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개정 노조법 무력화 저지·시행령 폐기·원청교섭 쟁취 민주노총 확대간부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
고용노동부는 내년 3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을 앞두고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원청 사업주의 범위 등을 담은 ‘노조법 해석지침(안)’을 행정예고했다. 원청이 하청 사업주를 구조적으로 통제한다면 하청노조와 교섭을 해야 할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노동부는 지난 8월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노·사 의견 수렴과 전문가 논의 결과 등을 토대로 마련한 ‘노조법 해석지침(안)’을 내달 15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개정 노조법에는 사용자(제2조)에 대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로써 직접적인 계약관계는 없지만 하청노동자도 원청 사업주와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동부 지침에는 사용자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인 ‘실질적 지배력’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담겼다. 이 지침은 법 시행 뒤 노동위원회나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원청사업주가 교섭을 요구한 하청노조의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데 활용된다.
근로시간 등 ‘구조적 통제’ 원청도 사용자
노동부는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구조적 통제’를 제시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 작업 일정·강도·환경 등 핵심적인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지가 중요하다. 원청이 직접 계약 당사자인 하청사업주의 독자적 결정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하청노동자의 집단적 근로조건을 구조적으로 통제한다면 사용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청 사용자가 특정 공정에 필요한 인력운용의 틀을 지정·변경하는 권한을 갖고 있거나, 하청노동자의 교대제(연장·휴일근로 등) 등 근로시간 결정 권한이 원청에 있는 경우 구조적 통제에 해당한다. 하청노동자의 작업방식을 원청이 세밀한 작업지시서·관리시스템 등을 통해 결정하는 것도 사용자성 판단에 기준이 된다. 원·하청 공정과 업무가 밀접하게 연동돼 있는 제조업 사내하청이나 택배업의 원청은 사용자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법원에서도 같은 맥락의 판결이 나왔다. 반면 하청이 독립된 설비를 갖춰 완제품 또는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하청이나 일시적으로 도급이 이뤄지면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종속 여부 ‘보완적’ 판단
그동안 법원 판결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던 ‘하청 업무의 조직적 편입’과 ‘경제적 종속’은 보완적 지표로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 10월 서울행정법원은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면세점도 자신들의 매장에 입점한 업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지 않더라도 입점업체 노동자들의 업무가 백화점·면세점의 ‘판매’라는 사업체계에 직접 편입돼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다. 노동부 관계자는 보완적 활용에 대해 “사업 편입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원청이 하청사업을 구조적으로 통제한다면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사용자성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총액인건비제 등을 통해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고 있는 만큼, 이번 개정 노조법에 따라 정부도 원청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 쟁점이 됐다. 노동부는 법령·조례나 국회의 예산 의결로 정한 기준을 정부가 집행하는 경우, 이는 공공정책의 결과에 해당한다고 봤다. 개별 노사관계의 교섭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노동부는 “예산 편성·배분 이후 산하 공공기관의 운영상 재량이 인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침엔 정부가 예산 집행 과정에서 구체적인 근로기준을 정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이 있는지, 현장 운영기관이 근로조건 결정에 자율성을 갖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사안별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동계 “사용자성 지나치게 엄격하고 복잡”
노동계에선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되는 ‘구조적 통제’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한다. ‘불법파견’ 수준이 돼야 사용자성이 인정될 것이라는 평가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어 “원청 사용자성 인정 기준이 파견을 결정하는 요소보다 더 엄격하다. 간명한 사안조차 단서를 달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청노동자의 차별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한 노조법이 또다시 극단적 투쟁과 법적소송으로 격화될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도 “실질적 지배력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지침이 마련돼야 했으나, ‘구조적 통제’라는 개념으로 다시 사용자 책임을 좁히고 있다”며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는데 활용하기 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권창준 노동부 차관은 “행정예고 기간 중 다양한 현장 의견에 귀 기울이고 토론 등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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