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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뉴스타파] 철탑 위에 아직, 사람이 있다...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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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뉴스타파] 철탑 위에 아직, 사람이 있다...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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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6차선 도로 위에 설치된 10여 미터 높이의 지하차도 진입 차단 시설물.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의 매연과 소음, 진동이 가득한 그곳에서 300일 넘게 머물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한 명도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비좁은 공간에서 벌써 두 번째 겨울을 견디고 있는 사람,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씨입니다.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지부장(전 세종호텔 일식 요리사)



비가 오던 지난 12월 23일, 서울 명동 6차선 도로 위 지하차도 진입차단 시설물에서 314일 째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지부장


고진수 씨는 세종호텔에서 20년간 일했던 일식 요리사이자, 민주노총 산하 세종호텔 노조의 지부장입니다. 그는 복수노조 사업장인 세종호텔에서 소수 노조를 이끌며, 십수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호텔의 일자리 외주화 방침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코로나19 시기이던 2021년 12월,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고 지부장과 함께 노조 활동을 했던 조합원 12명도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호텔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들었으나, 공교롭게도 회사에 쓴소리했던 노조원들만 해고되었습니다. 고 씨가 이를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표적 해고”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정리해고 철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조합원 12명이 시작한 복직 투쟁은 생계 등의 이유로 현재 6명이 남아 4년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고 지부장의 고공농성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갑니다.


2021년 12월,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4년 넘게 세종호텔 앞 천막 농성장에서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3월 18일, 그가 고공에 오른 지 34일이 되던 날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고공농성 309일째인 지난 12월 18일, 접 철탑으로 올라가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기사 다시 보기 > [현장 인터뷰]호텔 요리사가 도로 위 10M 고공에서 꾸는 꿈

취재진이 직접 찾은 철탑 위는 생각보다 좁고, 많이 흔들렸습니다. 바람이 불 때도, 큰 트럭이 철탑 밑을 지날 때도, 고 지부장이 머무는 철탑의 바닥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곳에서 사람이 온전하게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고진수 씨는 취재진에게 “고공에서 버티는 하루하루가 점점 더 길고, 힘들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언제쯤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지난 12월 18일, 서울 명동 6차선 도로위 지하차도 진입차단 시설물 안에서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고진수 지부장. 그가 300일 넘게 머물고 있는 고공농성장은 높이 10여 미터, 가로 폭 80센티미터로 생각보다 더 높고, 좁았다. 그는 지난 2월 13일, 자신의 일터였던 세종호텔이 바로 보이는 이 구조물에 올라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윤석열 파면 이전인 지난 3월 1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고 지부장은 “우리 문제보다 윤석열 탄핵이 먼저다. 하루빨리 윤석열이 파면돼 노동자가 고공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세상이 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그는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지 않고, 노동권을 제대로 존중하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당시 탄핵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이 외쳤던 것도 윤석열 탄핵만이 아니었습니다. 평등, 인권, 노동과 같은 가치가 다른 무엇보다 존중받는 사회였습니다. 그런 시민들의 열망이 고진수 지부장이 있는 명동 고공농성장 앞을 가득 채우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윤석열은 감옥으로, 고진수는 땅으로”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윤석열 파면 전이었던 지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명동으로 행진해 고진수 지부장이 있는 세종호텔 앞 고공농성장을 가득 메우고 해고자들의 복직을 함께 촉구했다.


시민들의 연대 속에 고 지부장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날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고공에 머물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북을 치며 명동을 오가는 시민들을 향해 ‘여기, 사람이 있다’를 외칩니다. 영하 10도의 날씨,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올해 마지막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철탑 위에 서서 322번 째 출근 인사를 했습니다.



고진수 지부장이 올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오전 8시,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철제구조물 위에서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322번 째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터로 나가시는 노동자 시민 여러분, 저희는 이곳 세종호텔에서 일하다가 코로나를 핑계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입니다. 10년 전 250명이 정규직으로 일하는 일터가 20명, 정규직에 40명,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없다고 정부가 가만히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이 구조가 과연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그런 사회 맞습니까?”
- 고진수 /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지부장 발언(2025.12.31.)


결국 해를 넘긴 고공농성. 그는 철탑 위에서 매일 세상에 묻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가 노동자의 잘못인가.”

“왜 회사에 맞서 싸웠던 노조의 조합원만 해고했는가.”

“왜 법원은 노조원만 해고된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는가.”

“회사의 경영난은 금세 회복되었는데 왜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가.”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대량 해고를 두고 국가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고진수 씨의 질문에 세종호텔도, 국가도 아직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 날, 뉴스타파가 전해드리는 이야기는 철탑 위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된 고진수 씨의 목소리입니다. [다큐 뉴스타파]‘철탑 위에 아직, 사람이 있다…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편을 통해 고공에서 전하는 한 노동자의 이야기, 그와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뉴스타파 뉴스타파 다큐팀 docu@newsta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