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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익히게 한다", 엠라인스튜디오 안희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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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익히게 한다", 엠라인스튜디오 안희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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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반복되는데 교육은 여전히 문서와 강의 중심에 머물러 있죠."

안희덕 엠라인스튜디오 대표가 2010년대 초반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산업재해 예방 콘텐츠를 제작하며 마주한 현실이다. 현장에서는 늘 조심하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은 매뉴얼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는 짧은 판단의 시간이다.

안희덕 대표는 "VR의 본질은 몰입과 경험이다. 그 경험은 사람이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안전사고를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사고 직전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게 하는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5년 국내 최초로 VR 안전교육을 도입한 엠라인스튜디오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산업 안전과 직무 교육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CPR 마스터는 실제 마네킹 위에 압박 깊이, 속도, 각도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MR 기반 심폐소생술 교육 시스템이고, M4D 시뮬레이터는 추락과 감전 같은 감각요소를 교육 목적에 맞게 설계한 장비다.
안희덕 대표는 현재를 이렇게 진단한다. "기술이 더 좋아진 시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안전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 시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고를 얼마나 사실감 있게 재현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다. 엠라인스튜디오가 남기고 싶은 한 줄의 가치는 "사고를 보여주는 회사가 아니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제로 훈련하고 책임지는 회사"다.


사고는 반복되는데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

엠라인스튜디오는 2005년, 2D·3D 애니메이션과 실감 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창립 초기부터 차별화를 둔 지점은 단순히 보여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며 반응을 이끌어내는 인터랙션 콘텐츠였다. 안희덕 대표는 "콘텐츠가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함께 산업재해 예방 콘텐츠와 애니메이션 제작을 수행하면서, 산업 현장의 교육 방식과 구조를 가까이에서 접했다.

"사고는 반복되는데, 교육은 여전히 문서와 강의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죠."

2016년을 전후로 VR 기술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을 때, 엠라인스튜디오에게 그 흐름은 낯설지 않았다.

"안전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며 현장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고, VR이 가진 몰입과 경험이라는 특성이야말로 산업 현장의 안전 트레이닝과 직무 교육에 효과적인 해법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고의 원인이 대부분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 판단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산업 안전을 선택한 이유

2015년 당시 VR 기술이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시기에, 내부에서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시장 쪽으로 가보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안희덕 대표는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 답은 현장에 있었다.

"VR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강하게 느낀 점은, 이 기술이 단순히 새로운 화면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VR의 본질은 몰입과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사람이 선택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죠."

안희덕 대표는 이 지점이 산업 안전 교육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사고를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사고 직전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판단해보게 하는 교육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그 영역은 이미 잘하는 기업들이 많았고,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반면 산업 안전 교육은 기술보다 왜 바뀌지 않는가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훨씬 더 크게 존재하는 분야였죠."

2015년부터 2016년 무렵, 엠라인스튜디오는 내부의 여러 의견과 고민 끝에 VR을 게임이 아닌 산업 안전과 직무 교육이라는 방향으로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교육

CPR MASTER를 개발하게 된 출발점은 단순한 질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CPR 교육이, 실제 상황에서 과연 도움이 될까?"
기존 CPR 집체교육은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 모여 강사의 설명을 듣고, 마네킹으로 반복 실습을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자신이 없다는 반응이다.

"CPR은 손의 감각, 압박의 깊이와 속도처럼 현실의 물리적 감각이 핵심인 교육이기 때문에, 단순히 VR로 완전히 가상 환경을 만드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엠라인스튜디오는 가상 환경 위주의 VR이 아니라, 실제 마네킹과 장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가상의 정보와 피드백을 결합할 수 있는 MR 기술에 주목했다. CPR 마스터는 실제 CPR 동작 위에, 압박 깊이, 속도, 각도 같은 핵심 지표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사용자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즉각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기능들은 기술적으로 가능해서 넣은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응급구조 교육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지금 이 압박이 맞는지 바로 알 수 없느냐는 질문에 답하고 싶었죠."

M4D 시뮬레이터는 추락, 감전, 냉풍, 열풍 같은 감각요소를 포함한다. 안희덕 대표는 "감각 요소를 넣는 과정에서 세 가지 기준을 명확히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모든 체감 요소는 실제 사고 데이터와 교육 목적에 근거해야 하고, 체험자는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어야 하며, 놀라움이 아니라 판단 훈련으로 귀결돼야 합니다. M4D는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장비가 아니라, 왜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하면 안 되는가를 몸으로 이해시키는 교육 도구이죠."

기획부터 공간 구축까지 모두 내부에서

엠라인스튜디오는 30명 중반 규모의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팀의 특징은 기획부터 콘텐츠 제작, 하드웨어 개발, 그리고 최종 공간 구축까지 모든 제작 단계를 내부 인력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XR 안전교육이라는 분야를 오래 하다 보니, 한 단계만 외주로 빠져도 전체 품질과 교육 효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경험하게 됐습니다."



콘텐츠는 잘 만들어졌는데 하드웨어와 맞지 않거나, 장비는 좋은데 교육 시나리오와 따로 노는 경우들이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지금의 엠라인스튜디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안전 시나리오와 교육 목적을 먼저 설계하고, 그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며, 필요하다면 하드웨어와 시뮬레이터까지 만들어냅니다. 마지막으로는 실제 운영 환경을 고려한 공간 구축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갖추게 됐습니다."

엠라인스튜디오는 창업 초기부터 상장을 목표로 출발한 회사는 아니다. 안희덕 대표는 "회사를 빠르게 키우는 것보다, 우리 힘으로 얼마나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고 설명했다.

"XR 안전교육이라는 분야 자체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현장 경험과 신뢰가 축적되어야 비로소 가치가 만들어지는 영역이라고 판단했어요. 콘텐츠 하나, 장비 하나를 만들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오래 쓰일 수 있는지, 교육 효과가 지속되는지를 검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엠라인스튜디오는 투자에 의존하기보다는, 프로젝트 수행과 자체 IP 축적을 통해 매출 구조를 만들어 왔다.

"단기적인 외형 확대보다는, 콘텐츠, 플랫폼, 하드웨어가 함께 돌아가는 구조를 내부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 과정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대신 시장 변화나 특정 고객에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는 재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죠."

안희덕 대표가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느끼는 건, 지금이 단순히 기술이 좋아진 시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안전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진 시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과거에는 사고가 나면 그 이후에 대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무엇을 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 관련 제도 강화 이후, 안전은 더 이상 현장 관리자나 특정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 전반에서 책임져야 할 핵심 요소가 됐다.

"형식적인 교육이나 일회성 점검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는 교육과 훈련 체계가 요구되고 있죠."

엠라인스튜디오가 남기고 싶은 한 줄의 가치는 명확하다.

"단순히 사고를 보여주는 회사가 아니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제로 훈련을 수행하고 책임지는 회사로 남고 싶어요."

사고는 반복되는데 교육은 문서와 강의뿐이었던 시대. 안희덕 대표가 만드는 엠라인스튜디오는 사고를 설명하는 대신 사고 직전 순간을 경험하게 하고, 머리로 아는 대신 몸으로 익히게 하고, 기술을 보여주는 대신 행동을 바꾸는 교육을 선택했다.

20년간 VR 안전교육을 해온 이 기업이 그리는 미래는 사회가 안전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진 지금, 실제로 훈련을 수행하고 책임지는 장이다.

문지형 스타트업 기자단 jack@rsqu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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