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특집] “정체성 형성할 보편권 확장” 출판의 일이자 응전 [.txt]

한겨레
원문보기

[특집] “정체성 형성할 보편권 확장” 출판의 일이자 응전 [.txt]

서울맑음 / -3.9 °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관장 다니엘 포스만. 스웨덴 품질 박람회(Kvalitets mässan) 제공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관장 다니엘 포스만. 스웨덴 품질 박람회(Kvalitets mässan) 제공






21세기의 첫 사반세기가 저문다. ‘살 활’의 활자(活字)는 기후위기 아래 생명체처럼 궁지에 몰려왔다. 이에 맞서 ‘기회의 활자’로 반전시키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들도 있다. 한겨레가 이들을 찾아 영국, 일본, 미국, 독일을 톺은 데 이어 ‘소수 언어’라는 생래적 한계까지 지닌 스웨덴에서 그 장정을 마친다. 주제로는 ‘어린이의 책’이다. 한 독일인 전문가의 말마따나 “세계 아동 문학의 성배(Holy Grail)”로 스웨덴 아동 문학이 불리기까지 또 다른 파동을 일으키는 그곳 독립 출판인들을 만났다. 올해만큼 국내 어린이책 시장에서 곡소리가 쏟아진 적은 없다. ‘읽지 않은 아이는 읽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비관할 수밖에 없을 때, ‘읽는 아이가 읽는 어른이 된다’고 기대하는 작은 언어권 작은 출판사들의 이야기가 국내 출판계와 새 정부 정책·행정가를 지나, 마침내 독자에 가닿길 바라본다.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스톡홀름 중부 유르고르덴섬. 우산 없이 유모차 밀어 부모들이 향하는 곳을 우산 없이 따라갔다. 어린이 박물관 ‘유니바켄’이었다. 동화를 테마로 한 놀이 시설답게 ‘이야기’와 ‘읽기’를 ‘체험’시킨다. 지난해 12월 노벨 문학상 수상차 스웨덴을 방문한 한강 작가가 “유일하게 생긴 자유 시간”에 들렀던 데다.



유니바켄에서는 물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를 자국 브랜드 이케아와 에이치엔엠(H&M)보다 흔히 볼 수 있는 데가 스웨덴이다. 그 스웨덴에서도 “올해 본격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출판 시장에) 제기되고 있다”(독립 출판사 올리카). 전세계 출판계를 짓누른 ‘전 사회적 디지털화’ ‘인쇄 비용’ 문제도 북유럽이라 하여 열외로 두진 않았다. 1973년 설립된 독립 출판사 오팔이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난관”을 “인쇄 비용 증가”로 꼽을 정도다. 2010년 통상 3천부 찍던 신간 1쇄는 이제 1500~2000부로 줄었다. 독서량 감소와도 맞물린 결과다.



‘변종’ 출판도 확산 중이다. “저자가 제작·출간 비용을 선지불하고, 판매 부수에 따라 역으로 인세를 받는 신규 출판사들이 는다”는 것. “출판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동시에, 출판이 자본에 예속되며 질적 다양성을 침해받을 공산이 커진다. 한겨레가 지난 7~8월 취재 다녀간 영미권에선 ‘자비 출판의 증가’를 전통 출판사를 위협하는 한 요인으로 꼽아 왔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규모 출판사의 출현”과 “이들의 가격 경쟁력”을 반세기 가족 출판 사업을 영위해온 오팔에서 우려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게다 스웨덴 예술위원회의 오사 베리만이 한겨레에 말한 대로, 전자책·오디오북, 구독 모델 시장에서 일반 서적보다 어린이책 출판사는 더 위축된다. “책 분량이 적어 저작권료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출판 보조 예산을 많이 증가시킨 이유다. 전국 학교 도서관의 도서 구입비로만 2700억원가량(18억크로나)이 투입되었다. 올해는 2배 이상 늘었다. 독서의 위기는 출판사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위기”라는 공공의 인식 덕분이지만, 지난 10년 이상의 관련 예산 동결에 비춰 향후를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뽑힌 외관에 “문학, 지식, 지혜의 성전”으로 불리는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의 관장으로 내년 3월 국가기록원장에 취임하는 다니엘 포르스만(49)을 서면으로 만났다.



―독서율 감소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학교 관련 독서 활동이 크게 줄어 왔다. 18~29살 청년들 독서량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었다. 스웨덴 정부는 이런 위기를 인식해 왔고 대응 중이다. 최신 데이터를 보니, 지난해 특히 9~12살 아이들의 스크린 타임(스마트폰 이용) 감소와 함께 젊은 연령층 독서율이 증가했다.”



―한국에선 대출 도서가 유행에 압도된다.



“특정 도서에 대한 수요 집중은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의 역할은 한 도서를 여러권 제공하는 게 아니다. 문학의 장려가 사명이고, 인기 도서뿐만 아니라 도서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주력한다. 책의 품질, 수요, 장기간 구비할 만한지(지속 가능성)가 컬렉션 기준이다.”



1928년 개관한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의 연간 방문은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1170만건. 42만명이 도서관 카드 등록자다. 이들 또한 노벨 문학상과 자국 내 최고 문학상으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트상 등을 받은 작품들에 대체로 집중 반응한다. 도서관 쪽도 아동 문학계의 노벨 문학상이라는 별칭을 나눠 갖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덴마크) 수상작은 빠트려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알마상) 수상작은 전국에 보급한다. 올해 출간 80주년을 맞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의 ‘삐삐 롱스타킹’은 이 도서관의 “지난 10년간 베스트 대출 도서”로 그 인기가 여전하다. 동시에 작가의 전체 작품 대출 빈도는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한국어 도서는 1700권 정도. 어린이책과 성인 문학 비중이 비슷하다. “한국 대중문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관장은 본다.



―독서율, 이용자 다양성 제고를 위한 도서관의 전략은?



“도서관법은 네 그룹에 특별한 관심을 쏟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 장애인, 소수 원주 민족, 그리고 스웨덴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



포르스만은 보수·종교 세력 주도의 금서 운동에 관해 “스웨덴도 극단주의 단체들이 있다. 규모가 작고 파급력도 거의 없지만, 주목은 많이 받는다”며 “도서관의 역할은 복잡한 세상을 탐색하기 위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 중심가 쿨투르후세트 안에 있는 0~9살 어린이 대상 도서관 ‘룸 푀르 바른’. 지난 5일 방문한 이 도서관 내 비치된 한국어 책들. 이수지·백희나 작가 등의 작품과 함께 스웨덴·노르웨이·일본 작가의 한국어 번역 작품도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스톡홀름 중심가 쿨투르후세트 안에 있는 0~9살 어린이 대상 도서관 ‘룸 푀르 바른’. 지난 5일 방문한 이 도서관 내 비치된 한국어 책들. 이수지·백희나 작가 등의 작품과 함께 스웨덴·노르웨이·일본 작가의 한국어 번역 작품도 보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2018년부터 도서관을 이끈 그가 나열한 공공 활동 가운데 ‘다국어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도서관 내 ‘다국어 대출 센터’가 정부 예산에 기반, 왕립 도서관과 협력해 전국 공공 도서관에 100개 이상의 언어로 된 문학 작품을 공급한다. “모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권리를 보장한다”가 도서관 디자인의 애초 원리다. 누구든 ‘독자’가 될 권리와 기회를 가지며, ‘시민’이 될 기회와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책과 문학·출판이 해온 일이자 위기에 맞선 응전의 원리라 하겠다. <끝>



스톡홀름(스웨덴)/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윤석열? 김건희? 내란사태 최악의 빌런은 누구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