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룬은 26일(한국시간) 영국 공영방송 BBC와 인터뷰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스타들 슈팅에 맞아 기절한 적도 많았다. 퍼거슨에겐 고양이 한 마릴 선물받았는데 이름을 (맨유 훈련장인) '캐링턴'으로 지어 함께 지내기도 했다"며 환히 웃었다.
하룬이 첫머리에 거론한 경험담은 199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컵 맨유와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1라운드 2차전이었다.
앞서 맨유는 홈 1차전을 0-0으로 비겨 고개를 떨궜다. 러시아에서 열린 2차전은 날씨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난전이었다.
하룬은 “그런 비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비가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쏟아지더라. 정말 최악의 날씨였다"면서 "장비는 흠뻑 젖고 카메라는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일기(日氣)였다" 회고했다.
후반 도중 퍼거슨 감독은 비에 흠씬 젖은 하룬을 발견하고 “마기, 좀 젖었나?” 묻더니 "키도(브라이언 키드 수석코치)와 나 사이에 와서 앉아” 권유했다.
하룬은 퍼기 말대로 경기 종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골대 뒤에서 찍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며 씩 웃었다.
경기는 또다시 무득점으로 끝났고 승부차기 끝에 맨유는 토르페도 모스크바에 패했다. 마지막 킥을 실축한 맨유 센터백 게리 팰리스터는 유니폼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하룬은 직감적으로 “(목메어 우는 팰리스터를 찍으면)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할 사진”을 얻게 될 것임을 알았다.
"다만 플래시와 광각 렌즈를 조율하면서 속으로 생각했죠. ‘퍼기가 엄청 화낼 텐데…' 여지없더라고요. 예상대로 퍼기는 날 바라보며 '팰리스터 사진 찍으면 난 다신 너랑 말 안 한다!' 소리쳤죠(웃음)."
삼촌인 루이스 에드워즈는 1965년부터 15년간 맨유 회장을 지낸 거물이고 사촌 마틴 에드워즈 역시 1980년 부친 사망 후 회장직을 이어받아 영국 최고 명문을 일선에서 경영했다.
이 기간 EPL 창설에도 일조해 잉글랜드 축구계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아버지인 덴질 하룬 또한 올드 트래퍼드 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하나 현장에서 '친척 찬스'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유명무실했다. 여성 사진작가로서 경험은 우아하기보단 전투적이었다.
EPL 사진 현장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 중심이었다. 하룬은 “(나라는 존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다” 귀띔했다.
“경기장 관리 요원이나 경찰에게 난 항상 ‘가장 약한 고리’였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요.”
그럼에도 하룬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면 돌파했다.
언젠가 맨유가 잉글랜드 브레스턴의 엘런드 로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치를 때였다. 양팀 팬들이 충돌했다.
하룬은 신경이 바짝 곤두선 팬덤 사이에 끼어 곤욕을 치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카메라만은 지켜야 한단 생각뿐이었다고.
“그런데 결국 체포된 건 나였어요. 내가 가장 약한 고리였죠. 여자였으니까요.”
“트라브존스포르와 애스턴 빌라 경기에선 관중이 던진 돌에 맞아 기절했고 웨인 루니가 훈련 중에 찬 슈팅에도 맞아 정신을 잃었어요. 데니스 어윈 슈팅도 강력했죠(웃음)."
이때 맨유 레전드 중앙 미드필더 브라이언 롭슨이 어윈에게 농을 쳤다. "이봐 데니스, 사진작가를 죽일 거면 최소한 구단 회장 사촌은 피했어야지!"
물론 선수들에게 도움을 받은 순간도 적지 않았다.
"하루는 맨유-아스널의 유럽대항전을 앞두고 (아스널 공격수인) 이안 라이트에게 부탁했어요. 골을 넣으면 내 앞에서 세리머니를 해달라고요. 경기 중에 라이트가 진짜 득점을 했는데 (내가 있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더라고요. 그러다 실수를 깨달았는지 급히 돌아왔어요. 내 카메라 앞에서 두 팔을 벌려 '예(yeah)!"를 외쳐줬죠. 덕분에 정말 완벽한 사진이 나왔어요."
그 인연으로 뜻밖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맨유 캐링턴 훈련장의 리셉셔니스트 캐스 핍스와 친분이 깊었던 하룬은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마기, 버려진 고양이가 있는데 너랑 있으면 잘 살 것 같아.”
당시 이미 고양이 23마리를 키우고 있던 하룬은 망설였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스코틀랜드 억양이 들려왔다. “마기, 고양이 데려가.” 퍼거슨 감독의 말이었다.
그렇게 하룬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고 그 이름을 '캐링턴’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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