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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대가 월트 "약탈적 패권국 돼 가는 미국 우려… 중국 부상 속 동맹 역할 중요" [새해 석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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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 대가 월트 "약탈적 패권국 돼 가는 미국 우려… 중국 부상 속 동맹 역할 중요" [새해 석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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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미·중·러 초강대국 협력 시대? 안 될 것”
“트럼프, 중국 부상 와중에 동맹 흔들어”
“단일 패권국 등장 견제 노력 계속될 것”
“한국, 독자 핵무장 진지하게 검토 필요”
“韓, 자신감 갖고 무역 상대국 다변화를”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16일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약탈적 패권국이 돼 가고 있다”며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시점에 동맹 네트워크 이완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16일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약탈적 패권국이 돼 가고 있다”며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시점에 동맹 네트워크 이완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이 지난달 4일 밤(현지시간) 조용히 공개됐다. NSS는 새 미국 정부 첫해 발표되는 최상위 외교·안보 정책 지침서다. 미국은 서반구(남북 아메리카)의 맹주를 자처하며, 10년간 자국을 약화시키려 한 러시아를 용인하고 추월하려 한 중국에는 유화 손짓을 보냈다. 2017년 첫 집권 때 초강대국 경쟁 시대의 문을 연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그 문을 닫고 초강대국 협력 시대를 개막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봄 모니카 토프트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강대국들이 각자 영역을 구분하고 상호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을 인정했던 19세기 제국주의 세력권 시대가 귀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티븐 월트(71)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치행정대학원) 교수는 같은 달 16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월트 교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석학이다. 그는 지역 강대국 간 분쟁을 다루는 지정학 분야의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이론으로 유명하다. 유럽과 아시아 등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패권국이 떠오르지 못하도록 미국이 동맹국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이 전략이다. 동맹국을 상대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부 증액 요구를 해당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적인 안보 전략 목표가 없는 인물이다. 역대 최강 경쟁자 중국의 등장으로 세력 균형 붕괴 위기에 놓인 아시아에서 미국의 결정적 보조자 역할을 맡을 두 동맹국 한국과 일본을 국방비와 관세로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역효과를 부를 명백한 패착이라는 게 월트 교수 비판이다. 그러나 100년 넘게 요충지의 단일 패권국 부상을 저지해 온 미국인 만큼 아무리 트럼프라도 중국의 도전을 좌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는 장담했다.

월트 교수는 미국이 ‘약탈적 패권국(predatory hegemon)’이 돼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트럼프를 다시 뽑는 바람에 미국이 상실한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며 동맹 네트워크의 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에는 독자 핵무장의 진지한 검토와 무역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제안했다. 인터뷰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 케네디스쿨의 월트 교수 연구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제로섬’ 트럼프 월드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가 공개됐다. 어떻게 봤나.

“아주 희한한(odd) 문서다. 상충하는 내용이 많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모순은 개입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다른 나라 일에 간섭하거나 타국에 지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서는 이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누구와 무역해야 하는지, 투자는 누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 얘기하겠다고 한다. 베네수엘라한테는 정권 전복 의지마저 시사하고 있다.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 뒤 곧바로 일부 지역은 개입하겠다며 말을 뒤집는 셈이다.”

월트 교수는 “우려 대상이라는 게 분명한 중국을 대놓고 언급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며 “일부 전략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게 명백한데도 중국을 직접 거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짚었다. 실제 이번 NSS는 중국을 ‘비(非)서반구 경쟁국’이나 ‘잠재적 적대 세력’ 따위로 에둘러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교적인 수사법인가. 아니면 중국을 상대할 자신이 없는 것일까.

“그보다는 아직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이 올바른 대(對)중국 접근 방식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곧장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재개한 것은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약소국 다루듯 중국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전열 정비에 들어간 배경이다. 중국을 경쟁자로 봐야 하는지 트럼프가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도 이유다. 그가 중국과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야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에게 외교는 개인적 거래로 치환된다. 강력한 지도자들 간의 상호 거래를 통해 세계가 운영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세계관이다.


-형제애(brotherhood)와 과두제(oligarchy)가 결합된 형태라는 평가를 봤다.

“한때 내가 ‘거물들의 협연(concert of kingpins)’이라 부르기도 했다. 트럼프의 뇌리에 있는 만물의 작동 방식이다. 복잡한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 책임자와 직접 대화하고 해결하면 그만이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든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이든 에르도안(튀르키예 대통령)이든 모디(인도 총리)든 말이다. 또 하나, 중국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놓고 행정부 내에서도 분열이 존재한다. 중국을 경쟁자로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견제와 영향력 제한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축과 대립하기보다 잘 지내며 이익을 얻는 게 낫다고 보는 축으로 나뉜다. 요컨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정책은 확정되지 못했다. 완전히 혼란스러운 상태라 본다.

-NSS상으로는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억제하려는 의지가 여전해 보인다.

“중국이 미국에 사상 최강의 경쟁자인 것은 사실이다. 옛 소련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고 역량 개발에도 더 진지하다. 그래서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들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외교 정책을 우리 것(대중국 견제)과 맞춰 주기를 바란다. 트럼프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관세 부과다. 관세는 동맹국들의 경제를 제약한다. 국방비 증액 요구와 상충한다. 이것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안보 전략의 모순 중 하나다.

-난맥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이전 미국 행정부는 동맹국들이 잘나가야 미국의 위상도 나아진다고 믿었다. 외교 관계를 우리가 이기고 상대가 지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관계에서 항상 승리자가 되려 한다. 심지어 친구한테도 이익을 최대한 많이 챙겨야 한다고 여긴다. 이 원칙은 동맹국과 적대국에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미국)는 우리의 지위를 이용해 모두에게서 비대칭적 이익을 얻고자 한다. ‘약탈적 패권국’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냉전 종식 뒤 사실상 단극(單極)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의 힘이 막강했는데도 많은 나라가 미국의 반대편에 서기보다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 편입되기를 바란 것은 미국이 자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월트 교수는 설명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탈로 상황이 변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간 국제 질서를 사실상 홀로 지탱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횡포를 일삼는 평범한 최강국으로 전락한 듯하다. 이렇게 만든 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아닌가 싶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운동이 트럼프의 세계관을 반영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다. 아주 민족적이고, 외국의 영향력에 아주 회의적이며, 경제 정책은 중상주의적(mercantilist)이고, 심하게 약탈적이다. 동맹국들이 우리를 뜯어먹으려 하니 우리도 그들을 뜯어먹어야 한다는 게 트럼프가 인간 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다. 그의 세계에는 강자 아니면 약자, 승자 아니면 패자뿐이다. 거래에서 이기거나 바보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누구도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한 번 대통령을 경험하고 재집권에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자기 본능을 과신하게 됐고 이번에는 충성파만 기용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원하는 게 미국이 해야 할 일(정책)로 거의 고스란히 옮겨 갔다.”

NSS도 마찬가지다. 월트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안보가 기독교 문명이나 백인 정체성과 얽혀 있다고 보는 시각이 국가 전략 문서에 투영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2기 NSS는 미국이 세계 비(非)백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트 교수는 “우리가 그들(이민자) 정체성을 우리식으로 바꾼다는 게 전통적인 미국의 이민관(觀)이었는데, 트럼프식 반(反)이민 관점은 거꾸로 그들이 우리 정체성을 바꾼다고 믿는다”며 “이런 신념이 토대인 이번 NSS는 적대국, 경제적 경쟁자, 핵무기, 위험한 사상 등 모든 것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16일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지난달 16일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신뢰 상실한 미국


-미국은 이익의 화신이 돼 버렸고 이제 충분히 위협적이다. 동맹 네트워크가 유지될까.

“트럼프는 모든 국가와의 개별 협상을 원한다. 그러면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유럽을 쪼개 각국과 개별 협상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각 동맹국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약속을 받았으니 관세가 지렛대 노릇을 제대로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맹국은 약속을 이행할 마음이 없다. 일본과 한국 모두 미국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0년 뒤 그 돈이 정말 들어와 있다면 나는 놀랄 것이다. 각국과 개별 협정을 체결하면 관리해야 할 협정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실제 이행되는지 감시하기도 힘들다. 당장 ‘네’라 말한 뒤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거짓 약속을 남발하는) 자녀를 상대하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면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보나.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뢰 관계를 재건하기 힘들다. 우리는 트럼프를 다시 뽑은 나라다. 정상적인 대통령이 돌아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동맹국들이 기대하게 만들기 어렵다. 미국의 약속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 낮아졌다.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놓고 1년 뒤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과 거래하는 게 유리하지만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다른 나라들과 거래할 거예요.’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때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예측 가능한 방안을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다.


동맹국들의 도움이 없는 중국 억제는 미국에도 버겁다. 잠재적 아시아(인도·태평양) 지역 패권국인 중국의 부상은 균형 붕괴의 위협을 느낀 역내 국가들의 견제 협력으로 이어졌다. 월트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균형 연합(balancing coalition)’의 형성이다. “미국은 이 연합의 강화·관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의 동맹들에는 오히려 중국이 더 신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파트너로 여겨질지 모른다.

“중국이 열망하는 것은 지역(아시아) 전체를 정복해 제국처럼 통치하는 게 아니다. 지배적 세력(dominant power)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역내 국가들이 자국 눈치를 보기를 바란다. 아시아 각국은 매일 중국을 화나게 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중국 세력권(Chinese sphere)’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권과 독립성, 자율성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경제 착취 관계도 만들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추구해야 하는 전략이 ‘역외 균형’이라는 게 월트 교수 제언이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에 중앙 권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하고 신뢰는 희소한 자원이다. 해당 시각에서 예외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정책은 틀렸다. △민주주의 확산 △세계화 촉진 △국제기구 구축 등이 평화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현실주의자들은 본다. 오히려 그런 시도가 일종의 위협으로 작용하며 반동을 초래할 수 있다.

관건은 세력 균형 여부다. 월트 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특정 지역에서 자국에 유리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이 그런 지역에 해당한다. 미국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거나 패권국이 등장할 수 있는 곳이다. 그가 보기에 특히 아시아가 위험하다. 유럽은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도 크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중동의 경우 지역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잠재 패권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월트 교수 얘기다. 그러나 아시아에는 중국이 있다.

-미국의 아시아 개입 목적이 평화 유지나 역내 국가 보호만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 중국의 아시아 패권 장악은 미국에도 손해다. 미국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정학적 조건이다. 큰 바다에 둘러싸인 서반구에 위치한 덕에 주변에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자체를 방어할 필요가 없다. 이는 지금껏 미국이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지역에 개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북한, 파키스탄, 인도, 러시아 등 4개 핵무기 보유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하게 될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자국 방어 부담을 덜고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여유가 생긴다. (미국의 세력권인) 서반구에도 그 영향력이 미칠 게 분명하다.”

-아시아 동맹국을 상대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 확대 요구가 역외 균형 전략 일환 아닌가.

“그들을 붙잡아 둬야 하는 상황에 관세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는 미국과 멀다. 동맹국의 조력이 필요하다. 다만 분업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 즉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이 무엇을 하고 미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나누는 것은 외교적 과제다.”

지난달 1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 책장 앞에 서 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지난달 1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연구실 책장 앞에 서 있다. 케임브리지=권경성 특파원


“한국이여, 헤지하라”


-트럼프 2기 NSS에서 인상적인 문장 중 하나가 “더 크고 부유하며 강한 국가들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 국제 관계의 진리다”였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서로 세력권을 추인하고 영역을 분점했던 19세기 국제 역학의 부활을 미국이 주도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NSS를 보면 서반구가 미국의 세력권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이 암시돼 있다. 세력권은 현실이다. 미국은 아프리카보다 서반구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리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서유럽보다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더 강하다. 자국 주변을 세력권으로 삼는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게 강대국들이 각자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일단 물리적으로 영역 간 차단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경제가 글로벌화한지 오래다. 미국도 중국도 전 세계와 교역한다.”

월트 교수가 세력권 분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마지막 이유는 미국의 ‘견제 본능’이다. 그는 “적어도 1900년 이후 125년간 미국 외교 정책의 핵심 원칙은 어떤 단일 국가가 유럽이나 아시아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었다”며 “어떤 지역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세력이 없다면 미국은 굳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누군가 그렇게 할 것처럼 보일 때, 예컨대 중국이 아시아에서 그럴 것처럼 예상될 때, 과거 1, 2차 세계대전 때 그랬던 것처럼, 냉전 시절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세력 균형과 안보 이익을 위해 이를 가로막으려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계속 성장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까.

“알다시피 나는 현실주의자다. 주요 강대국들은 항상 서로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 간 동맹은 대개 특정 시점 이익 및 처지에 조응하는 ‘편의 동맹(alliances of convenience)’이라 믿는다.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가 말했듯 강대국이 셋인 세계에서 그들의 목표는 둘 중 하나가 돼 나머지 하나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냉전 시절 미국은 옛 소련에 맞서 중국을 끌어들였다.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소외시키고 있다. 순수한 현실주의 지정학 관점에서 볼 때 미러 협력은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실제 정치를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 푸틴이 예상보다 협조적이지 않은 데다 트럼프 입장에서도 푸틴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 면에서 불리하다. 기존 서방 동맹들과 틀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6년 2월이면 4년을 채우게 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간 가자지구 전쟁 역시 2년을 넘겼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어느 분쟁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중동 전쟁의 경우 팔레스타인인들이 여전히 국가를 갖지 못했다는 게 근본적 문제다. 한 지역에 750만 명 안팎의 이스라엘 유대인과 그 정도 규모에 육박하는 팔레스타인인이 공존하고 있는데, 한 집단이 통치하고 나머지 집단에는 권리도 정치적 대표성도 없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가가 없는 한 분쟁이 계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내년(2026년)에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휴전이 성사돼도 러시아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우크라이나는 잃은 것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중국과 이란 등은 러시아를 각각 지지하는 일종의 ‘동결된 분쟁(frozen conflict)’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자신이 8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포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실제 해결하는 것에는 서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장 1년 이내에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대만해협을 건너 상륙하는) 군사 작전 자체의 난도가 높다. 실전 연습도 어렵다. 중국군은 40, 50년간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위험 부담이 크다. 더욱이 대만은 물론 미국, 일본, 한국, 호주 등 주변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오판을 낳을 수 있다. 1972년 이후 미국의 입장은 항상 모호했다. 하지만 물론 미국은 대만을 위해 싸울 것이다. 정치인들의 적극적 발언은 의도된 모호성의 보완 기제였다. 트럼프 진영은 정반대 신호를 보낸다. 선명한 듯하지만 소극적이고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글쎄, 우리가 할지도 모르지(well, we might)’ 식이다.”

월트 교수는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무엇을 해라 마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역량이 갈수록 고도화하는 현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핵무기 확보 가능성은 한국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말하는 것과 실제 추진하는 것은 다르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 착수 정황이 확실해지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경제 제재 따위를 동원해 한국에 포기하라는 압력을 가할 게 분명하고, 그런 만큼 정말 추진할 요량이면 위험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지렛대 삼아 가해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적 불이익 강요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따지자면 경제보다 안보가 우선이라 믿는다. 아무리 부유해도 정복되거나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은 경제적 유대 관계를 최대한 다각화해야 한다. 해외 무역의 40%를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가 정책을 바꾸거나 더 협력하려 하지 않을 때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소 비용이 더 들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선택이라도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한국이라면 최대한 무역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이제 충분히 역량 있는 산업 강국이다. 다른 나라들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신속히 적응할 수도 있다. 호주나 일본과 협력해 미국과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제공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제공


◆스티븐 M 월트 교수는

가장 저명한 국제정치학 분야 석학이다. 1955년 7월 2일 미국 뉴멕시코주 태생으로 미 스탠퍼드대에서 국제정치학 학사를,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시카고대에서 강의했다. 2005년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AAS) 회원으로 선출됐고, 2015년부터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로버트·르네 벨퍼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하버드대 학술지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 편집위원회 공동 의장이기도 하다.

강대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재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는 방어적 현실주의 이론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87년 저서 ‘동맹의 기원(The Origins of Alliances)’을 통해 최강국이 아닌 최대 위협을 가하는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동맹이 형성된다는 ‘위협 균형(balance of threat)’ 이론을 내놨다. 2018년 펴낸 ‘선의의 지옥(The Hell of Good Intentions·한국에서는 2021년 ‘미국 외교의 대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등 요충지에서 역내 동맹국을 활용해 패권국의 부상을 막는 ‘역외 균형’ 전략을 미국이 채택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 정책(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2007)’을 쓰기도 했다.

케임브리지(미국 매사추세츠주)=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