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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파리 목숨’, 전략은 ‘오락가락’… 비전 실종된 현대오토에버

조선비즈 이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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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파리 목숨’, 전략은 ‘오락가락’… 비전 실종된 현대오토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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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현대자동차그룹 IT서비스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가 또다시 수장을 교체하며 리더십 불안론에 휩싸였다. 최근 2년여 사이 세 번째 대표이사 선임이다. LG CNS와 삼성SDS 등 동종 업계 경쟁사들이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보장하거나 명확한 중장기 전략 하에 움직이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잦은 사령탑 교체로 회사의 경영 전략이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그룹의 미래인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의 핵심 역할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현대오토에버의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된 류석문 전무는 쏘카와 라이엇게임즈 등을 거친 개발자 출신이다. 2024년 3월 영입된 지 1년 9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해 대표직을 맡게 됐다.

문제는 전임자인 김윤구 사장이 공식 임기인 2027년 3월을 1년 3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전격 교체됐다는 점이다. 김 전 사장은 현대차그룹 인사실장·감사실장 출신 재무·인사통으로, 전임 서정식 대표가 불미스러운 의혹으로 중도 사임한 뒤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투입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오토에버는 2023년 말부터 2025년 말까지 약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략가(서정식)에서 관리자(김윤구), 개발자(류석문)로 CEO의 색깔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러한 잦은 리더십 교체는 회사의 중장기 비전 부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정식 전 대표 시절 현대오토에버는 공격적인 외형 확장과 처우 개선에 집중했으나, 김윤구 대표 체제에서는 그룹 내부 감사와 조직 관리 등 ‘내실 다지기’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개발자 출신인 류 내정자가 선임되면서 회사의 키워드는 다시 ‘기술 품질’과 ‘소프트웨어(SW) 혁신’으로 바뀌게 됐다. 업계에선 SDV와 같은 고도의 기술 전환은 최소 5년에서 10년을 내다보는 긴 호흡이 필요한데, 2년마다 CEO가 바뀌고 그때마다 KPI(핵심성과지표)가 달라지는 환경에서는 실무진이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IT서비스 기업들이 리더십의 연속성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LG CNS 현신균 사장은 2022년 말 대표직에 오른 뒤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하며 4년째 흔들림 없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삼성SDS 역시 홍원표 사장, 황성우 사장 체제를 거쳐 이준희 사장으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승계하며, 클라우드·인공지능(AI) 중심의 신사업 전략을 연속성 있게 추진하고 있다.

반면 현대오토에버는 그룹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대표를 갈아치우는 ‘인사 적체 해소용’ 혹은 ‘임시직’ 자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김윤구 전 대표의 경우 전임 대표 리스크 관리와 조직 정비라는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잔여 임기와 상관없이 교체되며 사실상 ‘토사구팽’ 된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기술력 격차에 따른 문책성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2조9293억원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시스템통합(SI)과 IT아웃소싱(ITO) 등 그룹사 내부거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내부거래 비중은 90%를 상회하며, 계열사와의 거래 중 경쟁 없이 따내는 ‘수의계약’ 비중이 92%를 넘는다.

그룹 미래와 직결된 차량용 SW 부문의 3분기 누적 매출은 19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매출에서 차량용 SW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3분기 21.6%에서 지난해 18.8%로 오히려 2.8%포인트(P) 쪼그라들었다.

사실상 그룹 캡티브 시장에 기댄 실적 잔치일 뿐, 독자적인 SW 기술 경쟁력 확보는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다. 현대오토에버의 한 관계자는 “IT기업인데도 지원, 스태프 부서 중심으로 돌아가고 개발 조직은 주도권이나 방향성 없이 잡무만 맡아 처리하는 분위기”라며 “빅테크는 커녕 비슷한 IT서비스 기업들과 비교해도 개발 환경이 뒤떨어져 미들급 개발자들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오토에버의 리더십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개발자 출신 CEO를 전면에 내세운 이번 인사는 현대오토에버가 그만큼 기술 경쟁력 확보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외부 출신 인사가 그룹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권한과 재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IT서비스업계 관계자는 “현대오토에버가 사실상 현대차 물량으로 유지되는 구조인 만큼 독자 생존이 쉽지 않다”며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자율주행 등에서 뚜렷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니 결국 사람을 갈아치우는 방식이 반복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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