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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이 하청 노동자 근로시간 등 통제하면 ‘사용자’로 본다···정리해고도 단체교섭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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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이 하청 노동자 근로시간 등 통제하면 ‘사용자’로 본다···정리해고도 단체교섭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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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내년 시행 ‘노란봉투법 해석지침’ 발표
정부·공공부문, 원칙적으로 사용자 아냐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고용노동부가 내년 3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구조적으로 통제’한다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용자’로 인정하는 해석 지침을 내놨다. 기업의 합병 또는 분할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는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

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개정 노조법 제2조 해석지침(안)’을 마련해 행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노동조합법 시행을 앞두고 원·하청 교섭 범위와 파업 가능 사안을 구체화하겠다는 취지다.

근로시간·작업방식 통제하면 ‘사용자’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해 노조의 ‘교섭할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개정 노조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제로 좌우하는 지위에 있다면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노동부는 해석지침에서 이 판단 기준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제시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 작업 일정과 강도, 작업 환경 등을 사실상 정하고 있다면 사용자로 본다. 구체적으로 원청이 특정 공정에 필요한 인력 숫자나 자격을 정하거나 바꿀 권한을 가진 경우, 원청의 생산공정이나 교대제 운영 방식에 맞춰 하청 노동자의 교대제와 연장·휴일근로가 함께 바뀌는 경우다. 또 원청이 작업지시서나 관리시스템을 통해 업무 순서와 방식까지 세세하게 정하는 경우도 구조적 통제로 판단될 수 있다.

반면 하청업체가 독립된 설비를 갖추고 완제품이나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반적인 도급 관계라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노동부는 도급계약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사용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동안 법원 판결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원청 사업에의 편입’과 ‘경제적 종속성’은 구조적 통제를 판단할 때 참고하는 보완적 기준으로 활용된다. 하청 노동자의 일이 원청의 사업 과정에 바로 포함돼 있거나, 원청과의 계약이 끊기면 하청업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원청이 우월적 지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안전·복지·임금, 분야별로 사용자성 판단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8월 24일 노동계가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8월 24일 노동계가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노동안전 분야에서는 원청이 현장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같은 사업장이나 작업공간에서 일하고, 주요 기계나 설비를 원청이 소유하거나 관리한다면 안전 문제 역시 원청 책임 아래 있다고 본다. 위험한 곳을 고치거나 안전장치를 달고 싶어도 원청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구조라면, 원청을 안전 분야의 사용자로 볼 수 있다.

복리후생의 경우 통근버스나 휴게시설을 하청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이용하는지를 원청이 정한다면 사용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임금과 수당에서도 원청이 투입 인원과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인상률과 수당 기준을 직접 제시해 하청의 재량을 제한한다면 사용자로 볼 수 있다. 다만 도급 총액 안에서 하청업체가 자율적으로 임금을 정해 지급한다면 사용자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봤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 아냐


공공부문에서는 정부를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지만, 노동부는 원칙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령이나 조례, 국회의 예산 심의·의결로 정해진 기준을 정부가 집행하는 것은 공공정책의 결과로, 개별 노사 간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정부가 실제로 근로조건을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이 있는지, 현장 기관이 자율성을 갖는지는 사안별로 따져볼 여지를 남겼다.

기업 합병 후 정리해고·전환배치는 교섭 대상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노동쟁의 범위도 구체화됐다. 기업의 합병·분할·매각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전환 배치는 교섭 대상이 된다. 노조는 고용 보장과 절차에 대해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교섭이 결렬되면 파업도 가능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준, 징계나 승진 기준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는 문제도 노동쟁의에 포함된다. 사용자가 근로조건과 관련된 단체협약을 명백히 어기고도 시정하지 않는 경우도 쟁의 대상이 된다.


노동계 “기준 너무 좁다” 반발


노동계는 구조적 통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제로는 원청 책임을 묻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사용자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쟁의의 실질적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적지 않다”며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아가는 데 활용하기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로 활용될 우려가 더 커보인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불법파견 판단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해 노동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이번 지침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며 보다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다음 달 15일까지 행정예고를 거쳐 현장 의견을 수렴한 뒤 지침을 확정할 예정이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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