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눕지도 앉지도 못하던 필리핀 소녀, 세브란스병원이 치료했다

한국일보
원문보기

눕지도 앉지도 못하던 필리핀 소녀, 세브란스병원이 치료했다

서울맑음 / -3.9 °
신경관 닫히지 않은 '수막척수류' 환자
척추 신경 밖으로 돌출돼 앉지도 못해
수술 후 바른 자세로 잠잘 정도로 호전
JYP엔터테인먼트가 수술비 전액 후원


필리핀의 10세 소녀 조안나(왼쪽)의 어머니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필리핀의 10세 소녀 조안나(왼쪽)의 어머니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세브란스병원이 출생아 1,000명 중 1명 이하에서 발생하는 '수막척수류' 필리핀 환아를 초청해 치료했다고 26일 밝혔다.

수막척수류는 임신 초기 3, 4주 때 태아의 신경관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발생하는 질환이다. 신경관이 닫혀야 뇌와 척수로 정상 발달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수막(척수를 둘러싼 막)과 척수가 척추 밖으로 돌출한다. 이 질환을 앓는 환자는 하지 마비, 근력 저하, 배설 장애 등을 겪게 된다.

필리핀 소녀 조안나(10)는 신경관이 열린 상태로 태어나 이런 증상들을 안고 살아왔다. 출생 직후 신경관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 시기를 놓쳤다. 소아신경외과, 소아재활의학과, 비뇨의학과 전문의들이 함께 진료와 추적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필리핀에는 이런 인프라도 부족했다.

조안나는 결국 하반신이 마비돼 부모 도움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최근에는 등에 돌출된 척추 신경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노출된 신경 탓에 극심한 통증이 생겨 앉는 건 물론 똑바로 눕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결국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밤마다 제대로 잠도 들지 못했다.

필리핀 빈민촌에서 사역하다 조안나의 사정을 알게 된 이정현 선교사는 이를 세브란스병원에 알렸고, 세브란스병원은 조안나를 '글로벌 세브란스 글로벌 채리티'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는 세브란스병원이 의료 취약국 환자들을 국내로 초청해 수술비 전액을 지원하며 치료하는 프로그램으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집도를 맡은 김동석 소아신경외과 교수는 조안나의 닫히지 않은 신경관 틈을 비집고 밖으로 돌출된 수막류 주머니를 먼저 손봤다. 수막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신경 조직들을 주변 조직들과 분리한 다음, 원래 있어야 할 척추 안쪽으로 넣었다. 특히 외부 자극에 따른 추가 신경 손상과 통증을 방지하고 감염 위험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수술 전에는 등에 돌출된 수막류 주머니 때문에 똑바로 눕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조안나는 수술 후 빠르게 회복해 지금은 바른 자세로 잠을 잘 정도로 호전됐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안나(앞줄 왼쪽 두 번째)와 조안나의 어머니(세 번째), 집도의 김동석(첫 번째) 소아신경외과 교수, 이정현 선교사(네 번째)와 세브란스 임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안나(앞줄 왼쪽 두 번째)와 조안나의 어머니(세 번째), 집도의 김동석(첫 번째) 소아신경외과 교수, 이정현 선교사(네 번째)와 세브란스 임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김 교수는 "환아가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필리핀에 돌아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조안나는 "치료해 주신 세브란스 선생님, 살라맛(감사합니다라는 뜻의 타갈로그어)"라고 감사를 표했다.

수술 비용 전액은 JYP엔터테인먼트가 후원했다. JYP엔터는 지난해 4월 연세의료원과 국내외 취약계층 소아·청소년 환자 치료비 지원을 위한 사회공헌 업무협약을 맺고 현재까지 누적 7억 원을 기부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