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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낯선 피부색의 리더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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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낯선 피부색의 리더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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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유치원, 초등학교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연히 낯선 느낌의 이름을 들을 때가 있다. 중국에서 온 유치원 친구, 유럽에서 온 어린이집의 한 살 언니, 아버지가 캄보디아인인 급우,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동네 친구까지. 돌이켜보면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우리 아이 주변에 적어도 1~2명은 이름이 낯설거나, 생김새가 낯설거나, 두 가지 모두인 친구가 존재했다. 물론 이런 ‘낯섦’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이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평범한 친구들일 뿐이다.

어린 시절 길에서 외국인 아이와 잠시 스치는 것조차 신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 그만큼 한국이 글로벌화됐고, 한국땅에서의 삶을 선택한 외국인 가족이 많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자녀를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맡길 정도니 이들이 사실상 한국 사회 일원이 되는 길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함께 학교에 다니며, 같이 수업을 받고, 같은 급식을 먹으며 부대낀 그들은 성인이 되면 비록 이름과 생김새는 조금 다를지언정 어엿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서필웅 국제부 기자

서필웅 국제부 기자

어쩌면 그렇게 자라온 아이들 중 자신이 자라온 한국 사회를 이끌며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한반도를 떠나 해외로 이주한 한국인들도 낯선 땅에서 그곳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자녀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리더가 되곤 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꼽히는 미국에도 상원과 하원 의회에 이런 한국인들이 몇이나 존재한다.

사회구조나 국민 정서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한 언젠가 ‘낯선 이름과 외모의 한국인’이 우리를 이끌겠다고 나설 때가 올 수밖에 없다. 지난달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욕시장 선거의 조란 맘다니처럼 선택을 받는 인물도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함께 어우러지며 한국 사회는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피워낼 수도 있다.

물론, 그만큼 두려움도 앞선다. 맘다니 당선을 둘러싸고 미국에서 벌어졌던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지켜본 영향일 것이다. 대표적인 다인종 사회 국가이자 이미 많은 ‘이방인’들이 사회 리더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뉴욕시장처럼 중요한 위치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여전히 이런 우여곡절을 겪는데 한국은 어떤 저항이 있을까. 아마도 다른 이름과 생김새를 ‘낯섦’으로 인지하는 나 같은 기성세대들은 우리를 이끌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의 반작용이 우리 사회에 꽤 아픈 상처를 낼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의 적응은 이미 시작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희망은 있다. 백여년간 숨 가쁜 세계의 변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선진국으로 도약한 ‘적응의 나라’다운 저력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의 변화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 아이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럴 때 기성세대가 조금 먼저 생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아이들이 자라기 전 한국이 조금 먼저 생각을 바꿔 본다면 미국보다도 더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고, 가능성을 더 먼저 손에 쥘 수도 있지 않을까.

서필웅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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