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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 되기 직전에 탈출… '덕분'에 보호소는 생기 넘치게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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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 되기 직전에 탈출… '덕분'에 보호소는 생기 넘치게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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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어, 너와 너의 멍냥이]
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지내는 개 '덕분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지내는 개 '덕분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경기 남양주시 어느 산 중턱에 자리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는 매일 개 짖는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끄럽다' 느껴지겠지만, 보호소 관계자들에게는 그 소리는 하루하루 돌보는 개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걸 확인하는 신호였습니다.

그중 매일 가장 큰 목소리로 자신의 생존을 알리는 개가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온센터를 찾은 뒷조사 전담팀이 만나기로 약속한 개 '덕분이'(10세 추정 · 도사 혼종견)입니다. 대형견사를 가득 채우는 개 짖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목소리는 덕분이의 굵은 목소리였습니다.

"덕분이 목소리가 여기에서 제일 커요."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이민주 선임활동가의 설명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낯선 사람을 보고 제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계의 짖음보다는 '나 여기에 있다'라고 알리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애타게 사람을 찾는 이유는 다른 개들과 다를 것 없었습니다. 간식 냄새를 맡은 덕분이는 앞발을 들어 간식을 달라며 활동가의 팔에 매달렸습니다. 두 발로 우뚝 서면 성인 한 명에 육박할 만큼 몸집이 큰, 소위 '맹견'이라 불리는 도사견이었지만 공격성이라고는 찾아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덕분이는 목소리와 몸집만 큰 '소심이'에 가까웠습니다. 어쩌면 그런 소심한 성격 탓에 3년 전, 목숨을 잃을 뻔한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머리의 상처, 목의 '빨랫줄 올무'… 몸에 무수히 남은 증거가 말하는 것


지난 2021년, 경기 평택시의 한 공단. 대형견 한 마리가 부상을 입은 채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3년 전인 2018년부터 공단에 나타난 개는 목에 이상한 목줄을 매고 돌아다녔습니다. 흔히 반려견 목줄에 거는 목걸이가 아니었지만,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목격자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개에게 먹이를 챙겨줬다고 했습니다.

개는 사람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챙겨준 먹이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경계심이 강했고, 가까이서 개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먼발치에서만 봐도 개의 몸 상태는 부상이 있어 보였습니다. 최초 발견 이듬해에는 머리에 상처도 보였다고 합니다.


지난 2021년 경기 평택시에서 구조될 당시 덕분이의 머리에서 발견된 상처.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 2021년 경기 평택시에서 구조될 당시 덕분이의 머리에서 발견된 상처. 동물자유연대 제공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순 없었지만, 상황은 그런 의문을 갖기조차 어렵게 할 만큼 심각하게 돌아갔습니다. 대형견의 목을 조이는 목줄과 머리의 상처는 치료를 받지 못하며 점점 썩어들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목격자가 동물자유연대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구조대 역시 대형견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가 손을 내밀면 소스라치듯 놀라 먼 곳으로 피하고, 간식을 바닥에 놓고 자리를 피해야만 슬금슬금 다가와 간식만 먹고 도망쳤습니다. 그렇게 간식에 눈이 팔린 사이 구조팀은 카메라를 통해 멀리서 개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개의 목에 걸린 '이상한 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구조 직후 덕분이의 목에 감겨 있던 올무를 제거한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구조 직후 덕분이의 목에 감겨 있던 올무를 제거한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저거 올무네.

흔히 빨랫줄로 쓰이는 노끈을 올무처럼 묶어둔 매듭을 본 순간 활동가들은 확신했습니다. 누군가 저 개를 보신탕으로 먹으려 올무로 목을 조이며 높은 곳에서 매달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나마 줄이 끊어지면서 대형견은 목숨을 건진 듯했습니다.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구조팀은 즉시 구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큰 포획틀을 설치하고, 먹이를 챙겨주던 목격자가 포획틀에 먹이를 놓고 사라지자 어김없이 대형견은 포획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신속한 구조를 마무리하고 병원에서 목줄을 제거한 뒤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조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고 합니다.
살려고 애쓴 덕분에, 살리려고 애쓴 덕분에 구조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덕분'은 자연스럽게 이 개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한 덕분이는 온센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구조 후 3년, 아직도 남은 것 같은 트라우마로 '깜짝'



구조와 치료 직후 온센터에 입주한 덕분이의 모습. 이때만 해도 겁이 많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구조와 치료 직후 온센터에 입주한 덕분이의 모습. 이때만 해도 겁이 많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몸은 회복됐지만, 마음까지 회복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덕분이 또한 그렇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간식을 달라고 사람에게 달라붙는 모습만 보면, 마음의 상처도 말끔히 치유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덕분이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활동가들의 무수한 노력이 한몫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온센터에 들어오자마자 구석에 앉아서 눈동자만 굴렸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장하고, 목줄은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계단을 걸어내려오는 것조차 하지 못했어요. 계단을 한 걸음 걸어오면 주저앉기 일쑤였죠. 지금은 계단을 완전히 뛰어다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덕분이에게 '괜찮다'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열심히 알려줬죠.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지금은 계단을 훌쩍 오르내리지만, 덕분이는 과거에는 계단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만큼 겁을 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금은 계단을 훌쩍 오르내리지만, 덕분이는 과거에는 계단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만큼 겁을 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더군다나 덕분이는 아직은 보신탕이 될 뻔했던 그때의 기억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뒷조사 전담팀이 덕분이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으려는 순간, 기척을 느낀 덕분이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습니다. 그러나 덕분이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 해서 그걸 '공격성'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리를 피하기만 했죠.

그러나 세상은 덕분이를 입양하는 데 참 많은 조건을 내세웁니다. 덕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따로 '맹견 등록'을 해야 하고, 덕분이와 산책을 하려면 입마개를 채우고 외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반려견과 공존하기 위한 방법이라지만 덕분이를 입양하기 전 넘어야 할 장애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덕분이 같은 도사견은 아예 입양 문의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 활동가는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편안하게, 누구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가족의 품이 있다면 언제든 보내주고 싶은 게 활동가들의 마음입니다.
덕분이를 보다 보면 가끔은 바보 같고, 순한 행동이 나타나서 짠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걸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전원주택에서 덕분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로운 환경이라면 덕분이 마음에 생긴 상처도 더 빨리 아물 것 같습니다.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보호소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생존을 증명한 개 '덕분이'는 매일같이 간식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보호소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생존을 증명한 개 '덕분이'는 매일같이 간식을 요구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