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
2025년 방송가의 한해는 드라마·예능의 홈런 한방 없이 흘러갔다. 오티티(OTT)에서는 넷플릭스가 ‘폭싹 속았수다’ 등 흥행작을 배출해내며 독주 체제를 더욱 굳혔다.
올해 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두자릿수를 넘긴 작품은 드물었다. 그나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들은 모두 에스비에스(SBS)에 쏠렸다. 지난 1월 한지민, 이준혁 주연의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가 최고 시청률 12%를 기록하며 멜로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자 대표와 남자 비서라는 설정을 통해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비틀었는데, 여자 대표를 다정하게 챙겨주는 남자 비서의 모습이 지금 시대가 바라는 남성상을 판타지처럼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방영한 박형식 주연의 ‘보물섬’은 한 남자의 인생을 건 복수극으로,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설정,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삼박자가 맞아 최고 시청률 15.4%를 기록했다. 판타지 사극 ‘귀궁’도 두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고, 복수 대행극 ‘모범택시 3’도 전작의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반면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은 이렇다 할 흥행작을 배출하지 못한 채 고전했다. 문화방송은 ‘모텔 캘리포니아’ ‘언더커버 하이스쿨’ ‘바니와 오빠들’ ‘노무사 노무진’ ‘메리 킬즈 피플’까지 로맨스, 판타지, 서스펜스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선보였지만 모두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한국방송 또한 ‘킥킥킥킥’ ‘24시 헬스클럽’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등이 모두 1∼3%의 시청률에 그치며 흥행 참패를 맛봤다.
티브이엔(tvN)은 올해에도 ‘폭군의 셰프’ ‘미지의 서울’ ‘태풍상사’ 등을 성공시키며 ‘드라마 명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제이티비시(JTBC)의 경우 연말 방영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으며 화제성을 장악했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 포스터. 티브이엔 제공 |
오티티 영역에서는 올해도 넷플릭스의 독주가 이어졌다. 유명 배우·감독·작가 조합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흥행작을 만들어내고, 이런 성과 덕에 유명 배우·감독·작가의 작품이 넷플릭스로 몰리는 순환구조가 굳어졌다는 분석이다. 연초에는 주지훈, 추영우 주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이 한 병원의 중증외상팀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웹소설·웹툰 원작 드라마로, 현실 고증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통쾌한 서사로 노선을 확실히 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지난 3월에는 아이유, 박보검, 문소리, 박해준 주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1950년대 제주도에서 태어난 애순의 일생을 그린 16부작 드라마로, 광례에서 애순, 애순의 딸 금명으로 3대에 걸쳐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반면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국내 토종 오티티는 ‘대박’ 드라마를 내놓지 못했다. 그나마 티빙은 김유정 주연의 웹툰 원작 드라마 ‘친애하는 엑스(X)’와 간판 연애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 4’로 성과를 냈다. 디즈니플러스는 ‘카지노’를 성공시킨 강윤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드라마 ‘파인’과 전지현, 강동원 주연으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 ‘북극성’을 내놓으며 반전을 노렸으나 판세를 바꿀 만한 흥행작은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순재 빈소에 정부가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편 올해는 배우 이순재, 코미디언 전유성 등 한 분야의 거목과 같던 이들이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코미디 대부’로 불리던 전유성은 지난 9월25일 밤 폐 기흉 악화로 76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던 시절 느리고 무덤덤한 말투로 통찰이 담긴 농담을 던지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같은 달 28일 전유성의 후배 코미디언들은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신관 ‘개그콘서트’ 녹화장에서 노제를 열고, 고인을 웃으며 보내주기 위해 눈물을 참으며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순재는 지난 11월25일 91살 인생을 마무리지었다. 고인은 드라마, 영화, 시트콤, 연극 등 다양한 무대와 장르에서 열연을 펼치며 ‘국민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와 성실함, 연기를 향한 마르지 않는 열정은 후배 배우들에게 깊은 가르침을 남겼다.
올해 연말 방송가에서는 조진웅, 박나래, 조세호 등 연예인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연이어 터지기도 했다. 배우 조진웅은 고등학생 때 저지른 범죄가 한 언론 매체의 보도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난 6일 은퇴를 선언했고, 방송인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논란과 불법 의료 시술 논란에 휩싸이며 이달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방송인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이 제기되며 ‘유 퀴즈 온 더 블럭’(tvN) 등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제3회 핑계고 시상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
그래도 연말에 공개된 ‘제3회 핑계고 시상식’이 사람들에게 큰 웃음과 즐거움을 전하며 2025년을 따뜻하게 마무리해준 점은 위안이었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는 유재석을 중심으로 한 웹예능 토크쇼다. 그해 출연자들을 불러 상을 주고 결산하는 시상식은 틀을 깨고 자유분방한 날것의 재미를 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능 콘텐츠가 된다. 황정민, 이성민, 한지민, 이동욱, 송승헌, 송은이, 지석진, 조혜련, 이광수, 장우영, 화사, 우즈 등 연예인 30여명이 참석한 올해 시상식은 공개 8일 만인 29일 현재 조회수 1100만회를 넘겼다. 나눠주기 시상으로 권위를 잃은 다른 연말 시상식과 비교되면서 신드롬급 인기를 얻고 있다. 시상식 영상에는 “조회수가 말해주잖아. 사람들은 어떤 시상식을 원하는지” “백상이고 뭐고 이게 내 연말 시상식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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