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공기가 차가워져 옷깃을 여미게 될 즈음, 당일치기로 경북 영양에 다녀왔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기획한 북토크 장소가 ‘육지 속의 섬’이라는 영양이었다.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의 저자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임정은 선임연구원의 강연과 함께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금자리를 견학하는 일정. 왕복 이동 시간만 10시간 이상이 예상됐지만, 책을 읽고 그 무모한 기획의 마음이 읽혀 내 마음도 동했다.
서울 사당역 인근 주차장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경상도에 진입해 의성과 청송을 지나 영양에 이르는 동안, 창밖으로 검은 산자락이 이어졌다. 지난봄 산불의 흔적이었다. 산불 진화 보도와 함께 관심에서 벗어난 산불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영양에 들어서서야 왜 이곳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자리 잡았는지 실감했다. 내륙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 영양은 더없이 맑고 청정했다.
보전생물학자이자 국내 유일의 ‘현장’ 호랑이 연구자로 알려진 임 연구원은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가 인기를 끌면서, ‘진짜’ 호랑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덕분이다. 이는 호랑이를 매개로 야생동물 보전,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서울 사당역 인근 주차장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경상도에 진입해 의성과 청송을 지나 영양에 이르는 동안, 창밖으로 검은 산자락이 이어졌다. 지난봄 산불의 흔적이었다. 산불 진화 보도와 함께 관심에서 벗어난 산불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영양에 들어서서야 왜 이곳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자리 잡았는지 실감했다. 내륙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 영양은 더없이 맑고 청정했다.
보전생물학자이자 국내 유일의 ‘현장’ 호랑이 연구자로 알려진 임 연구원은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가 인기를 끌면서, ‘진짜’ 호랑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덕분이다. 이는 호랑이를 매개로 야생동물 보전,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호랑이는 최상위 포식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문화 속에서 용맹스럽고, 때로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함께해왔다. 하지만 현실의 호랑이는 무분별한 포획과 사살, 전쟁과 국토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 그리고 환경오염의 연쇄작용 속에서 더는 이 땅을 누빌 수 없게 됐다.
임 연구원은 호랑이를 다시 이 땅에 데려와 살게 하는 ‘복원’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최소존속가능개체군, 서식 환경, 먹이원, 은신처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미 서식 환경은 도시화와 도로 건설 등의 영향으로 파편화됐다. 설령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내가 사는 동네 뒷산에 호랑이를 방사한다는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이가 얼마나 될까. 다만 임 연구원은 시베리아에 사는 호랑이가 생태 통로를 따라 백두산을 거쳐 우리 땅으로 나들이를 올 수 있을 만큼은 꿈꿔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생태계 위기는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냉소 섞인 인식 속에서도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지키고자 오지와 정글을 오가는 연구자의 이야기엔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끝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길고양이 민원만으로도 주민센터가 골머리를 앓는 현실에서 야생동물의 복원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보전생물학자의 목소리는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같은 키워드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왜 당장 내게 닥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연구원들조차 “우리는 어쩌면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한 그는 오늘날 인간이 자연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시간을 당겨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종의 소멸이 당장에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균열은 시간이 지나 결국 인간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도 인간의 이기로 망가진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자는 이야기를 여전히 ‘설득’해야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일회용기 대신 텀블러를 쓰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드는 개인의 실천은 거대한 산업 폐기물 앞에서 쉽게 무력해 보인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날 거뭇하게 그을린 산자락에서 잿더미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았다. 이름 모를 생명들이 그곳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숨을 되살리고 있었다.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새해 첫머리, 딴 세상 같았던 영양에서 딴 세상일로 넘겨선 안 될 것들을 꼽아보았던 그날의 감각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어떤 시간의 감각으로 다시 한 해를 맞이하고 살아내면 좋을지. 더 많이 이루고, 더 빨리 도달하기 위한 계획들로 가득했던 머릿속을 비운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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