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소 사회부 기자 |
10여 년 전 국내 대기업 부장이었던 A씨는 회사의 원천 기술을 들고 중국으로 도망갔다. 그는 중국 정착과 동시에 저택에 슈퍼카, 집안일을 봐주는 직원들까지 거느리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는 수배 대상에 올라 자녀 졸업식 한 번을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지만 일각에선 그의 삶을 두고 '중국몽'이라며 칭송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한다.
A씨처럼 무탈한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8나노 D램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전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연봉을 2~3배 올리는 조건을 받고 범행을 작심했지만, 결국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범행을 주도한 인물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도체 업계에는 여전히 '중국몽'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는 "길어봐야 (징역) 7년"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현재로서는 기술 유출에 따른 범죄수익을 완전히 빼앗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법체계가 기술 유출 피해액을 산정하는 시스템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
법원이 기술 유출 사범에게 추징을 선고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범죄수익이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벌의 일종인 추징을 선고하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센 형량을 구형할 수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같은 죄목을 적용하려면 범죄 수익이 특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개발에 투입된 비용과 기술의 시장 가치, 미래 수익에 근거해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법원도 이에 따라 형량을 정해 최대 징역 33년9월을 선고하고 500만달러를 추징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 또한 기술의 시세와 매출액을 따져 피해액을 산정하고 이를 양형에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우리 기술의 가치도 가늠하지 못한 채 보호를 논하는 건 공허하다. 기술의 값이 분명해질 때 반도체 강국이라는 명성도 지켜지지 않을까 싶다.
[김민소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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