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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너와 내가 만나서…"자신의 세계 넓혀 나가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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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너와 내가 만나서…"자신의 세계 넓혀 나가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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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4ⅹ4의 세계' 조우리


조우리 작가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4ⅹ4의 세계'를 안고 있다. 하상윤 기자

조우리 작가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4ⅹ4의 세계'를 안고 있다. 하상윤 기자


하얀 병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 정사각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로 네 개, 세로 네 개, 네모 반듯한 '패널' 16개. 하반신 마비로 재활 중인 초등학생 '가로'가 사는 '4ⅹ4의 세계'다. 빙고 게임하듯 16개 칸을 곤충 이름부터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주워들은 병명까지로 채우며 혼자 노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 그런 가로에게도 빙고를 함께 할 친구가 생기는데, 중학교 교복을 입어보는 게 소원인 암 환자 '세로'다.

"나는 휠체어라는 제약이 있고, 세로는 조금만 뛰어도 금방 지쳤기 때문에 오래 놀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우리 둘 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족한 나와 부족한 세로가 이 세상에 둘이나 있어서. 그런 우리가 같이 있어서."(99쪽)

제66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조우리(45) 작가의 장편 동화 '4ⅹ4의 세계'(사사세)의 한 대목이다. 조 작가는 "많이도 필요 없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며 "그 한 사람만 있으면 그게 곧 이 세상 전부와도 같다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조우리 작가는 이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까지 굳이 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글 쓰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 30대 후반 다시 써보자고 생각했다며 당시 우연히 십 대를 화자로, 십 대 시절 마음을 떠올리며 썼더니 이야기가 잘 풀려서 계속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하상윤 기자

조우리 작가는 이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까지 굳이 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글 쓰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 30대 후반 다시 써보자고 생각했다며 당시 우연히 십 대를 화자로, 십 대 시절 마음을 떠올리며 썼더니 이야기가 잘 풀려서 계속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하상윤 기자


사사세는 3년 전 뜻밖의 하반신 마비로 입원한 엄마를 간병하던 작가가 보호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던 순간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이 병원 안의 누군가도 이걸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재활에 성공한다는 게 꼭 다시 걷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동화 속 물리 치료사 고온유 선생님의 대사 역시 실제로 그가 들었던 얘기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이 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절망과 희망을 반복해서 겪어내야 한다"며 "독자들이 그런 시간을 상상하면서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사사세는 연작소설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2019)로 데뷔한 이후 청소년소설을 꾸준히 써온 그의 첫 번째 동화다. 초등학생 고학년 화자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동화로 완성됐다. 그는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처음부터 정답을 정해놓고 읽는 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첫사랑 이야기거나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야기로도 읽히기를 바라요. 병원 안의 다양한 사람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시트콤처럼 받아들여져도 좋겠고요." 조 작가는 늘 자신의 첫 독자를 자처하는 딸(15)에게 초고를 보여줬는데 "반응이 좋아서 내심 재미있는 책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고.


조우리 작가는 가로와 세로는 15년 후 결혼해 곡선과 대각선을 낳고 잘 살았을 거라는 한 초등학생 독자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상윤 기자

조우리 작가는 가로와 세로는 15년 후 결혼해 곡선과 대각선을 낳고 잘 살았을 거라는 한 초등학생 독자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상윤 기자


긴 글보단 쇼트폼 영상이 더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동화는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동화 속 세계에서는 진짜 하찮은 것들도 주인공이 돼요. 단추나 티셔츠, 새들도요. 이렇게 무언가 되어보는 경험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가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죠. 디지털 콘텐츠가 주는 재미로는 결코 바꿔칠 수 없는 동화만이 가진 오붓한 즐거움이자 강점이에요. 아이들이 반드시 동화를 읽고 거쳐 가야 하는 이유랍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