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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위험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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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위험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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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을 금지한다. 언론과 플랫폼·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이 대상이다. 언론과 시민이 이 법으로 10억 과징금, 5배 징벌적 배상을 부과받는 일이 얼마나 자주 생길지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실제 처벌 가능성이 아니다. 처벌 가능성이 불러올 효과다.

어디까지가 공익을 위한 표현인지, 허위사실로 타인에 손해를 끼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시민이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안전한 행동은 입을 닫는 것이다. 국가 검열 이전에 자기 검열이 자유의 공기를 희박하게 만들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자기 검열 효과를 기대하고 새 규제를 도입했을 것이다. 자기 검열은 부수적 현상이 아닌, 입법 목적이라고 봐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굶주린 짐승과 같다. 권력자의 가슴 깊은 곳에는 자유로운 표현을 통제하려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 늘 도사리고 있다. 권력이 자기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자유로운 표현을 견디는 건 어쩔 수 없어서다. 민주적 가치를 존중해서가 아니다.

역대 정부가 수많은 통제망을 가동했음에도 더 강화·확대하는 입법에 집착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시도는 당연하게도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야당의 저항에 직면해 번번이 좌절됐다.

불법이 아닌 의사표현에 징벌을 가한다는 발상은 다시 생각해봐도 낯설다. 소련 시절 체제 유지를 위해 공공장소마다 붙였다는, 저 유명한 선전 포스터가 떠오른다. ‘수다와 험담은 반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정치 엘리트, 공직자, 기업인과 같은 기득권에 대해 험담할 때 한 번 더 고민하고 주위를 살펴야 하는 세상 말이다.


민주당은 어떻게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민주당 집권, 그리고 내란.

국민의힘이 집권한 상황이라면 그런 시도를 성공시키기 어렵다. 권위주의 유산을 지닌 국민의힘은 민주주의 규범 문제에서는 대체로 방어적이다. 집권 때 언론·표현 통제에 열심이었음에도 그걸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입법은 늘 어려워했다. 민주당이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부도덕한 정권으로 몰아붙이면 자신감을 잃고 물러서곤 했다.

민주화의 정치적 자산을 가진 민주당은 그런 문제로 주저하지 않는다.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서라면 언론통제도 괜찮다는 자기 정당화에 능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언론통제 입법 시도가 상당히 집요했고, 거의 성공할 뻔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내란은 이 같은 양당의 비대칭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민주당은 민주화 자산 위에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킨 정당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쌓았고, 그 결과, 자기 신화화가 더 공고해졌다. 스스로 선이라고 믿는 존재에게 시민사회와 야당의 의견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내란의 늪에서 헤매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집단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악법이라고 외쳐봤자 그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토대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내란 전까지 그 구조는 그럭저럭 유지돼왔다. 그러나 내란 이후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견제 기능을 잃은 야당이라는 위험한 조합이 완성됐다. 이 조합이 국가를 어디로 이끌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우리는 이제 내란이 총칼로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안다. 내란으로 인한 정치세력 간 균형 상실 역시 민주주의를 잠식한다. 혁명은 자기 자식에게 배반당한다고 했다. 내란을 극복했다는 한국이 아직도 내란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이 경구를 되새기게 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이어 언론만 표적으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차 종합특검법도 추진 중이다. 그게 바람직한지를 떠나, 견제와 균형을 잃은 정치적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고삐 풀린 권력과 신뢰 잃은 정당이 펼치는 정치가 민주주의와 우리의 삶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잡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견뎌야 할까.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이대근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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