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역 한강지역주택조합 사업지 광역 조감도./노들역 한강지역주택조합 |
#. 지하철 9호선 노들역 5번출구를 나서면 맞은편으로 천막이 미처 가리지 못한 붉은 X자 표시와 깨진 유리창이 보인다. 도심 내 흉물스러운 풍경을 연출한 이 곳은 서울 동작구 본동 402-1번지 일대 노들역 한강지역주택조합 사업지다.
2만1000㎡ 부지를 활용하는 이 사업장은 2020년 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인 한강 조망 주거단지로 기대를 모았다. 토지 확보율이 95%에 이르며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지만 2022년 말 불거진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변곡점이 됐다. 부동산 금융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브릿지론 차환이 끊겼고 사업은 한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금융권 시선은 냉랭했다. 고금리 기조 속에서 리스크 회피 심리가 커지자 다수의 금융기관은 사실상 회생 가능성이 낮은 사업장으로 보고 투자를 꺼렸다. 철거 흔적만 남은 사업지는 노들역 앞 도심 한복판에서 2년 넘게 방치됐다.
사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키움증권이 나서면서다. 키움증권은 자금 공급자가 아닌 '구조 설계자'로 역할을 한다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채권자들로부터 미납 이자를 탕감하고 원금을 분할상환 받겠다는 동의를 끌어냈다. 조합에는 상가 수익을 선반영하는 방식으로 초기 부담을 공유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키움증권 구조화금융3본부 12명의 발품이 밑거름이 됐다. 이들은 채권자 30여개 기관을 수십차례 접촉했고 주무관청인 동작구청을 찾아가 사업 재개 계획을 설명하는 등 협조를 구했다. 국내 주요 시공사를 찾아다니며 시공 참여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한 조합원들도 지난 4월 조합총회를 통해 자금조달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후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신용보강을 기반으로 키움증권은 이후 약 1600억원 규모의 긴급자금 수혈을 마치고 토지 잔금 지급을 마무리했고 토지소유권에 대한 인허가 요건이 갖춰지자 지난 9월30일 주택건설사업 승인도 받았다. 여기에 지난 11월28일 키움증권 3500억원, 한국투자증권 1000억원, 삼성증권 1000억원을 태운 55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담은 본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약정을 체결하면서 금융 불확실성을 말끔히 해소했다. 시공사는 포스코이앤씨로 정해졌다.
한강지역주택조합 관계자는 "파산하면 2000억원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어떤 금융사도 나서지 않아 막막했다"며 "키움증권의 참여는 벼랑 끝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노들역 일대 한강 조망을 갖춘 836가구 규모의 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착공은 2027년, 준공 목표는 2031년 말이다. 방치된 도심 흉물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변모하게 되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례를 키움증권 부동산 PF 전략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한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부실 자산을 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이 차별화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복잡하게 꼬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구조적으로 풀어낸 보기 드문 사례"라며 "멈춰 선 다른 사업장에도 참고가 될 만한 선례"라고 말했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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