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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 사회정책팀 기자
얼마 전 에스엔에스(SNS)가 20대 시절 사진을 10년 전이라며 띄워줬다. 세상이 몹시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사진을 보다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20대 내내 세상으로부터 거대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게 아닐까. 기자가 되면 세상에 기여하는 멋진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세뇌와 착각.
기원은 대학 입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학 전 대뜸 선배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부로 입학해 전공 진입은 2학년부터지만, 1학년 때 임시로 활동할 학과를 고르라고 했다. 원래는 사회학과를 말하려고 했다. 근데 그해 신문방송학과에서 이름을 바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가 눈에 밟혔다. 휘황찬란한 이름 덕이었을까. 방송사 피디가 되거나 광고회사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 괜찮은 선택 같았다.
순간의 선택이 끼칠 영향을 그땐 몰랐다. 1학년 1학기 리영희라는 이름을 얼핏 들은 뒤 도서관에 가 그의 평전과 저서를 읽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우상과 이성’) 커피를 연달아 두잔 마신 것처럼 심장이 뛰어댔다. 2학기에 대학 학보사에 들어갔고 기자 지망생이 됐다.
미국 기자들은 기사를 스토리(story·이야기)라고 부른다. 20대 기자 지망생을 매료한 이야기는 그냥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자가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였다. 우상을 깨는 기사만큼이나 기사를 쓴 기자들의 역동성에도 매료됐다. 기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취재 뒷이야기를 들었다. 한번은 기사를 읽고 어떻게 취재했는지 너무 궁금해 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바쁜 와중에 커피를 사주며 취재기를 들려줬다. 꼭 동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에스엔에스가 또 옛 포스팅을 띄웠다. “넌 한겨레 기자가 될 거야.” 대학 동기가 13년 전 장난처럼 단 댓글이다. 그러니 이건 꿈을 이룬 삶일까.
20대의 내가 듣는다면 실망하겠지만, 지금 내 일상은 꿈꿔온 모습과 사뭇 다르게 평범하다. 매일 아침 무엇을 신문에 실을지 발제를 올리고 종일 전화를 돌린다. 취재 현장에 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일간지 특성상 시간은 넉넉하게 허락되지 않는다. 매일 1면과 톱(상단) 기사를 쓰고 싶지만, 신문 귀퉁이에 들어갈 작은 기사를 쓰는 날이 더 많다. 신문 기사와 별도로 페이지뷰를 위한 디지털 기사도 쓰느라 시간은 허겁지겁 흐른다. 나는 선배와 커다란 진실을 두고 토론하지 않는다. 대신 늦은 저녁 기사의 작은 표현 하나에 전전긍긍해 이를 고칠 수 없겠냐며 그를 괴롭힌다. 그렇게 매일 목적 모를 분투를 끝내고 난 뒤에야 생각한다. 1970년대의 기자는 정치권력이라는 우상과 싸웠지만, 2020년대의 기자는 언론 그 자체가 타파해야 할 우상이 된 시대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와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3년8개월 전 ‘슬기로운 기자생활’의 필자로 합류했다. 예전과는 다른 모양으로 숨 쉬고 있는 우상을 드러내려 애썼지만 자주 미끄러졌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범람하던 때 업을 시작한 또래 기자들이 올해 10년차가 된다. 10년 동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후배들은 ‘재래식 언론 종사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입사한다. 그러니 뒤를 이어 칼럼을 쓸 ‘슬기로운 기자’들은 분명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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