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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의 그림자···노인 장발장, 3년새 47% 늘었다

서울경제 황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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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의 그림자···노인 장발장, 3년새 4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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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이상 절도 1.6만명 넘어
인구 증가 속도보다 3배나 빨라
대도시서 청소년 역전현상 뚜렷
고물가·무인화 겹친 구조적 위기
"현장 밀착형 복지체계 구축해야"
방황하는 청소년의 상징이었던 절도 범죄 현장에서 70대 이상 초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 빈곤 문제가 심각한 농촌 지역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처럼 물가 압력이 높고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된 대도시에서도 ‘범죄의 노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전국 71세 이상 절도범은 1만 6223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1만 1035명과 비교하면 불과 3년 만에 47.0% 폭증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속도다. 통계청 주민등록인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70대 이상 인구 증가율은 약 13.9% 수준이었다. 고령층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이들이 절도 범죄로 유입되는 속도가 약 3배 이상 빠른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오랜 시간 절도 범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청소년층과의 통계적 격차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청소년(20세 미만) 절도 검거 인원은 2021년 1만 4721명에서 지난해 1만 6948명으로 1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절도 검거 인원 증가율(15.4%)과 유사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준 초고령층과 청소년층 사이의 격차는 전국에서 불과 725명 차이로 좁혀졌다.

전국적인 증가세 속에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범죄의 주축이 노년층으로 넘어간 역전 현상이 뚜렷하다. 지난해 서울경찰청의 71세 이상 절도범(4170명) 검거는 청소년(2390명)보다 1.7배 많았다. 부산(1.5배)과 대구(1.3배) 역시 초고령층 검거 인원이 청소년을 앞질렀다. 고령화가 뿌리 깊은 농어촌 지역에서도 초고령층 절도 범죄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경북청의 71세 이상 절도 검거는 2021년 405명에서 지난해 624명으로 54.1%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남청(46.9%)과 충남청(45.1%)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됐다.

치안 현장에서는 치솟는 물가와 고착화된 빈곤 문제가 초고령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노년층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 수는 110만 명으로 집계돼 2020년 72만 4000명 대비 51.9% 늘었다. 현장에서 포착되는 고령층 절도 역시 대부분 생계를 위한 소액 물건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의 한 마트에서 78세 노인이 단팥빵 2개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대표적이다. 10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아온 이 노인은 아내와 단둘이 지내오며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은 새로운 소비 환경과 맞물려 더욱 빈번하게 범죄로 연결되고 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늘어난 무인 상점도 노년 범죄 급증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무인 상점 절도 발생 비중은 5.9%를 기록해 대형 할인점(5.5%)보다도 많았다. 서울 한 일선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은 “보는 눈이 없다는 무인 점포의 환경적 특성이 고령 빈곤층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범죄 문턱을 낮추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 기계 조작에 서툰 고령층이 결제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로 물건을 가져가는 ‘비의도적 절도’ 역시 적지 않게 관찰된다.


전문가들은 인구구조 변화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대도시 초고령층이 범죄의 유혹에 가장 먼저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가족과 공동체라는 일차적 안전망이 해체된 자리를 취약한 국가 소득 보장 체계가 메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허점이 결국 고령 빈곤층을 범죄라는 막다른 길로 내모는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채 의원은 “인구구조 변화 속도를 추월한 고령층 범죄 폭증은 우리 사회 안전망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라며 “단순 검거 위주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연계된 현장 밀착형 복지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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