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연말에 노동신문 개방을 둘러싸고 여야의 설전이 오갔습니다. 노동신문 개방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에 국정 과제로 추진하던 사안이었습니다.
약 3년 전엔 침묵하던 국민의힘은 이번엔 “무장해제하고 북한에 백기 투항하는 것”, “안보 인식이 우려를 넘어 경악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등의 발언을 동원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선 체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반박하고 있고, 심지어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구독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대국민 반공 교육이 되리라 확신한다”(박지원 의원)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북한 노동신문 사이트 차단을 풀라고 지시했다. 동아일보 DB |
연말에 노동신문 개방을 둘러싸고 여야의 설전이 오갔습니다. 노동신문 개방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에 국정 과제로 추진하던 사안이었습니다.
약 3년 전엔 침묵하던 국민의힘은 이번엔 “무장해제하고 북한에 백기 투항하는 것”, “안보 인식이 우려를 넘어 경악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등의 발언을 동원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선 체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반박하고 있고, 심지어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구독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대국민 반공 교육이 되리라 확신한다”(박지원 의원)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어느 말이 맞을까요. 저는 반세기를 남과 북에서 살면서, 노동신문을 가장 많이 본 사람 중 한 명일 겁니다.
그런 저는 여야의 논란을 보면서 안보니, 반공이니 하는 범주의 생각은 들지 않고, 몇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북한 간부들. 노동신문 뉴스1 |
첫째, “개방하면 누가 읽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20년 넘게 북한 기사를 써온 저는 어쩔 수 없이 노동신문이나 북한 중앙TV를 시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노동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고행’의 연속입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비위도 좋아야 합니다.
요즘 휴대전화 속에 얼마나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아까운 시간을 누가 노동신문의 깨알 같은 문자를 해독하느라 낭비하겠냐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 정말 노동신문을 구독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부에서 열어주든 말든, 오래전부터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VPN 앱 하나만 깔면, 휴대전화에서도 노동신문이나 북한 방송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봅니다.
한 젊은 국민의힘 의원이 “노동신문의 텍스트는 간첩들의 난수표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만에 하나 노동신문의 텍스트를 난수표로 활용하는 간첩이 있다고 해도, 그 간첩은 오래전부터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봤을 겁니다.
저는 노동신문을 개방해도 그걸 볼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반공교육의 측면이 훨씬 크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내와 비위가 좋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둘째, 국민의 힘이 주장하는 무장해제는 우리가 아닌, 노동신문이 먼저 당할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 등 북한 사이트들은 서버가 매우 불안합니다. 기사 하나 클릭하면 열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 인내가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 속도에 익숙한 많은 젊은이들은 이 단계에서, 북한 기사 열리는 것을 기다리다가 포기할 듯싶습니다.
초기에 노동신문 사이트를 오픈하면 궁금한 사람들이 들어가 볼 것인데, 제가 볼 땐 한 100명만 동시 접속해도 북한 서버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노동신문을 열어놨는데, 그 때문에 서버가 마비돼 저처럼 일 때문에 접속해야 할 사람도 읽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김 씨 일가가 조롱받는 것을 정말 참지 못합니다. 점잖은 북한 연구자들이야 노동신문을 보고 필요한 것만 읽고 말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북한 사이트에 접속해 김 씨 일가의 사진들을 따서 밈이나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북한 매체들은 밈이나 개그로 활용하기엔 정말 풍부한 소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북한이 기겁해서 노동신문 사이트를 닫아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정말 저처럼 북한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겐 큰일인데, 진지하게 말하지만 정말 문을 닫아버릴 것 같습니다.
이미 김정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풍자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김정은을 패러디한 유튜브 동영상 캡처. |
셋째, 노동신문을 읽으면 거기에 세뇌될 사람이 있을까요?
90% 이상에겐 반공 교재가 될 것임이 분명하지만, 세뇌당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북한 관련 블로그나 유튜브를 18년째 운영해 왔고, 합쳐서 2억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관련 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꽤 많이 봤습니다. 그중엔 누가 봐도 황당한, 유치원생 이상의 지능만 갖춰도 판단이 될 가짜 뉴스를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북한 매체 개방 문제를 언급하면서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선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빨갱이가 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물론 노동신문을 보고 빨갱이가 되는 지능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넷째, 그 재미없는 노동신문에서도, 그나마 우리에겐 좀 관심거리가 될만한 제일 재미있는 면이 사라졌습니다.
이건 정말 유감입니다. 노동신문은 모두 6개면으로 구성되는데, 반세기 넘게 맨 뒷면인 6면은 ‘남조선면’으로 불리며 한국 관련 기사가 작성됐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조선면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김정은이 지난해부터 한국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뒤로 한국 관련 소식은 노동신문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노동신문에 있던 담당 부서인 ‘조국통일부’도 없애버렸습니다.
사실 ‘남조선 기사’는 참 재미있었는데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겐 “북한이 우리 관련 소식을 어떻게 쓰냐”가 제일 궁금할 건데, 우리의 일상을 북한이 재해석해 가공한 것을 보면 웃음을 참기 힘들죠. 남조선 소식이 없는 노동신문은 북한 인민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렇게 재미없는 노동신문도 북한 주민에겐 정말 중요한 정보 전달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노동신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 제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전에 썼던 글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되는데,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는 분만 재미 삼아 아래 내용을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저는 분명 여기까지만 읽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코로나 시기 평양역 앞에서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여성들. 추운 겨울에 야외에 외투를 입고 나와 장갑을 끼고 여럿이 신문을 함께 읽는 사진은 노동신문이 매우 사랑하는 설정 샷으로, 주기적으로 비슷한 컨셉의 사진이 계속 나온다. 노동신문 뉴스1 |
노동신문을 ‘거꾸로’ 읽었던 추억.
나는 북한에 살 때 노동신문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뭔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판단해 볼 때 북한 신문은 철저히 노동당 선전선동 기관지로 김일성 부자 우상화 관련 기사가 꽉 차 있는 재미없는 신문이다. 어떠한 비판성 기사도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사건, 사고, 범죄, 재해, 여론조사 등을 담은 기사 역시 철저히 배제된다.
실제로 한국에 와서 국제부 기자로 10년 넘게 있으면서 한국 신문은 물론이고, 세계의 무수한 신문을 봤지만, 노동신문 편집만큼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신문도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신문 대다수의 기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해서 지루하기 그지없다.
그런 실정이니 신문 역시 북한 주민들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라는 추론이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북한 주민들은 정말 신문을 열심히 챙겨 읽는다. 그 중엔 과거의 나도 포함돼 있었다.
물론 읽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신문을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문 역시 국가에서 배정해 주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적 직책이 없으면 신문을 볼 수가 없다.
북한에서 신문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알 수 있는 통로가 신문 밖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 방송도 있지만, 지방에선 겨우 하루 몇 시간 동안만 전기가 오고 늘 정전돼 살기 때문에 TV 보기가 쉽지 않다.
또 TV에서 전해주는 뉴스는 겨우 30분 정도인데 이것도 김정일 동정 보도 등에 할애하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실상 신문밖에 없다.
북한에선 신문 외에 읽을거리도 많지 않다. 잡지도 거의 없을뿐더러, 몇 개 안 되는 잡지도 발행 부수가 매우 적어 일반 주민들은 구경하기 힘들다. 김 부자 관련 서적을 제외하면 북한 내에서 발행되는 문예 작품 역시 거의 없다.
이런 북에서 살면 활자를 본다는 그 자체가 반가울 뿐이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책도 없고, 거기에 한국처럼 술 마시고 놀 장소도 거의 없고, 노래방도 없고, 여가생활도 발달해 있지 않다 보니 독서는 북에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김일성, 김정일 등 북한 지배층의 동정을 보도하는 노동신문의 1~3면은 재미가 없지만 국내 소식을 전하는 4면과 국제면인 5면, 남조선 면인 6면은 그래도 매일 다른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므로 신문을 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북한 주민들은 5면과 6면만큼은 정말 자세히 뜯어본다. 물론 남조선 관련 보도는 철저히 ‘통일방안 선전, 남조선 당국 및 자본가, 미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비난, 남조선 사회의 어두운 점 부각을 통한 사회주의 우월성 선전’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한다.
국제면도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의 불합리를 폭로, 반미 연대성의 공고화, 북한의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을 집중 부각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도 이 정도는 안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외부 세계를 상상해 본다.
나의 실례를 든다면 가장 기억나는 것이 1991년 2월과 3월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동신문이 제일 재미있었던 때도 그때였다. 1년 전 뉴스도 오늘 거 같고, 10년 전 뉴스도 오늘 거 같은 노동신문이 그렇게 기다려지기는 그때가 처음이다.
바로 그해 1월 17일에 걸프전이 벌어져서 다음 달 28일까지 벌어졌다. 놀랍게도 노동신문은 걸프전이 벌어지자 이를 비교적 소상하게 중계했다. 북한에선 걸프전을 ‘만전쟁’이라고 했다.
전쟁의 참혹함도 알고 피해자들에겐 안 된 말이지만, 그래도 싸움 구경해 보긴 처음이었다. 물론 눈으로 화면을 본 것은 아니고, 그냥 읽기만 했지만 내가 살던 곳이 북한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만 해도 과분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전쟁을 내가 보기엔 북한이 처음으로 중립적 시각에서 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공습의 시작과 전쟁 양상을 중계 보도하듯이 전했다. 기억해 보면 이런 식이다.
“이라크 **방송에 따르면 18일 F-111 전략폭격기 등을 앞세운 다국적군 비행기 16대가 바스라를 공습했다. 이라크 반항공군은 미사일을 발사해 이 중 1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혁명수비대는 쿠웨이트에 5기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걸프 뉴스는 다국적군이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이 중 3기를 격추했다고 전했다. 두 발은 쿠웨이트 도시 외곽에 떨어졌다. 다국적군의 상륙에 맞서 이라크군은 **섬에 방어부대를 배치하고, 대기했다. 섬에 접근하던 다국적군 소해정 1대가 기뢰에 부딪혀 격파됐다.”
노동신문의 보도 분량은 다국적군의 공격 내용과 이라크군의 방어 내용이 거의 반반씩 됐다.
물론 철저히 이라크 중심적 보도이긴 했다. 전과라고 나오는 것은 이라크군이 뭘 쐈다. 미군 비행기 몇 대가 떨어졌다는 것만 나온다.
다국적군의 전과라고 해봐야 기껏 패트리엇으로 스커드 요격했다는 것하고, 어딜 폭격했다는 정도이지, 이라크군이 얼마나 피해 봤는지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냥 다국적군이 오늘은 어떤 도시들을 폭격했다는 것만 나왔다.
하지만 북한임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일이다. 특히 미제라고 쓰지 않고 다국적군이라니, 그건 당시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노동신문이 “영웅적 이라크 혁명수비대가 미제 침략자들을 통쾌하게 짓부쉈습니다. 오늘만 해도 미국놈 45놈이나 황천길에 갔습니다”는 식의 보도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랐다.
덕분에 당시 토마호크니, 패트리어트니 하는 미사일 이름도 얻어들었다. 토마호크가 무슨 뜻인지 사전도 찾아서 기억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하루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보도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처음 나온 것과 똑같이 오늘은 어디 어디 공습했고, 이라크가 미사일 몇 발 쐈고, 이런 내용만 반복됐다. 전쟁이라면 막 돌격하고, 방어선을 뚫고, 막고 그러는 것만 상상했는데, 그냥 폭격했고 대응했다 이런 것만 나오는 것이다.
아마 속으로 “요즘은 왜 전쟁 이렇게 시시하게 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해도 될 것 같았다. 노동신문이 걸프전에 전개된 다국적군 병력과 이라크군 병력까지 비교해 주어 살펴보니 병력이 비슷했다.
“이렇게 엇비슷하니 누구도 선뜻 못 들어가는구나!” 정도로 짐작했다. 한 달 넘게 공습 보도해 지루해지던 어느 날(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바로 2월 24일이었다) 지상전이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교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다시 생기를 찾았다.
어디서 전투가 벌어졌다니. “오, 이제야 막바지로 치닫는구나.” 다음날 신문을 펼쳤는데, 이게 웬일. 어제 보도한 분량의 절반으로 전쟁 중계가 나왔다. 싸움이 벌어졌으면 더 크게 써야지 이게 뭐지 싶어 의아했다. 내용도 어디 어디서 격전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그것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또 다음날 보니 이번에는 더 작게 보도됐다. 혁명수비대가 여전히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단다. 이상했다. 나흘째였던가, 놀랍게도 노동신문에서 걸프전 뉴스가 사라졌다. 어디에도 없었다. 지상전이 시작됐다는데, 나흘 만에 보도가 없어지다니 웬 일인가 싶어 매우 놀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라크군 50만 대군이 나흘 만에 없어진 것 같지는 않고, 다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나 생각했다. 걸프전 뉴스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에야 비로써 “정말 졌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라크에 50만 대군에 탱크도 수천 대나 있다고 했는데 그 무력이 불과 나흘 만에 전멸했다고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한참 뒤 “이라크 애국자들이 바그다드에서 미군 기지를 폭탄테러 한다”는 내용이 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에야 “이라크가 이젠 미군의 통치를 받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서울에 와서 찾아보니 걸프전은 지상전이 벌어지고 4일 4시간, 불과 100시간 안에 끝났다고 했다.
위에서 서술된 노동신문 내용은 절대적으로 내 기억에 의존해 되살린 것이다. 수십 년 전 일이라 정확하지 않은 기억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자료센터에 가서 그때 신문을 본다면 당시 내가 그걸 보면서 들었던 느낌까지 되살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몇 달 뒤 북한군 각 부대가 연거푸 하달되는 총참모부 지시를 집행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기억되는 지시는 갱도를 많이 만들고 입구 문에 원뿔을 만들어 붙이라는 것이다. 적의 레이더 탐지를 교란하기 위해서란다. 사방에서 쾅쾅~발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텅 빈 굴들이 곳곳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시는 가짜 무기를 많이 만들어내란 것이었다. 군인들이 용접기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공장에도 가짜 포를 만들어 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가짜를 많이 만들어야 적들이 진짜를 구분 못 하고 허튼 곳에 폭격한단다.
걸프전에서 미군의 무시무시한 화력을 보고 기겁해서 총참모부가 머리를 짜내 만든 대책이란 것이 고작 갱도 많이 만들고, 뿔 만들어 붙이고, 가짜 비행기 등을 모방한 ‘더미’를 만들라는 것들이다.
북한군도 나중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한 10년쯤 지나선 관리도 안 한다. 고철이나 땔감이라도 썼으면 좋으련만 그 주제에 그래도 군 등록 장비라 다치지도 못한다.
북한에 가면 그래서 저렇게 방치된 가짜 모형들이 많다. 눈물나게 구슬펐던 북한군 과거의 산증인으로…. 그래도 그때는 1991년이라 저런 것이라도 만들었지, 지금은 저런 더미라도 만들 능력이 있을까 싶다.
당시 이라크 전쟁을 다룬 노동신문을 보면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북한은 최강이 아니구나. 이라크도 저렇게 나흘 만에 완전히 먹히는 데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억지구나.”
그때 나는 10대 소년이었다. 내가 그 정도 느꼈으니 북한의 수많은 지식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었을 것 같다.
남조선 보도 역시 나의 관심 주제였다. 가령 실례로 노동신문에선 “남조선 괴뢰 집단이 장군님을 찬양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들씌워 애국청년에게 1년 형을 선고했다”는 식의 비난 기사가 많이 실린다.
그러면 주민들은 “아, 우리는 남조선 대통령을 찬양하면 바로 총살일 텐데 저긴 고작 1년이라니, 참 좋은 사회구나”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1989년 대학생 임수경이 평양에 왔다가 돌아갔을 때 북한 신문들은 ‘애국청년에게 징역 5년을 선포한 남조선 파쇼 도당의 만행’을 연일 규탄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우리 중 누가 서울에 가서 저러고 돌아오면 본인은 물론 8촌까지 멸족될 텐데. 진짜 파쇼는 우리구나”하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당국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외부세계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당시의 나의 상상은 노동신문에 쓰인 내용보다 훨씬 더 진실에 근접해 있었다. 이렇게 노동신문도 퍼즐을 맞추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읽어보면 나름 정말 재미있다.
그것이 내가 노동신문을 열심히 읽는 이유이기도 했다. 늘 이런 식으로 신문을 읽기 때문에 나는 행간에서 숨은 뜻을 찾아내는 능력은 정말 잘 발달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국이 말해주지 않아도 신문을 거꾸로 읽어가면서 웬만큼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북한 선전 당국도 이런 것을 이제는 많이 의식하고 있다. 임수경 방북 때만 해도 ‘너무 과하게’ 남조선 독재정권을 비난했다가 역효과를 냈는데 이제는 나름대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런 실수를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촛불 시위 보도를 보면 북한의 고민을 알 수가 있다. 사진을 하나 실어도 서울의 발전상이 북한 주민에게 전해질까 봐 배경을 모두 지우면서 고심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노동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는 단 세 문장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단 네 문장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여느 때 같으면 “인민들이 들고일어나 반북 대결에 광신하던 정권을 몰아내고 내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있다”고 호도해 선전했을 것인데 너무 조용한 것이다.
결국, 북한도 사람들이 신문을 거꾸로 읽어버리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나마 서너 문장으로 탄핵 사실을 알린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무 내용도 쓰지 않으면 북한 주민이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나름 입맛대로 포장해 보도하는 순간 그때는 북한 주민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상황을 알아 버리게 된다.
한국의 탄핵 보도를 보면서 많은 북한 주민도 “인민들이 힘을 모으면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다”는 상상을 할 것 같다. 북한은 그것이 끔찍할 것 같다.
북한 신문을 말할 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가 또 하나 있다. 노동신문의 열렬한 애독자였던 내가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읽었던 신문은 9·11테러 소식이 실린 손바닥만 한 신문 쪼가리였다.
사연은 이렇다. 2001년 나는 탈북했다가 불행하게도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6개 감옥을 옮겨 다니며 수감생활을 하다가 제일 마지막에 간 곳이 강제노동수용소였다.
수용소에선 종종 외부 작업을 나가기도 하는데, 이때 모든 남성 수감자의 주된 관심이 담배꽁초와 휴지를 주어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어 온 담배꽁초를 털어 수용소 안에서 몰래 피우는 담배는 꿀맛이다.
어느 하루 작업 동원에 나갔던 나는 운이 좋게도 손바닥만 한 신문을 발견했는데, 그걸 보다가 흠칫 놀랐다.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알 수 없는 테러 집단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사 절반 이상이 사라져 다른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쌍둥이 빌딩이 여객기와 충돌해 검은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 사진은 다행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후 나는 그 신문 조각을 쓰지 않고 석방될 때까지 갖고, 과거 했듯이 온갖 상상을 다 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유일 초강대국을 공격할 나라는 어디일까.”
북한에서 살았던 내가 알카에다와 같은 중동 테러 단체의 존재를 알 리가 만무했다. 결국, 끝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몇 달 뒤 석방됐고, 곧바로 탈북했기 때문에 당시 읽은 9·11테러 신문 기사는 내가 북한에서 보았던 마지막 노동신문 기사가 되고 말았다.
한국에 와서 당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찾아보다가 놀랐다. 테러 발생 직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당시 “지극히 유감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이며 온갖 형태의 테러와 그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빨리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아마 그것을 본 북한 지식인들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맨 날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호통을 쳐왔는데, 정작 보복이 닥칠 순간이 되니 미국이 테러의 배후로 북한을 찍을까 봐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선전선동과 거짓으로 도배가 된 노동신문일지라도 그걸 꼼꼼히 읽으며 거꾸로 상상해 본 덕분에 나는 탈북을 결행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됐다. 북한이 아무리 언론 매체를 통해 거짓을 주입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진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겉으로 충성하는 척 거짓 연기를 한다고 해도 뇌와 심장까지 노동당에 맡겨놓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마치 북한을 지켜보고 남긴 명언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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