 내 재회 주파수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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