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명까지 통째로 바뀐 내란재판부법
졸속입법 논란 속 수정안 형식으로 입법
졸속입법 논란 속 수정안 형식으로 입법
본회의 법안 처리에서 '수정안' 처리는 이례적인 일이다.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등을 거친 법안을 최종 단계에서 다시금 손보는 일이어서다. 이런 탓에 수정안 처리는 통상적 입법 절차보다는 일종의 '비상수단'에 해당한다.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벼랑 끝 협상 끝에 정치적 합의가 도출됐거나, 중요한 사정 변경 등이 있을 때 쓰이는 식이다. 이 때문에 국회법은 교섭단체 기준인 20명을 넘어선 30명(예산안의 경우 50명)의 동의가 있어야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까다로운 조건을 부여했다.
이번에 수정안으로 처리된 법안은 내란재판부 설치법으로 불리는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안'과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라는 명칭이 붙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었다. 특히 내란재판부 설치법의 경우 수정안은 한두 조항을 고치는 것을 넘어 아예 법을 새로 만든 수준이었다.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라는 법안명 자체가 통으로 바뀌어, 법안명에서부터 겹치는 단어가 없을 정도였다. 법 적용 대상이나 전담재판부 구성 절차 등 주요 내용도 달라졌다. 애초 법사위를 통과했을 때부터 이 법안은 국민의힘은 물론 친여 성향의 조국혁신당, 사법부와 법조계까지 나서서 위헌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에 민주당은 두 번에 걸쳐 대대적인 수정 과정을 밟았다. 이를 '공론화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상적 입법 절차와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등으로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걸러졌던 허위조작정보 유통 금지 조항이나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 일부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언론단체는 물론 참여연대까지 법안 폐기를 요청할 정도로 질타가 이어졌다. 법사위가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심사권을 뭉갰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후 '미세조정'이란 명목하에 급하게 수정안을 마련했다. 과방위 법안을 법사위가 고치자 과방위원장이 수정안을 발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련의 혼란에 대해 민주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더 좋은 법안을 성안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마무리됐어야 할 법안을 계속 고치는 것은 애초 입법의 문제점을 드러낼 뿐이다. 이런 무리수 이면에는 법사위의 독주와 이를 바로잡을 원내 사령탑의 조율 능력 부재가 일차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난해 비상계엄 이후 불안과 공포를 활용하는 정당, 협상력과 상식보다는 보여주기식 입법 만능주의에 빠진 원내지도부,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입법 성과에 집착하는 정치권 등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결국 정치권 내부에서 정리됐어야 할 일들이 해결되지 않다 보니, 수정안이라는 비상수단까지 동원된 것이다.
지난해 겨울 이래로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적 혼동에 긴장과 불안, 공포 속에서 1년을 살아왔다.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안정과 평화 대신 두려움을 이용하는 정치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 언제쯤 희망의 언어로 설득하는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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