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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사망, 도망칠 수 없다"…日 750조 삼킬 공포의 지진

중앙일보 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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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 사망, 도망칠 수 없다"…日 750조 삼킬 공포의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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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上野) 역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아라카와구(荒川). 한국의 지하철 2호선 역할을 하는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생활권이지만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중심부의 도심 5구(지요다, 주오, 시부야, 신주쿠, 미나토)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성탄절을 맞은 지난 25일 이곳을 찾아갔다.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집들 사이로 차 한 대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과거 에도 시대부터 주택들이 몰려있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건물만 바뀌어온 탓이다.

아라카와구 6번가는 도쿄도 5192개 행정구역 중 지진 위험도 평가에서 종합 1위다. 가장 위험한 동네라는 뜻이다. 지진 발생 시 노후 주택들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고, 전기 합선과 가스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면 다닥다닥 붙은 목조 주택들이 서로 불을 옮길 수 있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좁은 길은 주민들의 구조와 탈출을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목 안을 둘러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한 주민이 호기심이 생긴 듯 말을 걸어왔다. 이곳 주민 쓰치야 야스코(土屋安子·85)씨였다.

"이 동네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거든. 큰 지진 나면 그냥 다 죽는 거지. 내가 올해 85살이니 다 살았지 뭐. 둘러봤으니 알 거 아니요? 도망칠 수도 없어."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쓰치야 씨에게 반복해서 어떻게 지진에 대비 중인지 물었지만 그는 ‘코와이(怖い·무섭다)’, ‘신자우요(死んじゃうよ·죽는 거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도쿄주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지진은 일본 혼슈 서남부 해안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도, 이달 초 일본 북쪽의 아오모리현 동쪽 바다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났을 때 주의 정보가 발령된 홋카이도·산리쿠 앞바다 대형 지진도 아니다.

바로 ‘수도직하지진(首都直下地震)’이란 존재다. 수도직하지진은 도쿄와 주변 3현(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등 수도권의 바로 아래 단층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지진을 지칭한다.

1855년 안세이 에도 지진(安政江戸地震)과 1923년 간토대지진(関東大震災)이 대표적인 사례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이 바다에서 발생해 광범위한 지역에 쓰나미 피해를 일으키는 지진이라면, 수도직하지진은 건물 붕괴와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크다. 대피 시간이랄 것도 없고 대비와 예측도 어렵기 때문에 사상자는 더 많고, 수도 기능은 사실상 마비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 중앙재난위험감소위원회 실무그룹이 지난 19일 공개한 ‘수도직하지진 피해 예상 및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규모 7, 진도 6 이상의 수도직하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향후 30년 이내에 70%다. 건물 붕괴와 화재로 인한 직접 사망자는 최악의 경우 1만8000명, 재난 이후 장기간 대피소 생활로 지병이 악화하거나 돌봄 공백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만6000~4만1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경제적 손실은 80조~82조 엔(약 744조~750조 원)에 이르고, 건물 40만여 채가 붕괴하거나 화재로 소실될 수 있다고 한다. 2013년 추정치에 비해선 다소 줄어들었다. 당시엔 직접 사망자를 2만3000명, 경제 피해는 95조 엔(약 890조 원)으로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우며 10년 이내 예상 사망자와 건물 파괴 및 화재를 대략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달성하진 못했다.

아라카와구처럼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경우 재개발에 돌입할 수도, 도로를 넓힐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건물 내진 설비율이 2008년 79%에서 2023년 90%로 향상된 점과 목조 건물 밀집 지역이 감소한 부분은 대비가 진전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에선 민간 차원의 자체적인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고층 맨션은 지진이 발생해도 입주민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엘리베이터 운행을 위한 비상용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공용 시설들은 인근 주민들이 대피해 수일 간 버틸 수 있도록 비상식량과 물, 구호용품들을 구비해두고 있다.

도쿄는 도쿄만으로 흘러가는 강이 도심을 통과하고 있는 만큼 곳곳에 다리가 많다. 재난당국은 재해 발생 시 다리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고 다리 위 좁은 인도에 사람이 몰리면 군중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도로에 차를 가지고 나오는 것도 피해야 한다. 도로가 끊길 위험이 있는 데다 정체 상황이 발생하면 소방차와 구급차가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경우 일본 여행을 할 땐 재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편이 좋다. 대표적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는 일본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제공한 ‘Safety Tips’가 있다. 한국어 지원도 된다. 또한 여행 지역과 가까운 한국 영사관 번호도 미리 저장해둘 필요가 있다.

도쿄=정원석 특파원 ju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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