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탕감 역효과 논란
중저신용자 금리 역전
인뱅 리스크 부담 확대
중저신용자 금리 역전
인뱅 리스크 부담 확대
[매경DB] |
최근 정부가 장기 연체 채무자와 취약계층을 겨냥해 추진 중인 채무조정·채무 탕감 정책이 중·저신용자 규모 확대와 연체율 상승, 신용시장 질서 훼손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돕겠단 취지이지만 이를 악용해 채무 이행을 미루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금융사 리스크가 성실 차주들에게 전가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신용점수 600점 이하(약 7등급~8등급)인 차주에게 그 윗단계 신용점수대보다 더 낮은 금리로 가계대출을 내 준 곳은 9곳에 달한다.
KCB는 신용점수 900점 이상, 즉 1~2등급을 ‘고신용자’로 구분하며 3~4등급은 ‘준고신용자’, 5~6등급은 ‘중신용자’, 그 이하는 ‘저신용자’로 구분한다.
위험 기반 가격 책정(Risk-based pricing)에 따라 연체율 등 리스크가 높은 저신용자에게 그렇지 않은 고신용자 대비 높은 금리를 치루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난 모습이다.
중저신용자 금융 접근성 확대라는 정책 기조 하에 인터넷전문은행(인뱅)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이들이 감내해야 할 신용 리스크와 재무적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 목표를 ‘평잔 30% 이상’으로 통일했다가, 올해부터 ‘신규취급액 30% 이상’ 기준도 추가했다. 지난 18일에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은행의 전체 신용대출 중 중·저신용자 비중이 최소 30%를 넘도록 규정한 현행 규제 기준을 2030년까지 ‘35% 이상’으로 높이겠다고도 밝혔다.
올해 3분기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평잔 기준)은 카카오뱅크[323410] 32.9%·케이뱅크 33.1%·토스뱅크 35.2%다. 동기간 신규취급액 기준으로도 카카오뱅크가 35.4%, 케이뱅크 33.9%, 토스뱅크 43.7%로 목표치인 30%를 넘어섰다.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출범 이후 8년간 누적 대출액이 총 15조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출범한 케이뱅크의 누적 공급액은 8조330억원이다. 토스뱅크는 2021년 출범 이후 공급한 누적 중·저신용 대출액은 총 9조5000억원에 달한다.
카드론·인뱅 대출로 몰린 중저신용자…각종 부작용 우려
카드대출 [연합뉴스] |
특히 정부의 신용사면 프로젝트로 인해 연체 차주의 과거 연체 이력이 삭제되면 중저신용자 신용도 관리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저신용자의 스펙트럼은 일시적 신용 하락자, 구조적 취약 차주 등 넓은데, 각기 다른 이들의 연체 확률·회복 가능성을 구분하지 않으면 평균 연체율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단 우려에서다.
인뱅 관계자는 “신용사면을 통한 고객 확대는 양면성이 있다”며 “앞으로 리스크 관리 중심의 경영 기조를 강화하고 이에 따른 비용 효율화도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성실 상환자에 대해 개인회생 낙인을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해주기로 하면서 장·단기 카드대출(카드론·현금서비스) 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용·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낙인 채무자들의 신규대출·카드이용 등이 정상화될 시 비교적 승인이 쉬운 카드대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신용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지난 11월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2조5529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42조751억원 보다 약 4778억원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카드론을 갚지 못해 다시 카드사에 대출받는 대환대출 잔액도 1조5029억원으로 전월 1조4220억원 보다 809억원 늘어났다.
대출성 상품인 현금서비스와 결제성 리볼빙 잔액도 같은 기간 모두 증가했다. 11월말 현금서비스 잔액은 6조2646억원, 결제성 리볼빙 잔액은 6조7741억원을 기록했다. 전월 보다 각각 833억원, 627억원이 늘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업이 전형적인 규제 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당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구조”라며 “고신용자 역차별과 도덕적 해이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금리 역전이 장기화할 경우 은행권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새 정부의 배드뱅크인 ‘새도약기금’은 지난 10월부터 7년 이상·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채권을 순차 매입하면서 본격 가동됐다. 총 16조4000억원 규모의 채권이 소각 또는 채무조정될 예정이며, 수혜 인원은 약 113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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