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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이 직접 밝힌 '대홍수'의 숨은 재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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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이 직접 밝힌 '대홍수'의 숨은 재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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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공개 3일 만에 1위 등극
극명한 호불호 평가에 "예상했던 부분, 관객에게 질문 건네고 싶었다"
김다미 주연 활약… "너무 고생해서 미안했다"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김병우 감독이 작품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로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김병우 감독이 작품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는 넷플릭스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 알고 보면 재미있는 장치들을 많이 넣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놓쳤지만, 다시 봤을 때 새롭게 캐치할 수 있는 요소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확장되길 바랐습니다."

김병우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대홍수'는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안에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대홍수'가 존재하기 전 구글에서 대홍수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창세기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왔어요. 인류의 다음 진화는 어떤 형태로 이뤄질까 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궁금증이 있었는데 노아와 대홍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9일 베일을 벗은 '대홍수'는 공개 3일 만에 시청 수 2,790만(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스페인, 브라질, 카타르, 태국을 포함한 총 54개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또한 93개 국가에서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뜨거운 화제성 만큼 작품을 둘러싼 평가는 극명한 호불호로 갈리고 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보며 생긴 물음표를 함께 풀고 해석하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 호불호는 예상했어요. 관객들이 보기 편안한 영화도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랑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길 바라며 만든 작품이에요. 그런 면에서 다양한 해석과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요."

러닝타임 108분에 대한 꼼꼼한 설계


재난물에 SF적 상상력이 더해진 신선한 장르다. 재난, SF, 블록버스터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는 작품답게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아파트를 덮친 대홍수와 피할 수 없는 규모의 재난이라는 세계관을 펼치며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108분의 러닝타임을 나눠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가 재난 상황 속 인간 군상을 지켜보는 재미라면, 후반부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인류의 종말이라는 극한의 상황 앞에서 마지막 희망을 지키기 위한 인간적인 사투가 녹아 있다.


"극장과 달리 넷플릭스 시청자들은 리모컨을 쥐고 있잖아요. 언제든 시청을 멈출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연출자로서는 이탈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주어진 러닝타임 안에서 이야기를 최대한 타이트하게 풀어내고자 했어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코스 요리의 디저트 역할을 하는 후반부 이야기까지 맛있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대홍수'는 재난으로 시작해 다음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 본연의 감정, 그중에서도 모성을 다룬다. 다만 여느 작품처럼 절절하게 모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김병우 감독은 AI 딥러닝을 통해 모성애를 배워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인류의 진화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핵심적으로 활용될 테고, 인간이 가진 마음을 구현하는 게 가장 까다로울 것 같았죠. 인공지능이 지능을 획득하는 과정은 지난한 육아와 같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모성애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찰했어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 제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어머니, 아이를 키우는 누나의 모습 등을 참고했죠."


지난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대홍수'가 공개 직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대홍수'가 공개 직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고생스러웠던 현장, 김다미에게 너무 미안해"


생존을 위한 여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갈등은 캐릭터들의 다층적인 결을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 안나 역의 김다미,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위해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보안팀 희조 역의 박해수, 안나의 6살 아들 자인 역의 권은성까지.'‘대홍수' 속 배우들은 차오르는 물과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매 순간 달라지는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해냈다.

"영화적 설정 때문에 배우들이 몸이 젖은 상태로 촬영을 이어가야 했어요. 모두 힘든 촬영이었지만 김다미 배우가 특히 고생을 많이 해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정도로 미안했죠. 촬영이 여름에 시작해 겨울에 끝났는데 옥상 장면은 11월에 촬영했어요. 반팔 차림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촬영을 이어갔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배우들 모두 묵묵히 임해줘서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입니다."

김다미는 극중 인공지능 연구원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안나 역을 맡았다. 데뷔작 '마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그 해 우리는' '백 번의 추억' 영화 '소울메이트' '나인 퍼즐'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으로 엄마 역할에 도전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점점 엄마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라 시작점에서는 엄마의 얼굴이 아닌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김다미 배우를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실 거라 확신했죠.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라 연출자로서 신뢰가 컸어요. 김다미 배우가 아니면 떠올릴 수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자신만의 개성과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매 작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박해수는 인공지능 연구소 보안팀 희조를 연기했다. 여기에 '파친코' 시즌2, '나의 완벽한 비서', '전지적 독자 시점' 등으로 사랑받아온 아역 배우 권은성이 안나의 아들 자인 역으로 활약했다.

"박해수 배우가 연기한 희조는 자인이 버림받은 상태로 성장했을 때의 모습이길 바랐어요. 희조가 자인을 바라볼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었죠. 권은성 배우는 촬영 당시 9살이었는데 정말 프로였습니다.(웃음) 저와의 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대홍수'의 히든 포인트


'대홍수' 공개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영화에 숨은 장치를 해석하는 토론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김병우 감독이 의도했던 지점이다. 김 감독에게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포인트를 직접 물었다.

"안나 몸에 붙은 스티커가 바뀌어요. 처음에는 공룡과 공작새인데 천적으로부터 강력한 타깃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죠. 인류의 진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넣은 장치예요. 후반부에는 등장하는 헬기와 로켓 스티커는 자인이가 탔던 교통수단입니다. 또 안나가 낯선 집에 들어가 입고 나온 코트를 복도에서 임산부에게 덮어주는데 그 코트의 주인이 바로 그 임산부예요. 집에 걸린 결혼사진 속 인물이죠. 시뮬레이션이 반복될수록 주변 인물들에 대한 데이터도 쌓입니다. 오렌지 주스를 건네는 할머니 역시 감정과 데이터가 축적됐다는 걸 암시하는 대사를 하죠."

영화 '더 테러 라이브' 'PMC: 더 벙커' '전지적 독자 시점'까지. 김병우 감독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왔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와 상상을 뛰어넘는 전개는 그의 연출 세계를 상징한다.

"사실 지난여름 이후로는 댓글이나 반응을 잘 안 보게 돼요.(웃음) 호불호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품을 계속 해나갈 생각입니다. 관객에게 모든 걸 설명하는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으니까요. 너무 바쁜 한 해를 보냈는데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다음을 천천히 살펴보려 해요."

'대홍수'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김연주 기자 yeonju.kim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