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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팔아 장사했다"... 전 세계 테니스 팬 기만한 역대 4번째 성대결 논란

파이낸셜뉴스 전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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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팔아 장사했다"... 전 세계 테니스 팬 기만한 역대 4번째 성대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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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일제히 "성평등 팔아 장사했다" 폭격
AP "춤, 농담이 들어간 그냥 쇼"
가정폭력 혐의·동일상금 반대 키리오스 섭외도 '아이러니'
변칙룰로 긴장감 크게 떨어뜨려
입장권 가격 무려 116만원


사상 4번째 테니스 남녀 성(性) 대결을 벌인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와 닉 키리오스(호주).뉴시스

사상 4번째 테니스 남녀 성(性) 대결을 벌인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와 닉 키리오스(호주).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역사상 4번째 '성대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흥행을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52년 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성평등을 향한 사회적 메시지도, 치열한 승부의 세계도 없었다. 남은 것은 기괴한 변칙 룰과 고액의 티켓값뿐이었다.

29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열린 닉 키리오스(30·호주)와 아리나 사발렌카(27·벨라루스)의 맞대결은 키리오스의 2-0(6-3 6-3)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외신들은 승패 결과보다 이번 행사의 변질된 의미에 주목하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AP통신은 이날 경기에 대해 "성평등 논쟁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했다"고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경기 도중 언더핸드 서브가 나오고, 선수들이 농담을 주고받거나 춤을 추는 등 진지한 승부라기보다는 관중들이 즐기는 쇼에 가까운 모습이 연출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주최 측이 도입한 '변칙 룰'에서 이미 예견됐다. 사발렌카의 코트를 9% 줄이고, 두 선수 모두 세컨드 서브를 금지하는 규칙은 스포츠의 공정성보다는 인위적인 밸런스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ESPN은 이를 두고 "더 넓은 문화적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이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벌인 쇼"라고 꼬집었다. 티켓 가격이 최대 800달러(약 116만 원)에 달했던 점도 이러한 상업적 비판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닉 키리오스(671위·호주, 오른쪽)가 28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열린 아리나 사발렌카(1위·벨라루스)와 '테니스 성 대결'(Battle Of The Sexes)을 마친 후 대녀 니콜을 안고 있는 사발렌카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키리오스가 사상 4번째로 열린 이번 성 대결에서 2-0(6-3 6-3)으로 승리했다.뉴시스

닉 키리오스(671위·호주, 오른쪽)가 28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열린 아리나 사발렌카(1위·벨라루스)와 '테니스 성 대결'(Battle Of The Sexes)을 마친 후 대녀 니콜을 안고 있는 사발렌카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키리오스가 사상 4번째로 열린 이번 성 대결에서 2-0(6-3 6-3)으로 승리했다.뉴시스


이번 경기는 1973년 보비 리그스-마거릿 코트, 같은 해 빌리 진 킹-리그스, 1992년 지미 코너스-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에 이은 테니스 사상 4번째 공식 성대결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는 1973년 당시 29세였던 킹이 55세의 리그스를 3-0으로 완파한 승부다.

성 대결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지금은 남녀 4대 메이저 대회의 상금격차가 없다. 하지만 남녀 상금 격차와 성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어드밴티지 없는 동등한 조건으로 맞붙어 여성이 승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테니스의 성대결은 그런 시대적 반향을 담고 있었다.


반면, 이번 대결은 긴장감과 명분 모두 떨어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키리오스를 '성대결'의 파트너로 선정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키리오스는 과거 테니스 남녀 동일 상금 지급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2021년에는 전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성평등 이슈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

결국 이번 대회는 '성대결'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차용했음에도, 그 안에 담긴 가치는 계승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BBC 역시 "높은 기대만큼 강렬함은 없었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진행된 비시즌 친선경기처럼 끝났다"고 총평했다.


1973년의 성대결이 '혁명'이었다면, 2024년의 성대결은 철저한 '비즈니스'였다. 두바이의 밤은 화려했지만, 테니스 역사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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