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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고발 취하 국정원..."분단서 빚어진 비극" 단순화

중앙일보 심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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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고발 취하 국정원..."분단서 빚어진 비극"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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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우범선씨를 북송하는 모습. 함께 탈북한 김현욱 씨도 이날 송환됐다. 사진 통일부

정부가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우범선씨를 북송하는 모습. 함께 탈북한 김현욱 씨도 이날 송환됐다. 사진 통일부



국가정보원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어부 강제북송 사건으로 기소됐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국정원은 “감찰권 남용과 무리한 법리 적용으로 인한 고발”이라고 밝혔는데,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섣부른 입장 표명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은 이날 “이재명 정부 출범 뒤 국회 정보위원회 요청에 따라 실시한 특별감사와 감찰을 통해 고발 내용이 사실·법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정원은 “(윤석열 정부의) 감찰조사가 특정인을 형사 고발할 목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보이는 등 감찰권 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사건 관계자들의 직무 행위에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사실에 반해 고발 내용을 구성하거나 법리를 무리하게 적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무리한 표적 감찰이었다는 취지다.

앞서 국정원은 2022년 6월 20일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우리 국민 피살 사건과 탈북 어부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서해 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살해되고, 2019년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부 2명을 북한에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가 주된 감찰 대상이었다.

국정원은 같은 달 29일 두 사건에 대한 수사 의뢰를 결정했고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라’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해 7월 6일 검찰에 서 전 실장 등을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서 전 실장 등이 해당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불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는 지난 26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서 전 실장, 박 전 원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지난 2월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가 강제북송 사건 관련해 서 전 실장 등에 대해 징역 10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국정원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국가기관으로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피고발인에 대한 신속한 권리 회복 지원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고발에서 1심 판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면밀한 내부 검토를 거쳐 전 원장 등에 대한 반윤리적인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부당한 고발로 고초를 겪은 서훈 전 실장과 박지원 의원 등 사건 관계자들과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분단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피격 공무원)과 유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판결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입장을 발표한 것은 섣부르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강제북송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히 서 전 실장은 무죄를 선고받은 게 아니다. 선고 유예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나 벌금형에 해당하는 경우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 경과 뒤에는 면소 처리하는 것이지, 무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은 아직 항소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해당 사건들에 대한 수사의 시작점이 국정원의 고발이었는데, 국정원이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 “감찰권 남용·무리한 법리 적용으로 인한 고발이라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한 건 검찰의 공소유지나 항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심 무죄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검이 항소 제기 방침을 진작 발표해야 했는데 아직 없다”며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주 의원은 “대장동 항소 포기 때와 흐름 이 같다”고도 주장했다.

국정원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분단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으로 표현한 것 역시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당시 북한군은 명백한 살해 의도를 갖고 이씨에게 총격을 가했고, 시신까지 불태웠기 때문이다. 엄연히 가해자가 존재하는데 어쩔 수 없는 분단 상황 때문에 일어난 비극 정도로 단순화하는 건 우리 국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안일한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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