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의 여백이다.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조감도. 2018 West 8 제공 |
대통령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이사가 올해 말까지 마무리된다. 2022년 3월20일 아침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긴급 기자회견 화면에 등장해 조악한 조감도를 짚어가며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실을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미군기지 반환이 예정돼 있어 ‘신속하게 용산공원을 조성’해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사용할 수 있고, 국민들과 ‘교감과 소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면밀한 계획도, 충분한 숙의도 없는 일방적 선언이었다.
신속하게? 한·미 양국이 기지 이전에 합의했고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됐음에도 30년 넘게 안갯속을 표류해온 장기 프로젝트를 무슨 방법으로? 심지어 기지 반환이 언제 완료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법과 절차, 외교와 협상, 계획 과정을 몽땅 무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마조마했다. 힘겹게 지탱해온 공원 계획의 역사가 한순간에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계엄과 탄핵으로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3년 남짓, 미래의 용산공원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용산 국방부로 대통령실 이전을 전격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정권 출범 1년 뒤인 2023년 5월 ‘용산 어린이정원’이 개장됐다. 이 임시 공간은 국방부 주변 반환 부지에 최소한의 오염 저감 조치만 한 채 예산을 쏟아부어 급조한, 일종의 녹색 카펫이다. 허술한 조감도를 내걸며 선언했던 신속한 조성의 실체는 용산공원 자체가 아니라 ‘어린이’와 ‘정원’의 선한 이미지를 앞세운 녹색 화장이었다. 낭비한 예산은 아깝지만, 적절한 시점에 폐쇄하고 합법적 계획과 공식 절차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2024년 12월에는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4차 변경계획’이 고시됐다. 기본 방향과 계획 전략, 공간 프로그램 등에 난데없는 ‘보훈’ 개념이 삽입됐다. “국가공원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보훈’ 기능”을 넣고 “생태, 역사, ‘보훈’, 문화적 정체성 구현”을 공원의 성격으로 제시한 것. 헛웃음이 나올 만큼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이 정도는 다음 계획 과정에서 바로잡으면 된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기지 반환이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의 미군 이전은 대부분 마무리됐지만, 반환된 기지의 면적은 아직 31.5퍼센트뿐이다.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는 사실상 정지 상태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시계를 2022년 3월로 되돌려야 한다. 이미 사회적 동의와 국민적 합의의 강을 건넌 용산기지 공원화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따른 ‘공원조성계획’의 고시다. 특별법 제정(2007년)에 이어 종합기본계획 수립(2011년)으로 공원의 비전을 세웠고, 국제 설계공모(2012년)를 통해 공원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공모 당선작(West 8 설계)을 바탕으로 긴 진통 끝에 기본설계를 완성(2018년)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캐비닛 안에서 잠자고 있다. 종합기본계획에 따르면 용산공원의 완공에는 적어도 ‘N(기지 전체의 반환 시점)+7년’이 걸린다.
N이 언제가 될지 불확실하므로 용산공원은 초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 계획은 시간이 많다고 천천히 진행해도 되는 느슨한 계획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완성된 기본설계안을 토대로 공원조성계획을 우선 마무리해 법적으로 고시하고, N년 이후의 실행을 준비해야 한다. 계획과 조성 사이의 긴 공백기를 지혜롭게 운영하며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숙의를 이어가야 한다.
서울 용산공원은 인류세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다. 용산공원 기본설계(안). 2018 West 8 제공 |
또 다른 과제는 종합기본계획에 제시된 ‘단계별 계획’을 한층 정교하게 보완하는 일이다. N+7년, 즉 기지 반환이 완료된 뒤 10년 안팎에 걸쳐 진행될 환경 조사, 토양오염 정화, 실시설계, 단계별 공사 등의 복합적 과정과 변수, 역학 관계를 기획하고 조율할 면밀한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계획과 조성, 운영·관리를 전담할 가칭 ‘용산공원공사’와 같은 공기업 설립도 검토할 시점이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현실에서 지금처럼 공무원 조직이 위원회와 외부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구조로는 연속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 조경가, 도시계획가, 건축가를 상근 전문가로 고용한 조직이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정치적 의지다. 나는 정부 차원의 첫 계획인 용산기지 공원화 구상(2005년)부터 종합기본계획(2011년)과 2차 변경계획(2021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용산공원의 위기를 숱하게 목격했다. 그간 공원화의 여정을 위태롭게 했던 건 무엇보다도 정부의 무관심이었다. 특정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군 이전이 계속 연기되고 기지 반환 시점이 불투명해 자신의 임기 내에 착공조차 할 수 없는 사업. 모든 정권의 태도는 방치에 가까웠다. 기지 전체의 반환이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금단의 땅을 1년이라도 앞당겨 돌려받는 방법은 정치적 의지와 결단, 적극적 협상뿐이다.
소극적으로 방관하며 기다린다면 N+7년이 2035년이 될지, 심지어 2050년을 넘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N이 뒤로 밀릴수록 부동산 개발론과 주택 공급론이 부활할 것이다. 전쟁과 외세가 남긴 이 질곡의 땅 위에서 선거 때만 되면 아파트 공급을 내세운 포퓰리즘 공간 정치가 반복됐다. 2021년에는 공원 부지 20퍼센트에 1000퍼센트 용적률로 8만가구를 지어 집값을 잡겠다는 비현실적인 공약까지 등장했다. 용산공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나는 용산공원과 관련된 글의 첫 문장을 늘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의 난항을 돌아보면, 이 희망적 문장의 끝은 이제 “돌아와야 한다”로 교정해야 한다. 용산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의 여백이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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