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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로서 정도전은 왜 실패했나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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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로서 정도전은 왜 실패했나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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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코디네이션 실패


태종 이방원은 조선 신하들에게 익숙한 성공 모델을 제시, ‘코디네이션 게임’에서 성공을 거뒀다. 반면 기존과 다른 파격을 내세운 정도전은 다른 세력 포섭에 실패하며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사진은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의 갈등을 다룬 영화 순수의 시대 장면.

태종 이방원은 조선 신하들에게 익숙한 성공 모델을 제시, ‘코디네이션 게임’에서 성공을 거뒀다. 반면 기존과 다른 파격을 내세운 정도전은 다른 세력 포섭에 실패하며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사진은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의 갈등을 다룬 영화 순수의 시대 장면.


일반인들은 윈-윈(win-win) 게임이라고 알고 있지만, 경제학에서 공식적인 명칭은 코디네이션(coordi nation) 게임이다. 윈-윈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나도 좋고 당신도 좋아지는 상황이므로 윈-윈 전략은 너무나도 쉽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코디네이션 게임이 성공해서 윈-윈을 하기 위해서는 나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되고, 다른 모든 참여자들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데 이런 믿음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한국 경제의 발전이 코디네이션 게임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은 경제적 후진국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물자를 공장까지 운반하고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다시 항구까지 운반하여 수출할 수 있도록 자동차를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발전이 필수적이었다.

문제는 당시 어떤 기업이 자동차만 덩그러니 만든다고 해서 한국의 교통 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주유소와 자동차 정비소가 필요하다. 서울에서 자동차를 몰고 지방에 갔는데 주유소와 정비소가 없다면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자동차를 굳이 살 이유가 없어지고, 자동차를 생산한 기업은 파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동차 기업은 먼저 주유소와 정비소를 누가 건설해 주면 자기가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주유소와 정비소를 먼저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 또한 쉽지 않다. 한국에 자동차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주유소를 건설하라고 하면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당연히 자동차를 먼저 많이 팔면 그것을 확인하고 주유소와 정비소에 투자하겠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자동차, 주유소, 정비소가 모두 갖춰지면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모두가 이익을 보는 윈-윈 상황이 실현될 것이지만, 서로 상대방이 먼저 하라고 미루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이런 윈-윈의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인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코디네이션 실패(coordination failure)라고 부른다.

소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인데, 닭이 먼저 있어야 달걀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달걀이 있어야 닭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조직의 리더이다. 고도 성장기의 한국 정부는 리더십을 발휘해서 일단 정부의 책임하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자동차 회사, 주유소 회사, 정비소에 정부가 책임지고 전 국민이 자동차를 소유하는 시대를 만들 테니 정부를 믿고 바로 투자를 시작하도록 설득했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는 도로, 주유소, 정비소를 반드시 만들어 준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자동차를 생산했고 석유화학 및 주유소 회사는 자동차를 반드시 만들어서 보급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투자를 시작했다.

일견 쉬워 보이는 정부의 리더십이지만 전 세계의 경제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오직 한국만이 이런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현실에서 코디네이션 게임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증명해 준다.

코디네이션 게임의 측면에서 리더십의 자질이 부족했던 역사적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무인 출신인 태조 이성계를 보좌하여 조선을 건국하고 정부를 조직한 정도전은 한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어떤 국가의 기본적인 설계도를 만들어서 그 국가가 500년이 넘도록 지속되게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정도전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도전 자신은 조선이 건국되고 겨우 6년 후인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는 정도전이 개인적으로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코디네이션 게임을 주도하는 리더로서는 경쟁자인 이방원에게 뒤처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리더인 이방원이 부하들에게 제시하는 윈-윈 게임의 비전은 자신이 왕이 되고 자신을 도와준 부하들에게 부와 명예를 나누어 주고 자손대대로 번창하자는 청사진으로 이미 앞선 군주들이 수천 년간 제시했던 익숙한 비전이었다.

한편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던 정도전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청사진을 제시했는데, 바로 임금은 군림만 하고 재상들이 실제로 나라를 통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왕이 국가를 대표하지만 실질적 정부 운영은 수상이 하고 있는 현재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같은 제도를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도성에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으면서 정도전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방원을 따를 것인지를 고민하던 이숙번(李叔蕃)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방원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이숙번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이 주장하는 입헌군주제도는 동양은 물론이고 아직 서양에서도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제도였다. 임금이 권력을 내려놓고 재상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정부를 운영한다는 제도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당시 이숙번을 비롯한 조선의 엘리트들에게는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정도전이 경쟁자인 이방원을 제거하고 승리하더라도 이숙번의 입장에서는 그 다음에 어떤 세상이 올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경험해 보지 못한 입헌군주제하에서 이숙번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코디네이션 게임의 개념으로 설명해 보면 이방원의 리더십을 따르면 발생하게 될 윈-윈 게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당시 조선의 관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일이었지만, 정도전이 제시하는 윈-윈 게임의 비전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원의 코디네이션은 성공한 반면, 정도전이 제시한 코디네이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구성원들이 과거에 경험해서 뻔히 결과를 알고 있는 코디네이션 게임에만 집착한다면 새로운 혁명적인 발전이 저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상속하는 기존의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하는 정도전의 시도는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대 최초의 민주주의를 달성한 영국의 경우에도 1215년 무능한 존왕의 폭정에 반발한 국민들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대헌장(Magna Carta)에 서명을 받은 후,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등 내전을 감수한 474년간의 갈등을 거친 후에, 1689년 비로소 권리장전을 통해서 입헌군주제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단순히 정도전의 계획에 대입해 보면, 정도전이 입헌군주제를 생각하기 시작한 500년 정도 후가 되어서야 조선에 입헌군주제가 정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인데 그러면 이미 조선 말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정도전은 뛰어난 학자이며 이상적인 정치인이었지만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 수 있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부족했던 것 같다.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개인적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며, 구성원들의 눈높이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1호 (2026.01.01~0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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