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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70년 만에 중단…2029년 해외입양 아동 '0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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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70년 만에 중단…2029년 해외입양 아동 '0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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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로비 창구' UPF 前회장, 추가 피의자 조사로 경찰 출석
복지부 제3차 아동정책기본계획 발표
해외입양 2029년까지 단계적 중단
올해 입양아동 24명→2029년 0명


과거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가던 한국 아기들. 국가기록원 제공

과거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가던 한국 아기들. 국가기록원 제공


한때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한국이 70년 만에 해외입양을 중단한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만큼, 앞으로는 아이들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시점부터 완전히 중단이 아닌 단계적으로 중단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해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따르지 않으면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가 아이를 지킬 수 있도록 국내 입양과 미혼모 지원 등 원가정 양육 지원 방안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3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아동정책기본계획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되는 국가 중장기 계획으로, 향후 5년간 아동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 성격이다. 이스란 복지부 1차관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공적 입양체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해외입양은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선 "2, 3년 안에는 중단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고 늦어도 2029년에는 0건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올 한 해 해외 입양된 아동은 24명이다.

1985년 한 갓난아이를 해외로 입양보내기 위해 입양인의 본관을 '한양 신씨'로 새로 창설한다는 내용.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1985년 한 갓난아이를 해외로 입양보내기 위해 입양인의 본관을 '한양 신씨'로 새로 창설한다는 내용. 해외입양인연대 제공


1950년대 시작된 한국의 해외입양은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해외입양을 보내려면 친권 포기가 먼저 돼야 하기에 입양 기관이 임의로 '고아 호적'을 만들기도 했다. 또 수십 명의 아동이 한꺼번에 짐짝처럼 비행기에 실려 해외로 보내지는 일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사망하는 아동이 있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입양기관이 아동 1인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아온 구조 역시 문제로 지적돼 왔다. 미국의 경우 부모가 입양 절차를 밟아야만 아동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는데 이를 밟지 않아 추방 위기에서 살고 있는 입양인도 약 4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통해 해외로 입양보내진 이들은 약 2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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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입양인들은 어른이 돼 한국에 돌아오기 시작했고, 덴마크·벨기에 등 과거 한국 아이들을 입양해 갔던 '수령국'과 유엔(UN) 등 국제사회도 과거 '세계 최대 아기 수출국'으로 불려 온 한국의 인권침해 실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번 선언 전까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해외입양을 보내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있었다.

해외입양인 김유리씨가 3월 26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원회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선영 위원장에게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신청인 367명의 사건 중 56건에 대해서만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뉴스1

해외입양인 김유리씨가 3월 26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원회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선영 위원장에게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신청인 367명의 사건 중 56건에 대해서만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뉴스1


한국 정부의 뒤늦은 변화는 올해 들어서야 시작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3월 이들이 낸 조사 신청서 가운데 56건을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자로 인정했다. 정부가 처음으로 해외입양 과정 전반의 인권침해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어 지난 10월 '국제입양에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비준하며, 당사국 지위를 얻게 됐다. 민간입양기관에 맡겨온 입양절차 전반을 정부가 책임지기로 한 공적입양체계 전환은 이 협약에 따른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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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외입양 중단 선언 자체는 분명히 의미가 크지만 구체적인 각론이 뒤따르지 않으면 선언으로 그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국내에서 입양 가정을 찾지 못해 해외로 입양되는 사례가 있는 만큼 전면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국내에서 보호하는 것보다 해외입양이 더 낫다고 (입양 심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직 해외입양을 당장 중단한다는 내용까지는 포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입양이 낫다고 판단되는 사례가 어떤 경우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에선 국내서 입양을 희망해 대기하는 부모가 입양 대상 아동 수보다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력한 정부 의지가 있다면 해외입양 중단 시기를 더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아이를 입양한 '선배 부모'로서, 예비 입양부모 교육을 진행해 온 정온주(51)씨는 "올해 기준 입양대기 아동은 약 200명인데, 올 한 해 예비입양 부모 교육을 새로 받은 이들만 350명에 달한다"면서 "공적입양체계 개편을 앞두고 지난해 입양기관에서 입양 신청을 받지 않았던 만큼 실제 입양을 원하는 부모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했다. 장애아동이 해외로 입양되는 사례가 많다는 오해도 있지만, 복지부는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 후 언론 브리핑에서 "해외입양아동 가운데 장애인 통계는 별도로 집계하지 않고 있으며 건강이상 아동에 대한 통계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간 국내외입양 인원(2024년 12월 기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

연간 국내외입양 인원(2024년 12월 기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


아동 보호라는 공적입양체계 개편·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 취지를 고려해, 국내 입양과 원가정 양육을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씨는 "입양 대기 부모들은 긴 대기기간과 복잡한 절차를 가장 어려워하고 있다.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혼모 지원 사각지대도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정 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결정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는 임신기"라면서 "임신 7개월인데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있다, 배가 불러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하는 미혼모들이 많다. 임신기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