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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불필요한 지출 차단"··· 확장재정 '레드팀' 되나

서울경제 배상윤 기자,박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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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불필요한 지출 차단"··· 확장재정 '레드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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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사무실 첫 출근
"민생·성장에는 과감한 투자"
'재정 건전성 전도사'로 불려
李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 주목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불필요한 지출은 차단해서 없애고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겠다”고 29일 밝혔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확장재정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던 이 후보자가 우리나라 예산을 책임지는 장관 자리에 지명되면서 향후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떤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이 후보자는 이날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 퍼펙트스톰 상태”라며 “고물가와 고환율의 이중고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고 우리 경제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우리 경제의 구조적 이슈로는 △인구 위기 △기후 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소멸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그는 “우리 경제가 모두 알고 있고 오랫동안 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인 위협에 빠지게 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회색 코뿔소는 미국 경제학자 미셸 부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발생 가능성이 높고 예측할 수 있는 사건인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큰 위기를 불러오는 상황을 뜻한다. 우리 경제가 눈에 뻔히 보이는 위기로 떠밀려가지 않도록 적시에 재정을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후보자가 과거 ‘재정 건전성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방만한 예산 지출을 끊임없이 경고해왔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실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이던 2002년 ‘일본 경제의 10년 불황에서 배워야 할 교훈’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핵심 원인으로 실패한 재정정책을 지목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파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등 총수요 관리 정책에만 매몰됐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정작 시급했던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 개혁은 지연되는 진통제 효과에 그쳤다는 것이 당시 집필진의 결론이었다. 이 후보자는 보고서를 통해 “막대한 재정지출이 오히려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을 뒤로 미루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고 분석했다. 재정이 개혁의 동력을 갉아먹었다는 진단은 경기 침체 때마다 습관적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관행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최근 기준이 완화되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에 대해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이 후보자는 과거 철도 등 대규모 국책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중장기 재정 전망을 핵심 변수로 포함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정부는 예타 대상이 되는 총사업비와 국비를 각각 현행 500억 원, 300억 원에서 1000억 원, 500억 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이 대통령과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재정 코드’를 맞출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이 후보자는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대통령의 재정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과 똑같은 이야기로 ‘돈이 돈을 번다’ ‘소득이 소득을 창출한다’는 모순적인 동어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서민에게 예산을 지원하면 돈이 돌아 ‘소비 승수효과’가 발생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반쪽짜리 이야기”라며 각을 세웠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자 스스로도 과거 자기 발언이 족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정부 내에서 ‘레드팀’ 역할을 할지 아니면 ‘변절자’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관료로서 소신을 떠나 정치적 논란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이 후보자의 계엄 옹호 논란과 관련해 “이 후보자의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격렬한 토론을 통해 차이와 견해에 대한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고 견해의 차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명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고 검증 과정에서 국민의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배상윤 기자 prize_yun@sedaily.com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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