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이정섭 앵커
■ 전화연결 :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특보]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민 배우'로 불린 안성기 씨는아역배우로 데뷔한 뒤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데뷔 때의 모습,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렇게 아역부터 시작해서 생전에 영화 140편을 남기고 떠난배우 안성기, 그의 삶은 어땠고한국 영화계에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평론가님, 나와 계시죠?
[하재근]
안녕하세요.
[앵커]
고 안성기 배우,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투병 사실이 공개됐었죠?
[하재근]
그렇습니다. 2019년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2020년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후 6개월 만에 다시 재발했다는 건데. 그런데 그게 알려진 것은 2021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상당히 뒤늦게 알려진 거고 2019년부터 2022년 그 사이에 안성기 씨가 영화에도 출연을 연이어 했거든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안성기 씨가 투병하면서 출연했다는 게 뒤늦게 알려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었고 안성기 씨한테 쾌차하시라고 국민적인 응원의 물결이 일어났었습니다.
[앵커]
투병을 하던 당시에도 촬영을 하고 또 늘 항상 촬영장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죠?
[하재근]
2023년 즈음해서 약간 호전된 것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시기에 여러 행사장 같은 데 참여를 하면서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계속해서 영화하겠다. 이런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었고. 2023년에 노량:죽음의 바다 거기에 특별출연을 하시기도 했었는데 그만 복귀가 무산되고 노량:죽음의 바다가 안성기 씨의 마지막 유작이 됐습니다.
[앵커]
이렇게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동료 후배 연예인들, 빈소를 계속 찾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모습을 짚어볼까 합니다. 60년 죽마고우인 조용필 씨가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눈시울을 붉히면서 잘 가라, 성기야. 또 만나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재근]
조용필 씨가 안성기 씨하고 중학교 동창이고 같은 반이었고 심지어 짝꿍이었다고 합니다. 짝꿍이 말로만 하는 짝꿍이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짝이었다는 거예요.
굉장히 절친하게 60여년 간을 그렇게 지내왔는데 또 공교롭게도 두 분이 198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양대 거성이었거든요. 오랜 세월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지금 현재도 한국 대중문화계의 큰 어른으로 계셨는데 두 분 중에서 안성기 씨가 이렇게 별세를 하니까 조용필 씨가 빈소를 찾으면서. 지금 조용필 씨도 투어하고 있기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몸관리를 집에서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래도 안성기 씨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바로 빈소를 찾았습니다.
[앵커]
꿈꾸던 시절부터 이렇게 빛나던 순간까지 함께해서 더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장례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은 후배인 연기자 박상원 씨가 맡았는데요. 후배들에게 안성기 씨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재근]
안성기 씨가 1982년 정도에 성인으로서 남우연기상을 받았었거든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2010년대까지 계속해서 연기상을 받았거든요. 그러한 배우가 매우 드문데, 그러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연기상을 지속해서 받을 정도로 배우로서도 치열하게 작품에 임했고 자기관리도 철저했다는 거거든요. 거기다가 사생활도 한 번도 논란이 없을 정도로 사생활 관리도 철저해서 공사 양면에서 후배들에게 그야말로 롤모델이 된 그런 거인 같은 분이었고 그렇다 보니까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많은 후배들이 애도하면서 안성기 씨 장례가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데 이게 그냥 어떤 경력을 감안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영화인장이 아니라진짜 모든 영화인들이 다 추모하고 애도하는 그러한 속에서 치러지는 정말 글자 그대로의 영화인장이 됐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국민배우 안성기 씨, 생전에 어떤 영화들 굵직한 이력들을 남겼을까요?
[하재근]
안성기 씨의 영화는 일일이 꼽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너무나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의 1980년대 우리나라 영화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 나타났던 젊은 감독들이 다 안성기 씨를 선택했다고 할 정도로 히트했다 하는 영화에는 다 안성기 씨가 나오다시피 했었거든요. 특히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창호 감독, 배창호 감독의 히트작들에는 다 안성기 씨가 나오면서 그해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등등 수많은 수작들을 냈고 거기에 또 이장우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 칠수와 만수,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 등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히트작들을 내면서 한국 영화는 안성기다라고 하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였습니다.
[앵커]
국민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았던 고 안성기 씨의 별세 소식을 짚어봤습니다. 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황윤태 (hwangyt264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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