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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굽이치는 세상 속에서 … 당신을 지켜주는 문장들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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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굽이치는 세상 속에서 … 당신을 지켜주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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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강서NC점에 소개된 매일경제·예스24 공동 선정 '2025 책말정산' 매대 모습.  이승환 기자

예스24 강서NC점에 소개된 매일경제·예스24 공동 선정 '2025 책말정산' 매대 모습. 이승환 기자


우리가 잘 아는 단어인 '유토피아'는 시간이나 구획된 공간이란 게 없는, 그러니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뜻한다. 유토피아는 지극히 이상적이어서 누구에게나 감미롭게 느껴지지만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인간 정신의 담장 밖에서만 상상될 수 있다. 반면 철학자 미셸 푸코는 유토피아와는 다른 개념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역설한 바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실재하지만 이상을 왜곡하는 공간'이다. 헤테로토피아에 속한 개인은 '나'를 다른 위치에 놓을 수 있게 된다. 그곳에서 개인은 자신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야 만다.

헤테로토피아가 실재하는 사례로, 푸코는 일상생활의 공간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도서관이다. 왜 그런가? 도서관은 고대 텍스트부터 동시대에 출간된 저서가 질서 정연하게 놓인 '실재' 장소이며 그곳에 놓인 책들은 독자 자신과 세계의 내부를 '의심'하게 만든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긍정적 공간으로만 바라보진 않았지만 사유를 넓혀 생각해보면 한 권의 책이야 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헤테로토피아로 기능할 수 있다.

매일경제신문과 예스24는 2025년 한 해 동안 출간된 책 가운데 세밑과 세초에 다시 펼쳐 볼 가치가 높은 책 24권을 선정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매일경제신문 출판면에서 다뤄진 신간 서적들과 예스24 MD의 추천 서적을 100권씩 수합한 뒤 책의 파급력, 판매량 등을 종합해 24권을 목록화했다.

올해 5개 분야로 이뤄진 '책말정산'의 키워드는 '미래에서 온 윙크' '거대한 질서의 축' '내 안의 또 다른 나' '문학의 벤치에 앉다' '삶을 포옹하는 말들'이다.

① 미래에서 온 윙크

경제경영서를 중심으로 구성한 '미래에서 온 윙크' 부문에선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의 공식 자서전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와 빌 게이츠의 첫 번째 회고록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이 선정됐다. 전기 작가 스티븐 위트는 그의 요청을 받은 뒤 엔비디아 안팎의 인물 300명을 인터뷰해 '칩 제국의 황제'가 된 젠슨 황의 자서전을 써냈다. 빌 게이츠는 이번 책에서 소년 시절 이후를 회고하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2025년 국내 작가가 쓴 저서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성취를 이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바둑계는 AI를 먼저 경험한 분야이며, 향후 모든 분야에 바둑계가 AI로 인해 느낀 충격이 다가오리란 서늘한 진단도 저자는 함께 내린다. 전호겸의 '강제 구독의 시대'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독경제에 스스로 편입돼버린 건 아닌지를 냉정하게 질문한다.


② 거대한 질서의 축

인문서와 사회과학서를 모은 '거대한 질서의 축' 부문에 선정된 피터 터친의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왜 사회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빠지는지를 수백 년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피터 싱어의 '빈곤 해방'은 빈곤으로 인한 세계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을 윤리적 실천의 측면에서 모색해 주목을 받았다.

파리드 자카리아의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는 인류사에서 진행 중인 세계화 혁명, 정보화 혁명 등 4개의 혁명을 돌아본다. 베티나 슈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해나 아렌트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에 반기를 드는 명작이다. 노한동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은 '가짜 노동'과 공직사회 내부의 무기력, 책임회피를 고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③ 내 안의 또 다른 나

AI 관련 저서와 자기계발서를 모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부문에 선정된 이선 몰릭의 '듀얼 브레인'은 현대인 삶에 깊숙이 침투한 AI라는 '동료'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질문한다.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는 인간의 선택을 대신 제안하는 AI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되짚어 독자들의 너른 주목을 받았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은 기술의 발전으로 '최적화된 선택지'만 남은 환경 속에서 인간의 경험과 공공의 감각이 사라져 감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세스 고딘의 전략 수업'은 마케팅 구루로 유명한 저자의 책으로 삶과 비즈니스에서 '전략'이란 접근법을 어떻게 접목할지를 돌아본다.

④ 문학의 벤치에 앉다


'문학의 벤치에 앉다' 부문에는 성해나의 '혼모노',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구병모의 '절창'이 절대적인 지지 속에 뽑혔다. 소설집 '혼모노'는 2024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등 각종 문학상을 석권했던 작가의 대표 단편소설을 표제작 삼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감정의 딜레마적 물음을 각 소설에서 펼쳐보인 책이다.

'절창' 역시 올해 가장 많은 한국 독자를 만난 작품으로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의 생각을 말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맨사 하비의 '궤도'는 2024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6명의 우주비행사가 하루 16번의 일출과, 16번의 일몰을 경험하는 서정적 서사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는 2018년 출간 저서임에도 저자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동시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정대건의 '급류'도 시간을 거슬러 역주행한 소설로, 한 번 휘감기면 벗어날 수 없는 급류와 같은 인간 감정을 적확하게 포착했다.

⑤ 삶을 포옹하는 말들

'삶을 포옹하는 말들' 부문에선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이 선정됐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문 '빛과 실'을 포함해 시와 산문, 사진을 한 권으로 엮었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은 삶의 여정에서 마주친 풍경을 펼쳐냈다. 김범석의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는 죽음에 대한 통찰을 담은 저서로 죽음은 예측 가능한 직선이 아닌, 급격히 무너지는 임계점의 문제임을 간파해낸다.

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은 세계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전 매그새먼·아이비 로스의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미술관을 걷는 일이 단지 지친 마음의 위로가 아닌 뇌를 실제로 회복시키는 일임을 차분하게 증언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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