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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반대했던 이혜훈 "분위기 휩쓸려…후회한다"

중앙일보 오현석.손국희.안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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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반대했던 이혜훈 "분위기 휩쓸려…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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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사진 대통령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사진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달 2일 출범하는 기획예산처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발탁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에는 김성식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지명했다. 대선 기간 ‘중도 보수’를 자처했던 이 대통령이 경제 분야 핵심 요직에 보수 정당 출신 정치인을 파격 기용하면서, 통합 인사의 기조를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28일 브리핑에서 인선 소식을 전한 뒤 “통합의 힘도 더욱 커지고, 또 실용의 힘도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보수 정당 전직 국회의원을 장관 후보자에 지명한 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15~17대 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출신인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서 서울 서초 갑에서만 세 차례 국회의원(17·18·20대)에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잠시 바른미래당에 몸담았지만, 2020년 합당 뒤엔 윤석열 전 대통령 경선 캠프에도 합류했다. 올해 대선에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5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제를 판갈이 합니다! 새롭게 대한민국' 경제 공약 발표를 위해 입장하며 이혜훈 전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뉴스1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5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제를 판갈이 합니다! 새롭게 대한민국' 경제 공약 발표를 위해 입장하며 이혜훈 전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뉴스1


예산처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를 토대로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다. 정치권에서는 “충격적”이란 반응이 쏟아졌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협치·통합 기조는 이해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발언을 했던 것은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어떤 식으로든 반성이나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도 “그간 언행에 비춰보면 이해되지 않는 인사”라고 했다.

실제 이 후보자는 지난 1~3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연단에 수차례 올라 “탄핵소추 절차 자체가 불법” “(민주당처럼) 나라를 흔드는 세력이 내란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엔 TV토론에서 “도주할 수 없는 구금 상태에 있던 현직 대통령에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15자 결정문으로 바로 구속해 버리는 부분에 대해 국민 상당수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SNS에 이 후보자의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활동이 담긴 기사를 공유한 뒤 “이혜훈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라고 적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2차 내란특검 하고 내란정당 해산시키겠다면서, ‘계엄 옹호’ ‘윤(尹) 어게인(again)’ 하는 사람을 핵심 장관으로 지명하는 이재명 정권”이라며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탄핵 반대’ 활동을 충분히 검증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발언을 했으나, 적극적으로 한 건 아니라고 봤다”며 “이번 인사를 통해 얻을 협치·통합의 가치보다 더 문제가 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선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선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관가에선 확장적 재정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 온 이 후보자가 정부 정책 기조와 맞출 수 있을까 의구심도 나온다. 그간 이 후보자가 “퍼주기 팽창 재정 때문에 고물가 상황이 초래됐다”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3월에는 한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헛돈을 쓰는 것보다 적은 돈을 들여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정책을 면전에서 반박했다.

이날 이 후보자의 임명 소식을 들은 경제부처 관계자는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구윤철 부총리와 원만하게 협업할 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민주당에선 “지역화폐 등 재정정책을 KDI 출신 전문가가 방어하는, 일종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될 수 있다”(수도권 의원)는 해석도 나온다.


이 후보자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치적 색깔로 누구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고, 적임자라면 어느 쪽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기용한다는 이 대통령의 방침에 깊이 공감한다”며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본래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가 평생 공부해 오고 쌓아 온 모든 것을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쏟아붓겠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자신의 ‘탄핵 반대’ 활동에 대해 “계엄이 발발한 순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내 첫 일성이었다”며 “원외당협위원장으로 당시 (탄핵 반대) 분위기에 휩쓸려 잠깐 따라간 건 잘못된 일이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한편, 이날 이 대통령은 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엔 핵융합 학자이자 국내 첫 핵융합에너지 민간 기업인 인애이블퓨전의 이경수 의장을 지명했다. 부당한 권한 행사 등을 이유로 직권면직된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의 후임으로는 김종구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이 임명됐다. 또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임명 5개월 만에 홍지선 경기도 남양주시 부시장으로 교체됐다. 이 대통령은 정무와 정책을 보좌할 특별보좌관에 6선의 조정식 민주당 의원과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을 각각 위촉했다.

오현석ㆍ손국희ㆍ안효성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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