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배당 원칙 바꾼 내란재판부
예외 핑계삼아 기존 규칙 흔들어
최소한의 신뢰라도 유지하려면
독립적이고 투명한 활동 보장해야
예외 핑계삼아 기존 규칙 흔들어
최소한의 신뢰라도 유지하려면
독립적이고 투명한 활동 보장해야
대법원 청사 |
‘특별하다’는 말은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는 뜻이다. 이를 공적인 영역에서 사용하게 되면 평소와 다른 상황이니 평소의 방식만으로는 다루기 어렵고, 그래서 예외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문제는 특별하다는 단어가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용되는 게 아니란 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예외적 경우가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등장한다. 예외가 많아지면 원칙이 힘을 잃는다. 원칙이 약해지면 시스템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국가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다.
최근 국회는 내란 사건 재판을 위한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확한 명칭은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 형사절차에 대한 특례법’이다. 이름부터 ‘평소의 재판 절차와 다르게 운영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해당 재판부가 다룰 사건이 얼마만큼 중대한지가 아니다. 계엄은 반복돼서는 안 되고, 주모자와 가담자에 대한 처벌은 철저해야 한다. 다만 그 처벌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설득할 수 있으려면 결론에 이르는 방식이 공정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은 판사가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 불완전함이 가장 적게 드러날 수 있도록 사법절차를 촘촘히 설계하는 데서 나온다. 그 출발점이 재판의 ‘무작위 배당’이다. 어떤 판사가 사건을 맡을지 미리 알 수 없게 하는 것, 그 예측 불가능성은 공정한 재판의 최소 조건이다. 전담재판부 설치는 무작위 배당 원칙을 예외로 만드는 특별한 법이다.
만일 시험이 끝난 뒤 시험을 망친 이가 채점 기준을 새로 만들자고 주장한다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지고 있는 쪽이 이번 경기는 특별하니 심판을 바꾸자고 요구한다면 그 경기는 더 이상 스포츠라 부르기 어렵다. 사법 절차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벌어진 뒤 그 사건을 다루는 특별한 재판부를 예외적으로 만드는 순간, 그 재판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악순환이다. 한번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음번에는 반대편이 같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유리한 전담재판부를 만들기 위해 힘겨루기가 일어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는 지금보다 더 떨어지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적어도 전담재판부를 허용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첫째, 기존 제도로는 정말 할 수 없는 일인지 따져봐야 하겠다. 처리 속도가 문제라면 인력·사무분담·절차를 조정하는 방식이 먼저다. 기존 판사를 못 믿겠다는 불신이 전담재판부 설치의 출발점이라면 그 제도는 시작부터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전담재판부의 업무 범위와 기한은 최대한 좁게 설정해야 한다. 재판부가 다루는 대상이 넓고 활동기간이 길수록 권력이 개입할 가능성도 커진다. 종료 시점을 못 박거나 일몰제 같은 자동 종료 장치를 두는 방안도 검토해볼 법하다. 셋째, 정치권은 전담재판부에서 손을 떼야 한다. 정치권이 추천·임명·예산·지휘권을 장악하는 순간 해당 재판부의 판결은 신뢰를 잃어버린다. 그보다 전담재판부의 독립성을 확실히 보장하고 활동 과정과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은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건 승복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런 약속이 없다면 전담재판부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하다.
특별한 재판부가 재판을 맡는다고, 예외가 늘어난다고 우리 사회의 정의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칙은 사라지고 신뢰는 무너진다. 예외적인 재판을 만드는 것보다 일반적인 상식과 일관된 절차가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