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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쿠팡 부적절한 ‘셀프 조사’…진실 규명은 수사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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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쿠팡 부적절한 ‘셀프 조사’…진실 규명은 수사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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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 포렌식, 결과는 ‘셀프 발표’





정부 공조 했다지만 선 넘은 건 분명





정부도 엄정하고도 냉정한 대응을



쿠팡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도 초유의 사태였지만 사후 수습 과정도 점입가경이다. 김범석 창업주는 여전히 공식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있고, 새로 임명된 국내 법인 외국인 대표는 납득할 만한 해명과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중에 쿠팡은 성탄절인 엊그제 개인정보를 유출한 중국인 전직 직원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직원이 3370만 명의 고객 계정에 접근했지만 그 중 약 3000개 계정의 개인 정보만 저장했고 이조차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중대한 개인정보 침해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쿠팡은 엄연히 사법 당국과 민간합동조사단의 수사 및 조사를 받는 입장에 있다. 그런 쿠팡이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 등을 하천에 버렸다는 전직 직원의 진술서를 받고 잠수부까지 동원해 노트북 등 장치를 회수해 포렌식했다. 합동조사단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쿠팡이 대체 무슨 권한으로 증거물을 포렌식하고, 그 결과를 독자적으로 발표한단 말인가. 상식에 맞지 않는 ‘셀프 조사’ ‘셀프 면죄부’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쿠팡은 어제 “정부 감독 아래 수주간 진행된 공조 조사였다”고 주장했다. 그랬음직한 정황도 나왔다. 문제의 직원이 중국에 있으니 정부가 직접 조사를 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당국과 쿠팡이 협력해서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조사 과정은 물론, 결과에 대한 분석과 대응까지 긴밀하게 공조가 이뤄졌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쿠팡이 선을 넘었다는 점이다. 수사는 물론 법정 증거물이어야 할 노트북을 포렌식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발끈한 정부 당국의 태도를 보면 발표 자체도 정부와 협의 없이 이뤄졌고 그 내용도 독자적 해석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쿠팡 발표의 진위는 당국의 수사와 조사로 밝혀질 것이다. 공조 여부를 놓고 사태가 당국과 쿠팡의 진실게임으로 흘러가선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쿠팡은 독자 판단과 행동을 접고 민관합동 조사와 경찰 수사에 철저하고 전면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최근엔 쿠팡의 로비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2021년 3월 나스닥에 상장된 이후 최근 4년간 미국 행정부와 의회 로비에 1075만 달러(150억원)를 사용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최근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미국 기업인 쿠팡이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식의 이상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 국회와 공정위가 미국 기업에 대해 규제 장벽을 높인다고 비난했으며 대럴 이사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국을 중국·쿠바·북한 등과 같은 불량국가 대열에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닐 수 없다. 쿠팡이 일으킨 초대형 보안사고에 대한 책임과 혐의의 무게는 하필 ‘미국 기업’이라서 가중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외교·통상 분란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와 우리 사회가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쿠팡의 위법 행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필요한 의법 조치는 엄정하게 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쿠팡에 대한 전방위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늘리려고 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영업정지 카드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국세청은 특별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여론에 편승한 과도한 보복조치란 역공의 빌미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조치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지키면서 진행되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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