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1956년 HLKZ-TV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된 ‘천국의 문’을 시작으로 70년간 이어져왔다. 이제 드라마는 K-팝과 함께 한류 열풍을 이끌어 온 핵심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의 영향으로 한국제품을 사고싶다는 외국인들도 많다. 이에 따라 정부는 K-콘텐츠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시장 규모를 300조 원대로 확대하고, 문화산업 수출 5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드라마 산업과 영화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다. 영화 산업의 침체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 극장에 가지 않고 OTT물 등을 보는 소비행태로 인해 많이 알려져왔지만, 드라마 산업의 위기 상황은 외부에는 덜 알려져있다.
그 이유는 드라마 산업 위기가 일시적인 침체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에 걸쳐 계속 누적된 복합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며, K-콘텐츠의 글로벌 인기라는 말 속에서 문화적인 면과 비즈니스적인 면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황이자 위기…‘K-콘텐츠 르네상스 시대’ 아이러니
드라마 산업의 선순환 구조란 좋은 드라마 제작→이익을 남김→이윤은 더 좋은 드라마 제작에 투자→드라마 다양성과 퀄리티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의 반복이다. 하지만 현재는 드라마 제작의 선순환 구조가 붕괴돼 K-드라마의 안정적 공급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고, 이는 K-드라마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지도 모른다. ‘K-콘텐츠 르네상스’시대에 드라마 산업은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무려 500억원이 투입된 tvN 올해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는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그나마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지, 중소제작사라면 큰 일 날 뻔 했다. 2024년도 화제작인 SBS 금토드라마 ‘굿파트너’도 적자가 났다면, 드라마 제작업의 수익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잘 알 수 있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도 가속화되고 있다. 방송사(플랫폼)의 자회사나 스튜디오들은 위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많은 중소제작사들은 제작을 못해 생존이 불투명해졌다.
방송국도 미니시리즈를 만들면 몇억, 몇십억의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 심지어 광고가 완판됐는데도 적자를 낸 드라마가 많다. 방송사는 제작사에게 제작비를 줘야하는데, 줄 돈이 없다.
제작사와 방송사 모두가 적자 구조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지 못하는 현실은, 문화 산업으로서의 공공성과 민간 창의성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 산업 위기의 실체는 ‘제작의 위기’다. 업계에서는 회당 제작비가 10억원이 넘어가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에 반드시 팔아야 인건비라도 남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제작비 리쿱(회수)이 안되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된다.
특히 드라마 제작사는 실질적인 기획과 제작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수익 창출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하청업체 수준의 지위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K-드라마 산업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회장 송병준)도 드라마 위기 대응전략을 다양하게 강구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기반 보호 위한 정책 시급
정부는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IP 확보’와 ‘사전제작 전환’을 주요 정책 기조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드라마 제작사들은 사전제작 체계를 도입하고, 글로벌 유통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왔다. 한국 드라마의 사전제작 체계는 중국 광전총국의 사전심의와 글로벌 OTT의 이른 마감 제도에 따른 면도 있었지만, 제작사들은 궁극적으로 사전제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하지만 제작비는 급격히 상승했음에도 방송사가 제작사에 지급하는 드라마 방송권료는 전체 제작비의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작사와 방송사의 구조적 적자 상태를 고려한 종합적인 정책 지원 설계가 필요하다. 유통지원, 정책금융, 보증제도, 방송권료 기준 현실화 등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광고규제 완화해 드라마 수익구조 개선돼야
한국드라마가 글로벌 위상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산업의 수익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이유 중 하나가 제작 재원의 과도한 방송광고 의존 구조이며, 방송광고 전반에 대한 과도한 규제다.
현재 간접광고, 가상광고, 중간광고 등 다양한 광고 수단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지만 광고시간, 노출방식, 표현형식 등에 대한 세부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해 창작 유연성이 위축되고, 실질적인 수익화가 어려운 구조다.
제작사의 급증하는 제작비 부담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는 광고 규제의 유연화는 필수다. 노출 시간·위치 중심이 아닌 창작 의도 중심 심의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광고를 콘텐츠 맥락 중심 심의 체계로 전환하면 작품과 광고 효과 둘 다 살릴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일반적인 제목형 협찬이 국내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브랜드 참여 기반의 콘텐츠 제작 유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OO와 함께하는 드라마 타이틀’ 형식을 허용해 PPL외에도 새로운 광고 자원 유치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유통 및 수익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은 드라마와 예능 모두 제목 협찬사를 입찰을 통해 관명(冠名)광고 스폰서를 유치할 수 있다. 시즌1이 성공하면 시즌2, 3의 관명 입찰가는 계속 올라가게 된다.
출연료, 제작비 50% 육박…품질 저하 우려
출연료 급등에 따른 제작비 왜곡 현상은 그동안 누누히 지적돼온 문제다. 주요 배우의 회당출연료가 총제작비의 30~50%에 달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획·연출·후반작업 등 콘텐츠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과거 실패했던 출연료 상한액을 정하기 보다는, 제작비 대비 출연료 비중 상한 비율을 설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야 드라마 품질 저하를 막을 수 있다.(예: 주연급 10% 이내)
스태프 인건비는 직무·경력·책임 수준과 무관한 개별 협상에 의존하는데, 이 때문에 동일한 업무에서 보상 격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직군별 경력 연차에 따른 인건비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스태프 인건비 체계의 불공정성을 막을 수 있다.
드라마 제작은 기획·촬영·후반작업 전 과정에서 방송 편성, 배우 스케줄, 야외촬영 등 외부 요인에 따라 고도로 유연한 일정 운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행 주 52시간제는 정형근무 전제하의 규제로, 제작현장에서 실질적 적용이 어렵고, 이는 일정 지연, 품질 저하, 스태프 이탈, 제작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루빨리 드라마 제작 프로젝트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제작환경과 괴리된 근로시간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FAST’ 채널 등 활용한 해외 진출 플랫폼 필요
넷플릭스 등 해외 OTT의 독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해외진출 플랫폼으로는 넷플릭스가 단연코 최고다. 디즈니플러스의 히트작 ‘무빙’이 만약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면, 작품과 배우들이 전세계에 훨씬 더 잘 알려졌을 것이다. 디즈니의 자회사로 디즈니플러스의 작품들을 서비스하는 스트리밍 기업 훌루(Hulu)는 넷플릭스의 파급력에 비해 아무래도 약하다.
국내 OTT는 글로벌 OTT에 비해 해외 진출이 너무 미미하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과 LG는 이미 디바이스에 기본 탑재된 광고기반 무료스트리밍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진출을 확대중이다. 삼성 TV플러스는 30개국에서 3300개 채널과 6만 6000여 편의 VOD를 무료로 제공하고 LG 채널도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에 진출했다.
현재 두 기업의 FAST 서비스는 디바이스 판매 촉진을 위한 마케팅 채널 성격이 강해, K-드라마 등 국산 콘텐츠 유통에 대한 투자와 홍보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FAST 채널의 K-콘텐츠 전용화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삼성 TV플러스와 LG 채널에 ‘K-드라마·K-콘텐츠 전용 채널’을 신설해 국내 드라마·예능·애니메이션 등을 집중 편성함으로써 해외 시청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삼성·LG는 FAST 플랫폼을 단순한 디바이스 부가서비스에서 ‘K-콘텐츠 글로벌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 해외 진출을 촉진하고, IP 독점 문제도 해소하며, 국가 브랜드를 강화시킬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협조하면 가능할 수 있다.
FAST가 콘텐츠의 보고(寶庫)인 한국에서는 늦었지만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에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K-드라마 IP 경쟁력 강화…금융 지원방안 따라야
국내 드라마 제작사는 자생적 수익모델이 부재하고 글로벌 OTT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에 직면해있다. 특히 콘텐츠 IP가 해외로 유출되는 문제가 심각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콘텐츠 IP의 내재화가 절실하다.
정부의 대표적 정책금융 수단인 모태펀드는 수익성 중심의 회수 구조로 운영되어, 회수 불확실성이 큰 드라마 분야에는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미미하다. 맷집이 약한 펀드여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체감 가능한 지원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정책 목적형 펀드를 신설하고, 방송진흥기금 내 ‘제작보증형 펀드’를 도입하며, 환급형 세액공제 및 기획개발 세제 지원 확대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드라마는 단기 수익보다 장기 성장 기반으로 접근해야 하며,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통해 IP 주권을 회복하고 산업의 질적 도약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제작사는 IP를 확보한다면, 어떻게 활용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어야 한다. IP를 돌려받아도 활용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방송영상 콘텐츠 전문 진흥기관 설립 필요
한국 드라마와 예능 등 방송영상 콘텐츠는 K-콘텐츠 열풍을 주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 문화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창작·제작·유통 산업 전반의 전문적 성장 기반이 필요해졌다.
현재 방송영상 산업을 전담하는 독립적 진흥기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음악·공연·웹툰 웹소설·출판 등과 함께 방송 분야를 병행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영상 산업은 드라마·예능·다큐 등 편성 기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유통방식, 투자 방식, 계약구조 등에서 다른 콘텐츠 장르들과 명확히 구분된다.
방송산업에는 제작사·방송사·플랫폼 간 거래관계와 제작표준계약, 편성구조 개선, 간접광고 제도, 근로환경, IP 구조 등 방송영상 고유의 정책 과제가 산적해 있다.
콘텐츠 정책 내 방송영상 전담 조직을 확보하고, 제작환경과 유통구조, 기술 트렌드에 정통한 전문가 중심의 정책을 펼쳐 방송영상 산업의 독자적 생태계 구축 및 산업 전략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방송영상 콘텐츠 진흥 전문기관의 설립도 검토해볼만하다. 필요하면 방송영상산업 진흥법도 제정해야 한다. 영화는 2006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영화진흥위원회와, 그 산하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둬 한국영화의 질적향상과 영화산업의 진흥뿐만 아니라, 뛰어난 영화 인력들을 배출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