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
그동안은 잘 먹고 잘 자기만 하면 됐는데, 월령별 발달 과업이 늘면서 슬슬 교육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다. ‘두뇌 발달 골든타임 놓치지 마세요!’ 알고리즘을 점령한 콘텐츠들이 맞벌이 부모의 불안을 부추긴다. ‘9개월 아기 도서 전집 비교’, ‘발달 느린 아이, 이렇게 놀아주세요’ 정보는 또 어찌나 많은지, 다른 부모들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면서도 우리의 무지 혹은 게으름으로 아이의 발달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출퇴근길 만원 버스에 끼어 검색을 거듭한다.
물론 아주 근거 없는 부추김은 아닐 것이다. 각종 논문이나 연구 자료들 역시 영유아기 두뇌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만 절대적이지는 않은 만큼, 대단한 장난감도 수업도 사실 상당 부분은 부모 만족에 가깝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어김없이 휘둘리고야 만다. 내 아이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양육자로서의 책임감, 맞벌이 부모로서의 죄책감, 다 맞지만, 불현듯 깨달았다. 결국 스스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단 아이를 키우는 일뿐만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일, 그 밖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이대로라면 아이가 커 나가면서 끊임없이 밀어닥칠 선택의 파도에서 몸도 마음도, 심지어는 통장 잔액도 성치 않을 것이 자명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아는 것’이었다. 경험이 쌓여야 취향이 생기듯, 지식이 쌓여야 기준이 생긴다. 하다못해 주식 투자를 해도 아는 게 없으면 남들이 좋다고 할 때마다 솔깃하기 마련이다. 공부를 해서 지식이 쌓이면 자기 확신이 생기고 그 확신이 기준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영유아 교육 관련 도서를 잔뜩 빌려 왔다.
“엄마 나 어릴 때 책 많이 읽어 줬어?” 애 셋을 키우면서 그런 여유가 있었을 리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경험치로 안다. 책을 많이 읽어 주거나 읽히면서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요즘 말로 ‘책 육아’라고 한다. ‘책 육아’ 없이도 나는 책을 끼고 사는 아이로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지나가는 말로 읽고 싶다 했던 책이 다음 날이면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것. 그 어떤 교구보다 좋은 자극은 따뜻한 눈 맞춤과 포옹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알아서 잘 자라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사랑만 있으면.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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