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인 사건'은 범인의 스토킹 행위에서 비롯됐다. 범인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여성 A씨를 수개월간 스토킹했고 A씨와 A씨의 어머니, 여동생까지 살해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스토킹 범죄는 2022년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5년 여성폭력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입건 건수 기준 지난해 1만3533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 1만2048건 대비 12.3% 증가했다. 2022년 1만545건과 비교하면 2년 동안 28.3%(2988건) 늘었다.
3년마다 공표되는 여성폭력 통계는 2022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발표다.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등 여성폭력에 대한 실태조사와 중앙행정기관의 행정통계·내부통계 등 수집 가능한 자료를 종합해 작성한다. 이번 자료에는 2021년 10월 스토킹처벌법 제정·시행을 계기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통계를 수집·산출하는 것이 가능해져 스토킹 범죄 관련 통계가 처음으로 포함됐다.
여성 스토킹 범죄자 비중도 커졌다. 2022년 18.8%로 집계된 여성 스토킹 범죄자는 지난해 23.8%까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의 급증세가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제도 강화로 수사기관이 적극 개입한 결과가 수치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채권 추심이나 층간소음 등 단순 분쟁까지 스토킹으로 집계되거나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통계상 범죄 양상이 실제 위험도와 다르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입건 수치 증가에 대해 "과거에는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면 현장에서 종결됐지만,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서 경찰이 의무적으로 입건할 수밖에 없게 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채권추심 등 생활 분쟁으로 인한 스토킹과 '교제 살인 전조'로서의 스토킹은 위험의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 수치 증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성별과 피해자 관계를 교차 분석해 실제 고위험군 범죄를 발라낼 수 있는 정교한 통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25년 여성폭력 통계에는 범죄자와 피해자 간 관계를 세분화한 범죄 통계를 활용해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치사·폭력에 대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도 최초로 집계됐다. 성평등가족부는 "친밀한 관계는 전·현 배우자 및 전·현 애인 관계"라며 "정부 국정과제를 통해 교제폭력 범죄 동향 분석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진 폭력 가운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검거 인원 수 기준)은 2023년 6만2692명에서 지난해 5만7973명으로 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폭행·상해가 58.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스토킹과 협박·공갈이 각각 11.2%, 10.1%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 관계가 배우자, 교제 관계인 경우는 각각 61.7%, 38.3%로 조사됐다. 배우자 사이에서 발생한 범죄는 폭행·상해가 75.5%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고, 교제 관계에서는 디지털 성폭력이 94.6%로 비중이 컸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이 같은 관계에서 '흉악 범죄'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치사 범죄는 검거 인원 수 기준 지난해 219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205명 대비 6.8% 증가했다. 전·현 배우자 또는 교제 관계에서 상대방을 살해하거나 폭행·상해 등으로 상대방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는 늘어난 셈이다.
성평등가족부는 "치사 범죄에서 (가해자 중) 배우자 비율이 75.0%로 가장 높다"며 "지속되는 가정폭력이나 신체 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는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기준 만 20세 이상 아동·청소년 10만명당 성폭력 범죄는 178.7건으로 전년 165.2건 대비 8.2% 늘었다. 범죄자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 36.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기타 아는 사람은 각각 29.3%, 20.8%로 나타났다.
[정석환 기자 /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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