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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쿠팡엔 왜 미운털이 박혔나

조선비즈 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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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쿠팡엔 왜 미운털이 박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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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 쿠팡 대표 "산재 승인 취소 소송·감사청구, 법적인 권리 존재"


쿠팡은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플랫폼 회사의 본질을 잘 파악한 회사다. 다른 이커머스 회사들이 투자받아 할인 쿠폰을 뿌려대며 소비자를 붙잡을 때 쿠팡은 물류에 투자했다. 쿠팡은 쿠폰은 언제든지 뿌릴 수 있지만, 빠른 배송으로 쌓아 올린 편의성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빠른 배송에 따라 소비자들이 모여들자 판매자(셀러)들도 모였다. 매출 규모가 큰 플랫폼을 판매자는 외면하기 어렵다. 판매자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쿠팡이 쿠폰을 뿌리지 않아도 판매자들이 알아서 가격을 내렸다. 불가능해 보일 것만 같던 무료 반품도 가능해졌다. 투자자 설득도 발군이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대규모 투자(약 36억달러)를 받았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경쟁사는 없었다.

그랬던 쿠팡의 최근 모습을 보면 그저 미운털이 박힌 공룡 이커머스 회사일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 감성적인 사람은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고 한국 정부를 무시한 탓이라고 말한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국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 쿠팡의 자리를 내주려는 일종의 여론조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쿠팡에 이렇게 미운털이 박힌 진짜 이유는 한국 시장에서 한국 소비자에게 벌어진 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미국 시장과 투자자만 바라보고 있는 탓이다. 아직도 쿠팡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미국 투자자와의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처음 설명하면서 정보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간 사실에 대한 심각성을 낮추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노출은 정보가 잠시 공개된 상태로서 통제할 수 있지만, 유출은 통제가 불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한국 정부와의 갈등을 불사하면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보상안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미국 현지에서 나오는 집단 소송의 대응책으로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다.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이 자체 조사로 위법 행위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경우, 민·형사 소송과 처벌에서 상당히 유리해진다.


쿠팡이 발표한 보상안도 신뢰 회복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탈퇴한 소비자에게 할인 쿠폰으로 배상하는 것은 쿠팡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사실상의 판촉 행위다. 지급한 쿠폰 5만원 중 4만원은 알럭스(명품)와 쿠팡트래블(여행)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쿠팡이 이런 서비스까지 하는 줄 몰랐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한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미국 투자자와 소통할 때는 ‘쿠팡은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쿠팡은 가장 중요한 것을 경시했다. 미국에서도 기업의 자체 조사가 정부 조사에 반하거나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판단되면 처벌 감경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사법 방해 혐의로 가중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정부 조사와 병행해 자체 조사를 할 때는 조사 범위와 진행 상황에 대해 정부와 적절히 소통해 비협조적이라는 오해를 피해야 한다.

이는 미국 법무부 가이드라인의 일환이자 미국 내 저명한 위기관리 전문가들의 권고 사항이다. 한국과 미국이 아무리 법체계와 국민 정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본질은 같은데, 쿠팡은 이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쿠팡은 ‘사건을 잘 추스르고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 입장에선 1조원대 규모의 보상안을 발표한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더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다른 기업들엔 왜 돌을 던지지 않느냐고도 물을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있는 그대로 사건을 알리고 정부 합동 조사에 충실히 나서서 결과를 받아들인 다음, 할인 쿠폰 보상이 아닌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배상에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조사 결과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범죄학적으로 보면 이미 사건 현장이 훼손된 셈인 탓이다. 할인쿠폰으로 구성된 1조원대 보상액에 대한 악화한 여론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와중에 확실한 건 두 가지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대응하면 안 됐다는 점, 그리고 미국에서는 징벌적 배상 등의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커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위기관리의 원칙과 본질을 잊은 기업 사례 하나가 더 추가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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