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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리보고서] 취소, 매각, 협상…캐즘 속 움직인 LG엔솔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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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리보고서] 취소, 매각, 협상…캐즘 속 움직인 LG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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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박대리] '치킨게임' 돌입한 협력사, '허제홍호' 복귀한 엘앤에프
디지털데일리 소부장박대리 독자 여러분, 이번 주도 열심히 달린 박대리가 이차전지·에너지 이슈를 들려드립니다. <박대리보고서>에서는 금주에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뉴스를 선정해, 보다 쉽게 풀어드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박대리보고서와 함께 놓친 이차전지·에너지 이슈, 체크해보시죠.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주, 그리고 이번주의 핵심 키워드는 취소·매각·협상이었습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라 맺었던 과거의 계약이 취소됐고, 운영 효율화를 위해 일부 자산이 매각됐으며 강도 높은 새로운 협상에 나섰죠. 새 시대를 위한 사전 준비일지, 극단의 효율 확보일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24일 미국 혼다 합작법인(JV)인 L-H 배터리 회사 공장 건물 및 건물 관련 장치 자산 일체를 혼다 미국 법인(Honda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America of America, LLC)에 처분한다고 밝혔습니다.

공시된 금액은 11월 말 기준 자산가치로 4조2212억원입니다. 최종 매각 금액은 추후 실사, 환율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매각 대금 수취는 2026년 상반기로 예상됩니다.

L-H 배터리 회사는 2023년 LG에너지솔루션과 혼다가 51:49 비율로 합작한 배터리 법인입니다. 혼다의 미국 전기차 시장 진출에 따라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이번 자산 처분은 L-H 배터리 회사의 운영 자금을 확보해 JV를 지속하기 위한 취지로 읽힙니다. 미국 전기차 정책 불확실성 확대로 시장이 둔화된 가운데, 시설 자산에 묶인 대규모 자금을 유동적으로 운영해 재무 건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죠.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처분에서 건물과 건물 관련 장치 자산을 매각했으나 토지, 장비는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이에 따라 건물 내 배터리 생산라인은 LG에너지솔루션이 소유하며, 이를 운영·가동하는 주체도 LG에너지솔루션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 처분 건물은 향후 JV가 혼다 미국법인에 리스(임차) 하는 방식으로 사용해 생산과 운영 계획의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투자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물 투자 비용 리스 계약을 활용해 단기 투자 부담을 완화하고 현금흐름을 개선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처분은 전기차 시장 둔화에도 혼다가 전기차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분석됩니다.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과 달리 순수전기차(BEV) 전환이 늦어 배터리 공급망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어서죠.

양사 지분 관계가 유지되는 점도 지켜볼 대목입니다. 합작법인 철회나 청산 시 자산에 대한 지분 변동이 통상적인 절차인 반면, 이번 처분에서는 별도의 지분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어서죠. 이에 따라 양사 간 신뢰 관계나 JV 운영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6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FBPS의 배터리 사업 철수 결정에 따라 2024년 4월 체결한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을 상호 협의로 해지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해지 금액은 공시일 환율 기준 약 3조9217억원으로 전체 계약 규모(27억9500만 달러) 가운데 이미 이행된 물량을 제외한 잔여분입니다.

이번에 해지된 계약은 2024년부터 2031년까지 FBPS에 배터리 모듈을 공급하는 내용입니다. FBPS는 독일 프라이덴베르크 그룹 계열사로 북미 상용차 시장을 겨냥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모듈을 공급받아 팩으로 조립·판매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배터리 사업 전반에서 철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7일 포드와 체결했던 2027~2032년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공급 계약(약 9조6000억원)을 해지한다고 공시했습니다. 두 건을 합치면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에 취소된 계약 규모는 약 13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다만 회사 측은 재무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FBPS와의 계약은 전용 설비나 맞춤형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 없는 표준화된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이었기 때문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용 설비 투자나 추가 비용 투입이 없었던 계약으로, 계약 해지에 따른 투자 손실이나 추가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라며 "불확실성이 큰 고객을 정리하고 보다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설명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수요 둔화 국면을 '선택과 집중'의 시기로 보고,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동차 사업부 산하에 신시장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전기버스, 전기선박, 레저용 모빌리티 등으로 표준화된 배터리 제품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장성이 빠른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 미시간 공장을 ESS 전용 라인으로 전환해 조기 양산에 돌입했으며, 폴란드와 캐나다 생산거점에서도 ESS용 LFP 배터리 생산을 확대하는 등 생산 체계 재편에 나섰습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리튬인산철(LFP) 각형 배터리 전환 투자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미시간주 랜싱 공장 내 각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라인을 투자하기 위한 장비 1차 입찰 절차를 마무리하면서죠. 이 과정에서 장비 협력사 간 '치킨게임' 흐름이 나오며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랜싱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한 얼티엄셀즈로부터 인수한 곳입니다. 북측에는 도요타향 전기차 배터리 라인, 남측에는 GM용 배터리 라인이 설치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면서 북측 동의 설비만 반입이 됐습니다.

남측 동은 계획이 백지화된 이후 에너지저장장치(ESS)용 각형 LFP 배터리로 노선이 변경됐습니다. 각형은 파우치와 비교해 저렴하고 가스 배출, 열 안정성 설계 등 열폭주 방지(NP) 기술 적용에 유리하죠. 이에 따라 테슬라 등 주요 업체들도 각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랜싱 공장에 각형이 설치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은 처음으로 양산 수준의 각형 LFP 배터리 라인을 보유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 협력사가 주로 채택된 가운데 조립 공정 라인에서는 일부 변화가 예상됩니다. 조립 라인이 전극 적층 형태·폼팩터 등을 결정 짓는 단계인 만큼, 파우치형에서 각형으로 변화한 데 따른 협력사 변화가 예상돼 왔기 때문입니다.

업계는 LG전자 생산기술원(PRI)이 조립 공정 장비 수주를 대거 입찰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유한 자체 기술을 토대로 넓은 협력사 풀을 꾸려 둔 영향이죠. LG전자 PRI는 주로 장비에 장착되는 일부 모듈이나 장비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협력 장비사에게 받아오는 방식을 활용해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입찰 후 장비 단가 경쟁이 심화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시장 둔화 이후 투자 축소·운영 효율화 기조를 잡고 움직이고 있어, 협력사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을 키우고 있다는 이유에서죠.

이러한 가격 인하 기조는 LG전자 PRI에 대한 수주 확대가 점쳐지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LG전자 PRI가 직접 장비를 제작하기보다 2차 수주를 진행해오는 구조인 만큼, 1차 협력사보다 단가를 낮추기 용이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실제로 LG전자 PRI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인도네시아 합작법인 증설 검토 당시 중국 협력사로부터 2차 수주를 받아 납품하는 형태를 고려하기도 했고요.

또 중국 현지 장비사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부담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3사가 중국 현지 장비사 채택 범위를 늘리면서 단가 인하 경쟁이 확대됐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LFP 수주가 늘어나면 LFP 배터리 납품 이력이 많은 중국 장비사들의 경쟁력도 크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다만 미시간주 랜싱 공장을 포함한 미국 현지에 중국 협력사의 장비가 직접 납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내 중국 장비사 수출에 대한 직접 규제는 없는 것으로 추정되나, 대중 제재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영향입니다. 이에 따라 LG전자 PRI 혹은 한국법인으로의 우회 수출 가능성도 고려되고 있습니다.


장비 업계에 인도발 수주 소식이 나온 점은 희소식입니다. 경쟁이 예고됐던 중국 업체들이 일부 수주전에서 이탈하며 기회가 확대됐죠.

윤성에프앤씨는 23일 미공개 고객사로부터 452억원의 수주를 확보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판매 공급 지역은 인도로, 계약기간은 올해 12월 20일부터 2029년 8월 3일까지입니다. 같은 날 하나기술도 1575억원 규모의 단일공급판매 계약 공시를 냈습니다. 판매 공급 지역은 해외며 계약기간은 올해 12월 22일부터 2028년 1월 5일까지입니다.

양사는 이번 계약에 대한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이들 장비사의 수주가 인도 타타그룹 산하 아그라타스(Agratas)로의 공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피엔티 등 일부 국내 장비사도 수주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그라타스는 모회사 타타그룹의 전기차 부문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기업입니다. 이를 위해 구자라트주 사난드 지역에 연 40기가와트시(GWh) 수준의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안을 추진해온 바 있죠. 아울러 영국에서도 동일한 생산능력의 공장을 투자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당초 아그라타스는 중국 배터리 장비사들과 발주를 위한 협의를 거듭해 왔습니다. 중국 장비사들의 CATL, 비야디(BYD) 등 유력 배터리사로의 이력을 잇따라 쌓아왔기 때문이죠. 국내 장비사들도 아그라타스와의 미팅을 거치며 공급 가능성을 타진해왔으나, 중국 장비사들의 낮은 입찰단가로 경쟁에 난색을 표해왔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인도에 대한 전기차·배터리 관련 수출을 제한하고 나선 것이죠. 양국이 여러 차례 진행된 국경 분쟁으로 갈등이 발생한 여파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 장비 업체가 대거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국내 업체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됐습니다. 그러다 이번 수주 계약 체결로 오랜 기다림의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이번 수주에 따라 아그라타스가 영국에 세울 공장에 대한 수주가 이어질지도 관심입니다. 인도 공장으로의 수주를 확보한 만큼, 이번 납품 이력을 토대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입니다.

영국 공장은 중국 장비사와의 직접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중국 정부 견제가 닿는 인도 현지에 비해 상대적인 직접 제재 가능성이 낮은 영향입니다. 이에 따라 수주를 확보하기 위한 가격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번주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장비사들의 소식 외에도 한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허제홍 엘앤에프 이사회 의장의 대표이사직 복귀가 대표적이죠.

엘앤에프는 22일 이사회를 열고 허제홍 이사회 의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습니다. 허 대표는 "지난 2년간 캐즘을 돌파한 만큼 2026년부터는 기술 혁신과 역동적인 영업을 통해 고객사 다변화와 본격적인 출하량 증대를 실현하겠다"라며 "한국 최초 LFP 양극재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시장 선점 우위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했죠.

허 대표는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화학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2018~2021년 엘앤에프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이사회 의장으로 중장기 성장 전략과 글로벌 고객사 협력 해외 투자 등을 이끌어왔습니다.

엘앤에프는 이번 대표이사 선임을 계기로 2026년부터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생산 확대를 통한 시장 점유율(MS) 회복, 차별화된 하이니켈 기술 고도화, LFP 양극재 조기 상용화를 축으로 한 투트랙 성장 전략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입니다.

지난 7년여간 엘앤에프를 글로벌 양극재 기업으로 성장시킨 최수안 대표이사는 부회장직을 유지하며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 물러납니다. 최 부회장은 캐즘 국면에서도 기술 경쟁력 강화와 고객 다변화를 추진하며 실적 회복과 해외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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