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심현섭에 현상금 700만 달러 걸어
아랍·중국인 브로커 통해 美규제 회피
가짜 말보로·러시아산 헬기 자금 세탁
아랍·중국인 브로커 통해 美규제 회피
가짜 말보로·러시아산 헬기 자금 세탁
심현섭에 대한 미 FBI의 지명수배 화면. [FBI 홈페이지 캡처] |
북한 김정은 정권의 ‘그림자 자금줄’로 지목된 북한 은행가 심현섭의 은밀한 활동상이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4일(현지시간) WSJ에 따르면 심현섭은 유령회사 네트워크를 앞세워 국제 금융망의 감시를 피해왔고, 그 과정에서 미국 금융 시스템의 핵심부까지 침투해 대북 제재를 무력화해왔다. 그의 자금 흐름은 미국 시민의 일상적인 금융 거래 속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암호화폐 개발자가 싱가포르의 프리랜서 개발자에게 지급한 21만6000달러가 여러 디지털 지갑을 거친 끝에 심현섭이 관리하는 계좌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기업이 지급한 대금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무기 자금으로 전용된 셈이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TRM랩스의 분석 결과, 심현섭이 보유한 지갑에서 약 6만7000달러 상당의 암호화폐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연계된 지갑으로 이동한 정황도 포착됐다. WSJ는 이를 두고 북한이 국제 제재 대상 국가들과 암호화폐를 매개로 자금과 물자를 교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심현섭은 유령회사들을 활용해 금융 추적을 피해왔고, 그 과정에서 씨티은행, JP모건,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들이 인지하지 못한 채 최소 310건, 약 74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세탁한 자금으로 평양에 보낼 통신 장비와 러시아산 헬리콥터를 구매했으며, 북한의 대표적인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인 가짜 ‘말보로’ 담배 제조를 위해 잎담배를 사들이는 데 100달러 지폐로 8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한 적도 있다.
심현섭은 올해 42세로, 키가 185c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반적인 북한 남성 평균 신장보다 훨씬 큰 체격이다. 2019년 한국으로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리대사는 WSJ에 “심현섭은 평양의 명문 대학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며 자신이 그를 10차례 이상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연합뉴스] |
류 전 대리대사에 따르면 심현섭은 북한 국영 대외무역은행 계열사를 대표해 중동 지역에 파견됐으며, “아랍 지역에서 가장 유능하고 수완이 뛰어난 자금 세탁 담당자”로 통했다. 그는 현지에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몰고 다녔다고도 전했다.
WSJ은 심현섭이 2016년부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아내와 딸과 함께 거주하며 활동해왔다고 전했다. UAE는 2019년 유엔 제재에 따라 그의 거주 비자를 취소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로 실제 출국은 2022년에 이뤄졌고 이후 중국 단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재무부는 2023년 심현섭을 제재 명단에 올렸고, 연방수사국(FBI)은 그에게 700만 달러에 달하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다”며 협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심현섭과 같은 수십 명의 북한 은행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경제 제재는 구조적으로 허점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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